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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1-27 23: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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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담의 서화만평 海潭의 書畵漫評(54)


- 전통 서예와 실존주의 철학(1)



☛ 해담의 서화만평 53 (뉴스부산 2024-01-24.)에서 언급했던 본래적 전통서예는 형식보다 정신, 형식을 수단으로 인간 만들기가 목적인 구 시대적 서예가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더없이 소중함을 말했다. 이런 전통의 서예에서, 내용은 자작이 바람직하나 고전을 인용하더라도 남을 위한 미사려구가 아니라 먼저 자신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 후, 생활에 실천한 것을 인용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서예라야 본래적 전통서예라 하겠으나, 이것의 경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 고상한 인격을 향한 서예, 학문과 수양을 위한 서예가 본래적 전통서예이고, 그렇지 않은 서예는 아무리 전통적 형식을 닮았다 하더라도 ‘화선지에 먹칠한 것’이라 해도 될 것인데, 창작의 입장에서는 오십보백보로 양자에 차이가 없다. 창작은 기본적으로 전통적 형식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러면 이율배반일 수 있으니, 본래적 전통서예에서의 ‘창작’은 하나의 권학 수단으로 이해해도 될 것이다.



☛ ‘본래적 전통서예’, ‘현대적 전통서예’ 할 것 없이 전통서예는 ‘속이 가득찬’ 서예이다. 속이 가득찬 것에는 다른 의견이 들어갈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통서예는 형사(形寫)이고 모방이며 임서일 뿐 창작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이러한 서예가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본래적 전통서예는 전 호에서 언급했듯이 사회 곳곳에 거짓과 사악함이 넘쳐흐르는 오늘의 시대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했다. 단지 전통 서예를 창작이나 미술적 측면에서 권장한다면 달리 생각해야 할 것이고, 형식의 보존을 위한 것이라면 착각이다. 어느 누가 보존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없어질 것도 아니며 전수자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은대 갑골문을 오늘날 쓰듯 100년 1000년 후에도 언제나 재생 가능하다. ‘왕체(王體)’, ‘안체(顔體)’, ‘영자8법(永字八法)’ 등의 서체는 ‘즉자존재(卽自存在, 인간 이외의 존재)’로서 언제까지나 그냥 그렇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형식으로서의 전통서예가 그렇다는 것이다. 같은 형식이라도 본래적 전통서예는 그렇지 않다. 형식묘사에 앞서 예술정신적 전통을 숭상하는 서예이다. 그래서 같은 전통서예라도 전자의 서예는 누구나 할 수 있고 언제라도 재현할 수 있다. 그러나 후자는 한 번 맥이 끊어지면 거의 회복 불가능하다는 것에 차이가 있다. 어렵고 힘든 과정이기에 그렇다. 달리 말해 본래적 전통서예는 동북아 예술정신을 전수하는 것에 그 일차적 목적이 있다 할 것으며 다음은 훈몽적 성격이다. 전자가 인격함양이라면 후자는 조선시대 사설 교육기관이었던 서당1) 의 역할을 연상하게 한다.


나도 어릴 때 동래 형님들이 서당 다니는 것을 본 것 같기도 하고, 나 자신도 이웃 동래 선비에게 외4촌 형과 같이 붓글씨를 배운 기억이 있다. (이것도 서당교육의 한 형태이다.) 옛날에는 떠돌이 식자(선비)들이 동래에 (일시적으로) 정착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들이 숙식해결의 수단으로 작은 서당을 운영하거나 방문지도도 하였다. 이후, 공교육이 활성화되면서 서당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고도성장기 이후 서당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한 것이 서실, 서예학원으로 봐도 될 것이다. 물론 서당과 서실(서예학원)은 교육 내용이나 목적에서 큰 차이가 있다.


하여간 조선시대의 서당은 국가에서 설립하고 관리한 것이 아니라 사설이었고 훈장의 재량에 의지한 교육기관이었다. 생각하면, 서당은 우리의 교육수준을 높혔고, 고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한 바탕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오늘날 서당이 하던 소아 교육은 국가가 책임지고 있다. 문제는 현재의 노인 교육이다. 서당 시절(조선에서 근대)에 절실했던 것은 소아 교육이었고, 이 때의 노인 교육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상황은 반전되었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 사회의 노인 교육은 그 때의 소아 교육 못지않게 중요해졌다. 여기에 서예 교육, 앞에서 언급한 본래적 전통서예학습은 가장 생산적이고 바람직한 수단, 특히 노인이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예를 든다면, 파란만장을 경험한 이명박 전대통령은 서예로 무너진 자신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어떤 서예를 했을까? 본래적 전통서예를 한다고 봐야 할이다.2) 비록 현대적 형식을 닮았거나 현대서예적 창의성을 발휘했다하더라도 이것은 법고창신일일 것이다. 그의 서예목적이 출세나 수입이 아니라 본래적 전통서예 정신을 지향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같은 서예 행위를 두고 우리는 서예, 일본은 서도, 중국은 서법이라 한다. 이들 명칭이 의미하는 바는 조금식 차이가 있으며, 또 각국마다 각자의 명칭에 걸맞게 표현되고 그렇게 발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 견해로 서법은 너무 규정적이고, 서도가 좀 전통적 느낌이라면 서예는 변화와 미래지향성이 있는 현대적 느낌이라 하겠다. 그러나 어떤 서예이건 본래적 전통서예라는 점에서 동일하고, 그래서 전통서예는 영원한 ‘서예의 북극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위와 같은 의미에서 본래적 전통서예의 계승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AI로 인해 인간성에 의문을 던져야 하는 현대에서의 전통서예는 인간이 상복해야 할 약, 비타민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문제는 본래적 전통서예를 지도할 선생이 거의 없다는 것과 학생도 인격함양은 뒷전이고 공모전에 정신이 팔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인서예가에 의한 전통서예는 형사일 뿐 아무리 그럴듯해도 본래적 전통서예라 할 수 없을 것이나 그 구분이 애매하다는 점 역시 문제이다.


일선의 서예는 이미 오래전부터 형식만 추구하는, 혹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서예로 보이나 일반인의 인식은 옛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서예하는 사람을 인격자, 착한 사람으로 보거나 선비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거칠게 말해, 서양학이 인식이라면 동양학은 실천이다. 실천하는 서예가 본래적 전통서예이고, 이런 서예의 전망은 밝고 또 밝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좀 더 선량해질 것이고, 세상이 삭막할수록 선한 교육은 확장되어야 한다. (차호에 계속)



해담 오후규 (서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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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당은 조선 시대 아동(7~16세)의 유학(儒學) 교육을 위해 전국 곳곳에 세운 사설 교육 기관으로 누구든지 세울 수 있었다. 서당의 훈장의 자격도 정해진 것이 없었기에 훈장마다 학식 수준이 천차만별이었다. 유교 경전에 도통한 훈장에서부터 도망친 노비에 이르기까지 차이가 심했다. 보수도 양식과 땔감 정도였고, 어떤 훈장은 생계를 위해 마을 사람들의 글을 대신 써주기도 했다. 비록 훈장의 사회적 위치가 높지는 않았지만 학생이 책 한 권을 마칠 때마다 부모님들은 책씻이를 준비하는 등 훈장의 노고에 보답하는 미풍을 유지해 왔다.


2) 사단법인 이명박대통령 기념재단(이사장 맹형규)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예전, “스며들다”전을 개최하였다(서울 한전 아트센트 갤러리, 2023년 12월 13일부터 21일까지).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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