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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3-12 14: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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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길 선생과 고 김헌언(우측) 선생의 뒷모습. 2025년 9월 6일, 양산 김수길 선생 사랑방 ‘다헌재좌(茶軒再座)’를 나오며.





[문화칼럼] 木訥 김헌언 교수의 별세와 예술의 본질



올해 1월 초 미술인의 모임에서 뜻밖에 들려온 소식은 필자의 마음을 깊이 흔들었다. 김헌언(金憲彦, 호 木訥) 교수의 부고였다. 부산 미술계는 훌륭한 작가이자 교육자를 잃었다. 나는 지난해 여름, 김수길(茶軒) 교수의 작업실에서 김헌언 선생을 뵌 적이 있다. 빛이 스며드는 창가에 앉아 그는 여전히 명확하고 깊은 목소리로 예술과 시대를 이야기했다. 건강은 온전치 않아 보였지만, 그 순간에도 그는 예술가로서의 자존심과 태도를 잃지 않았다. 그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1943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그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공예학과와 대학원 산업공예과를 졸업한 뒤 신라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개인전만 20회(부산·서울·오사카), 초대전은 450여 회에 달했다. 그의 작품은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거장의 귀환전’, 예술의전당 개관 기념전, 서울미술대전, 부산시립미술관 ‘부산의 발견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현대미술 초대전’ 등 주요 무대에 초대 출품되며 한국 공예계의 중심에 섰다.



▲ 광안갤러리 기획 초대전 `木訥 김헌언·茶軒 김수길 展`(2020.1.4.~1. 31.) 출품된 김헌언 작가의 `선의변주(Variation of Line)`, 60×30×6cm, color on wood



대표작 「잔상(殘像)」은 느티나무에 음각과 투각을 더해 꽃과 나비의 형상을 담아낸 작품이다. 장식과 기능을 넘어, 나무가 지닌 생명성과 빛의 흐름을 조형적 언어로 담아냈다. 후기 작업인 「선의 변주(Variation of Line)」는 빛과 선의 관계를 탐구하며 목공예를 현대적 실험의 장으로 확장한 시도로 평가된다. 이 두 작품은 그의 예술 세계가 공예의 범주를 넘어선 사유의 깊이를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별칭 ‘木訥(木눌)’은 말은 적으나 성실하고 진솔한 인품을 상징한다. 이는 작품 세계와 삶의 태도를 동시에 설명하는 이름이었다. 나무의 결을 따라 성실히 다듬어낸 조형물, 담백한 태도로 제자를 지도한 모습은 이 호칭과 잘 어울렸다.



▲ 고 김헌언(좌측) 선생과 김수길 선생. 2025년 9월 6일, 양산 김수길 선생 작업실 ‘다헌재좌(茶軒再座)’ 사랑방 입구에서.



김헌언 교수와 김수길 교수는 신라대학교에서 수십 년간 교편을 잡으며 부산 미술계의 교육과 창작을 이끌어온 동료였다. 김헌언은 목재를 통해 빛과 선의 세계를 탐구했고, 김수길은 서예와 동양화의 전통을 현대적 조형성으로 확장했다. 서로 다른 장르를 걸었지만, 두 사람은 예술을 대하는 태도와 선비적 기개에서 깊은 공명을 이루었다. 그들의 대화는 예술과 인생을 함께 논하는 정신적 교류였다.


그러나 두 분의 삶을 되새기며 오늘의 예술계를 돌아보면 여전히 불편한 현실이 상존한다. 감투와 직함을 중시하는 풍토가 작품의 진정성을 가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술은 권위의 표식이 아니라, 작가적 양심이 살아 움직이며 시대와 인간을 이해하는 통로로 기능해야 한다. 김헌언 교수의 삶은 화려한 외형보다 성실한 작업과 교육에 헌신하며, 예술가로서의 진정성과 꼿꼿한 태도를 보여준 삶으로 기억된다. 이는 후학들에게 전해진 가장 값진 유산으로 남아 있다.


필자의 시선에서 김헌언 교수의 예술은 화려한 장식이나 과시적 기교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나무라는 재료의 결을 따라가며 그 속에 숨어 있는 시간과 기억을 드러내려 했다. 작품은 인간이 자연과 맺는 관계를 조형적으로 고정했다. 「잔상」에서 보이는 흔적과 결은 사라져가는 것과 남아 있는 것 사이의 긴장을 드러내며, 공예가 생활의 도구이자 동시에 존재의 흔적을 기록하는 예술임을 보여준다.


오늘처럼, 어느 날 문득. 木訥이라는 고인이 남긴 문화적 유산과 마주할 순간, 우리 모두는 예술의 본질이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글・사진|강경호 개념미술가 (2026.3.12.)



▲ 고 김헌언(좌측) 선생과 필자. 2025년 9월 6일, 양산 김수길 선생 작업실에서.



※ 연보: 김헌언(金憲彦, 1943~2025) 경남 밀양 출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대학원 졸업, 신라대학교 예술대학 교수 역임. 개인전 20회, 국내외 초대전 450여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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