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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8-16 2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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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예전에 축사를 하면서 ‘여기 여러분은 반드시 죽습니다.’라 한다면 모두가 의아할 것이다. 가장 현실적인 말, 진실의 말, 도움 될 말을 했음에도 공감하거나 박수할 사람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일상에서 죽음을 생각하며 살지 않지만 누구나 죽는다. 데이터에 의하면 생후 150년 이내에 순서 없이 죽는다.


지난 3년 동안의 코로나 격리가 끝나자 각지에서 서예전이 넘쳐흐른다. 여기저기의 서예전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서예와 삶의 의미를 생각하다 보니 죽음까지도 생각하게 된다. ‘범은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무슨 말인가? 범은 가죽을 남겨야 하고 사람은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말일까? 사람은 ‘누구나 존경할 훌륭한 인물’이 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겠으나, 천하의 맹수인 범도 결국 죽고, 만물의 영장인 사람도 결국 죽게 된다는 말로 해석해 보자. 정말, 석가도 공자도, 예수도 다 죽었고, 클레오파트라도 죽었고 이순신도 죽었다. 현자도 미인도 장군도 다 죽었다. 그러면 ‘지금 여기 있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카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 즐겨라)을 따를 것인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를 생각해야 할 것인가? 아모르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를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그냥, ‘하쿠나 마타타!’ 하며 어깨춤을 출 것인가? 결국, 어떤 처신이건, 원하건 원하지 않건 이름을 어떻게 남길까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며 그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수단이 있겠지만, 나는 ‘서예를 하자!’ 말하고 싶다. 서예는 사회를 정화하고 작가를 영원으로 이어지게 하는 동아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사진 설명] 바니타스 정물화. 불안과 죽음은 이간의 본질적 문제이다. 불안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미래를 앞당겨 봄’으로 발생하는 것이기에 불안과 죽음은 같은 방향이다. 해담 오후규 (서화비평가)

[사진 설명] 바니타스 정물화. 불안과 죽음은 이간의 본질적 문제이다. 불안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미래를 앞당겨 봄’으로 발생하는 것이기에 불안과 죽음은 같은 방향이다. 시문학, 철학에서 이들 주제를 다루어 왔고, 미술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르네상스 시기 네덜란드 미술가들이 ‘죽음’을 순수 정물화 작품 소재로 활용하였다. 바니타스 정물화가 그것이다. 바니타스에 등장하는 소재는 책, 지도, 악기(예술과 학문을 상징), 지갑, 보석(부와 권력을 상징), 술잔, 담배, 카드(세속적인 쾌락을 상징), 해골, 시계, 양초, 비누, 꽃(죽음이나 덧없음을 상징) 등이나, 죽음의 불가피성, 속세의 업적이나 쾌락의 덧없음과 무의미함을 상징하는 소재인 해골을 주로 다루었다. 바니타스 정물화를 보는 사람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고 회개하도록 타이르기 위함이었다. 데미안 허스트(1965~, 영국)는 2007년 역사상 가장 비싼 작품(두개골), 〈하느님의 사랑을 위하여〉를 제작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그 작품은 1800년 중반 두개골의 표면에 8,600개의 다이아몬드를 촘촘히 박아 만들었다. 이렇게 허스트는 ‘죽음’이란 주제로 지극히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묘사를 시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해담 오후규 (서화비평가)


☛ 인간은 어떤 목적을 완성하기 위해 일한다 생각하겠지만 실존주의 철학에 따르면, 인간은 피투성(被投性)이라 주어진 목적이 없으니 완성도 없다. 누구나 ‘하루살이’와 같이 덧없이 살다 어느날 하던 일을 그만두고 죽는다. 대통령이 되었다고 목적이 완성된 것도 아니다. 대통령이라 해서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유롭지도 않으며, 행복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것이며, 왜 끊임없이 일하는가? 좀 거친 표현이지만 죽어서도 ‘좋은 의미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이고, 여기에 서예는 그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죽어서도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영원히 살아있게 할 수 있는 수단이 서예라는 것인데, 물론 서예를 한다고 해서 누구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서예 감상자는 작품을 감상할 때 작품과 함께 누가 썼는지 살펴본다. 작가도 작품을 할 때 본문이 완성되면 작가의 호와 이름을 쓰고 멀리서도 잘 보이도록 빨강 도장을 1개 이상 찍는다. 이렇게 하더라도 모든 서예작품이 후대에 남는 것은 아니고, 고귀한 작품만이 남을 것이다.


고귀한 서예작품은 그 사람을 영원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고귀함은 어려운 속성이 있고, 그래서 고귀한 서예작품도 당연히 어렵다. 어렵다는 것은 서권기문자향(書卷氣文字香)의 서예, 고상한 인품에서의 서예를 말하는 것이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물론 인품만으로 서예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조형이 신비롭고 정감이 흘러야 한다. 조형에서의 정감은 필획에서 오고, 필획의 정감은 먹에서 온다. 먹의 색은 참으로 미묘하며 신비롭고 화선지와 어울릴 때는 더욱 그러하다. 한 마디로 미적 감수성이 남달라야 하겠는데 이것 역시 이루기 어려운 경지이다. 또 있다. ‘피그말리온’의 열정과 절차탁마의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서예는 별로 돈이 되지 않고 시간만 소비되는 지루한 노동이다. 이런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내가 서예를 하는 목적’을 밝히고 스스로 당위성을 세우며 답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위성과 작가의 절실함이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것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붓을 잡게하는 동기가 되고 여기서 탄생하는 필획이 재료(먹, 화선지, 벼루)를 만나 승화할 때 감상자의 가슴을 울리게 된다 할 것이다. 이러한 세 경지를 넘었다면 그 이름은 천고에 빛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좋은 이름을 남기는 것은 좋은 일이다. 여기에 서예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서예사를 보면 그렇다. 예를 들어 한석봉도 그렇고 신사임당도 그렇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추사도 ’추사‘이게 한 것은, 그의 가문이나 벼슬이 아니다. 그가 남겨둔 유산도 아니며, 자식도 아니다. 서예 없는 추사는 생각할 수 없다. 그의 서예작품이 그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 서예를 한다고 누구나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인격이 아니고 혼신이 아니라면 아무리 낙관을 크게하고 작품을 많이 해도 무슨 소용 있겠는가. 앞에서 언급한 ‘경지’를 넘나들면서 자신의 생각을 서예로 표현하고 말겠다는 불굴의 의지가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이런 서예는 감상자가 작가의 성정을 느낄 수 있는 그러한 묘한 서예이고, 당연히 도달하기 어렵다. 묘함은 배울 수도 없고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오늘날의 탈포스트모드니즘 시대에 고전적 서예로 이름 남기기는 무척 어렵다. 모더니즘에 빠져있는 서예전을 볼 때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 국제서화디자인2.2전. 오후규 이사장과 하석 선생.



해담 오후규 (서화비평가)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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