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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7-04 20: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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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시인의 《나무 한그루》- ⑩빗소리


부산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영미 시인의 《나무 한그루》는 시인의 시와 짧은 단상으로 이루어진다. 시를 쓰게 되는 지점, 또는 시를 써 나가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수상은 시를 감상하는데 색다른 묘미를 주리라 생각한다. 일상적 삶에서 건져 올리는 시적 성찰과,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만상의 자연과 사물들이 어떻게 결합하여 시의 몸 안으로 스며드는지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공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다만, 시인의 글과 생각의 흐름에 따라 시가 먼저 또는 단상이 먼저 나올 수도 있다. 단상은 한 두 줄로 짧을 수도 있고 길수도 있다. - 뉴스부산 강경호 기자 -




▲ Calligraphy KANG GYEONG-HO





당신의 책상 위에
당신은 삶의 가치를 어디다 두는가? 라는 질문지가 놓여 있다면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들이 있다. 이웃을 이롭게 하고 사회와 국가를, 나아가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는 훌륭한 가치들, 그에 비하면 너무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라고도 할지 모르지만 내게 있어 제일의 가치는 사랑이다. 핏줄의 사랑은 논리 이전의 사랑이니 논외로 하고 더 좁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진정한 남녀 간의 사랑이, 거듭 말하지만 내게는 제1가치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몸과 마음 모두 일체가 되어 남김없이 사랑하며 죽을 때까지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 나는 내 삶의 전 과정이 이 선상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진정한 사랑이 이루어낸 결실, 핏줄과 가족의 희노애락, 이것이 내가 인간 세상에 와서 이루고 싶은 꿈의 전부이다. 그리하여 내 마음은 언제나 그 쪽을 향해 있고 그 곳을 향해 열려 있다. 꽃나무들이 비와 햇빛을 그리워하며 남쪽으로 남쪽으로 고개를 내밀 듯이.


‘그대가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는 류시화의 시이다.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략-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하략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이 대목을 주목하자.


이번에 소개하는 詩 <빗소리>는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를 찾아 삼라만상 동서고금을 헤매는 멀고 먼 여정을 노래한 시이다. 내리는 비를 인격화 하여 나와 동일시하고 동시에 내가 찾는 대상과도 동일시하여 결국 비는 나이기도 하면서, 내가 찾는 대상, 그이기도 한 삼위일체, 즉 하나의 몸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내가 꿈꾸는 사랑이 불가능임을. 조만간 끝이 나버리는 사람의 사랑처럼 비도 결국 그치고야 말 것이니, 그러나 또한 지금은 멎었지만 머지않아 또 비가 내릴 것이기에 나는 다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꿈꾸며 빗소리와 함께 길을 나설 것이다. 자 그러면 이쯤에서 천천히 시를 음미해보고 이 시를 쓰게 된 그날 밤 자정의 시각으로 날아가보자.




빗소리



시집 <비가온다>에서



토닥토닥 고분을 캐는 소리
늑골을 파는 소리
흙을 떨궈내고 빗방울 모양의 곡옥(曲玉)을 가려
머리에 귀에 팔에 온몸이 찰랑이는 빗방울 여자를 거느리고

박물관 지나 토성(土城)을 지나 힌두사원 너머 몽골고원 그 남자 청동빛 부푼 근육을 지나, 북아프리카 그 여자 검은 유두를 지나, 지구가 걸어가는 발자국소리 멀리 주술사가 두드리는 여음의 북소리를 따라

밤 내내 걸어가는 신라적 처녀를 따라 그녀가 채우는 놋쇠 요강의 질긴 가락을 따라, 백제마을을 지나 백수광부를 부르는 여옥의 노래 소리를 따라 열두 줄 빗줄기로 두드리는 고구려적 그 여자 분첩소리를 따라, 여덟 구멍 강물로 이어지는 피리의 궁음(宮音)을 따라 흐르고 흘러 여기 내 몸속으로


토닥토닥 고분을 파는 소리
내 몸을 캐는 소리
고생대적부터 나의 그리움이
잠인 듯 꿈인 듯 무덤인 듯
오, 봉분처럼 둥근 그대 늑골 속으로




지붕이 없는 집 아파트에 산지 오래 되고 보니 오리지널 빗소리를 들은 지가 언제인가?
자정, 이부자리에 반듯이 누워 잠을 청하는 시간,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 대신 아파트 외벽과 허공을 적시는 빗소리 가득하다. 잠 대신 귓가에 눈송이마냥 빗소리 소복소복 쌓여간다.


지금 이 순간,
비는 내가 살고 있는 부산 개금동 산19번지 말고도 지구별 어디어디에 내리고 있을까?
또 비는 아득한 옛날 언제부터 시작되어 이다지도 끊임없이 내리고 있는 걸까?


빗소리와 나, 둘 사이의 간격이 점점 좁혀지고, 보다 깊어지고, 드디어 하나의 몸으로 합쳐진다. 나는 지금 흙 대신 어둠을 덮고 ‘아마도 봉분 속이 이러하리라, 깊은 무덤 속이 이러하리라, 이렇게 편안하리라’ 여러 짐작들을 하고 있다. 그 누구도 밝힐 수는 없겠지만 세상사람 모두 한 번, 두 번, 또는 여러 번 이미 무덤 속을 통과한 유경험자일수도 있으니까. 여기까지가 깊은 밤 빗소리를 들으며 몸과 마음이 길어 올린 시적 감흥이며 이 시의 시작이다.



☞ 1


봉분을 스며든 비가 토닥토닥 내 늑골을 적시기 시작할 때쯤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구름 속에 둥실- 떠 있다. 유체 이탈의 과정을 목격할 사이도 없이 온 몸에 빗방울모양의 곡옥을 달고 찰랑찰랑 빗방울 소리를 내며 구름 사이를 유영하고 있다.


토닥토닥 고분을 캐는 소리
늑골을 파는 소리
흙을 떨궈내고 빗방울 모양의 곡옥(曲玉)을 가려
머리에 귀에 팔에 온몸이 찰랑이는 빗방울 여자를 거느리고



☞ 2연

유체이탈의 첫 여정이다
지금 이 순간 비는 지구별 곳곳 어디에서 내리고 있을까? 중앙아시아나 유럽, 사막이나 밀림에 이르기까지 분명 여러 지역에서 내리고 있을 것이니 그 곳을 향해 떠나보자.


나의 詩 <통제 구역> 서두에
최초의 빗줄기가 나의 근원이고
둥둥 북을 치며 태양을 숭배하던 원시성이 나의 시작이라 천명했으니


당연히 생명의 시원이 꿈틀대는 몽골 고원을 거쳐 아프리카 검은 대륙까지 가야만 할 것 같다. 유구한 역사의 터전인 박물관과 토성, 흰두 사원도 필히 들려야 할 것 같고.


박물관 지나 토성(土城)을 지나 힌두사원 너머 몽골고원 그 남자 청동빛 부푼 근육을 지나, 북아프리카 그 여자 검은 유두를 지나, 지구가 걸어가는 발자국소리 멀리 주술사가 두드리는 여음의 북소리를 따라



☞ 3

유체이탈의 둘째 여정, 빗소리를 들으면서 스치던 또 하나의 상념, 비는 아득한 옛날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언제나 그렇듯이 비, 빗소리는 내게 있어 무궁무진, 생각의 원천이다.

東西古今에 걸쳐 변함없이 줄기차게 내리는 비
아마도 거슬러 올라가면 상고시대, 부족, 씨족 더 올라가다보면 궁극적으로는 빛이 있으라 했던 창세기까지 가야만 될 것이다.


2연에서 東西,에 걸쳐 지구별 모든 대륙에 내리는 비의 공간성을 노래했다면,


3연은 古今, 멀고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러니까 우리나라 역사 연대표에 기록되어 있는, 고구려시대에 내리던 비로부터 백제 신라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년년세세 이어지는 비의 유구한 역사성 즉 시간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더불어 뭐니뭐니해도 관건은 내게 있어 한없는 威力을 발휘하는--- 지구가 걸어가는 발자국소리 같기도 하면서---멀리 주술사가 두드리는 여음의 북소리 같기도 하면서---이 詩의 제목이기도 한 빗소리.


빗소리에 집중한다. 빗줄기가 어떤 대상에 닿는 소리, 그 자체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빗소리는 빗소리일 뿐 크게 다르지는 않다. 우리가 보통 표현하는 빗소리의 흔한 의성어들 주룩주룩 보슬보슬 이런 말들은 이 詩에서는 아무런 감응이 없다. 다른 표현, 다른 비유가 있어야 한다. 또한 백제의 빗소리, 신라의 빗소리와 오늘의 빗소리는 분명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이런 시적 사유의 근간 위에 학교 시절에 배운 국문학적 지식까지 보태고 내 취미이기도 한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끝까지 밀어붙인 끝에 얻은 조합이 아래의 3 연이다.


밤내내 걸어가는 신라적 처녀를 따라 그녀가 채우는 놋쇠 요강의 질긴 가락을 따라, 백제마을을 지나 백수광부를 부르는 여옥의 노래 소리를 따라 열두 줄 빗줄기로 두드리는 고구려적 그 여자 분첩소리 따라 여덟 구멍 강물로 이어지는 피리의 궁음(宮音)을 따라 흐르고 흘러 여기 내 몸속으로


빗소리를 타고 내가 닿고자 하는 곳은 어쩌면 내가 시작되었던 곳, 결국은 어머니 자궁속인지도 모르겠다. 대지를 적시는 비는 모든 생명체의 근간이며 흐르고 흘러 지극히 크고 넓은 바다에 닿아 모든 것을 아우르니 결국은 모든 것을 감싸 안는 모성과 그 시작과 끝이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몽골고원 그 남자 청동빛 부푼 근육/
북아프리카 그 여자 검은 유두/
신라적 처녀가 채우는 놋쇠 요강의 질긴 가락/
고구려적 그 여자 분첩소리/


위의 시구는 빗소리의 에로틱함을 곁들이기 위해 넣은 것 같다. 넣은 것 같다고 짐작을 하는 것은 이 시를 쓸 그 당시는 의식하지 못했던 것 같고 단상을 써 나가는 지금, 객관적인 시선으로 다시 보니 아마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던 빗소리에 대한 나의 사유, 다시 말해 자궁으로의 회귀, 모성, 모성에서 여자, 여자에서 여성이라는 성이 갖는 에로틱한 정서로 연결 되면서 자연스럽게 위 시구의 근간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촉촉이 젖은 입술이나 젖은 여자의 머릿결, 땀방울이 뚝뚝 맺힌 남자의 단단한 근육이 한결 유혹적이면서 오감을 자극하는 것을 보면. 이제야 깨닫는 바, 내가 빗소리에 한없이 빠져드는 이유의 한 축이 빗소리의 이 에로틱한 서정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4연

지구를 한 바퀴 돌고 동서고금을 가로질러 흐르고 흘러 다시 내 몸속으로 돌아 왔다. 몽유의 여정을 즐기면서 서서히 잠속으로 빠져든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고 마지막까지 잠들지 못하는 고생대적부터 나의 그리움옆으로 돌아눕는다. 몸을 새우처럼 꼬부리고 이불과 베개를 잔뜩 끌어안는다. 지상의 그대 인양 나는 다시 비의 늑골 속으로, 속으로, 파고든다.


길고 긴 여정이었으므로
首尾相關의 단단하고 일목요연한 시적 구조로 시 전체를 마무리 한다.


시는 크게 가슴으로 쓰는 시, 머리로 쓰는 시로 나눌 수 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가슴으로 쓰는 시를 좋아한다. 따뜻하고 다정하고 아름다운 감성의 말로 독자들의 마음을 다독여 주기 때문이다. 이 시는 가슴과 머리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한없이 흘러가는 빗줄기의 리듬과 시적 리듬을 일치시키기 위하여 소리 내어 읽기를 詩作 내내 멈추지 않았다. 2연과 특히 3연을 쓰는데 많은 사유가 동원되었고 끊임없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시이다.


마지막 4연 ‘고생대적부터 나의 그리움’에 대해 부연하면 이 세상에 생명으로 태어난 이상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실존의 외로움, 존재 자체의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머니 탯줄을 끊고 세상에 혼자 떨어져 나왔듯이 죽을 때도 두려움에 떨며 혼자 그 미지의 세계로 가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 근원적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죽을 때까지 누군가를 그리워 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존재다. 더욱이 사랑지상주의자인 내게 있어 그리움이란 고생대가 아니라 그 이전의 그리움이고 끝 간 데 없는 미래, 그 이후의 그리움이다. 하여 나는 밤내내 걸어가는 신라적 처녀처럼 빗소리와 함께 끝없이 이 밤을 걸어갈 것이다.



지난 주 금요일, 앞서 올린 수면도에서 언급했던 을숙도 <부산현대미술관>에 갔다. 기대해 마지않던 수직정원을 감상했다. 수직정원이란 게 이런 것이로구나! 신기해서 가까이도 가보고 멀리 떨어져서도 봤다. 2, 3년 시간이 경과한 후, 식재한 식물이(175종의 토종 토착식물 4만 4천여 포트) 자리를 잡게 되고 벽면 가득 이쁜 꽃들이 우루루 피어난다면--- 나는 또 벌써 한껏 기대에 부풀기 시작한다.





▲ [뉴스부산] 부산현대미술관




개막전에 초대된 스위스 아티스트 Zimoun의 설치 작품 <사운드 미니멀리즘>에서 나는 정말 놀랍게도 <빗소리>를 만났다. 내가 글로써 빗소리를 노래했다면 그는 단순하고 평범한 재료들을 이용하여 빗줄기와 빗소리를 설치 작품으로 만들었다. 바람소리 새소리 나뭇잎의 떨림소리까지. 인간의 창의력과 예술성이 어디까지 확장될지 자못 엄숙함에 휩싸여 그 자리에 오래 머물렀다.



▲ [뉴스부산] Zimoun의 설치 작품 <사운드 미니멀리즘>




▶ 김영미 시인이 보내온 자기 자기소개


. 1998년 계간 시전문지『시와사상』,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 2004년 한국문예진흥원 창작지원금 수혜

. 2004년 제1시집 <비가 온다>발간 (출판사, 현대시 )

. 2011년 제2시집 <두부> 발간 (출판사, 시와 사상사)

.『시와사상』편집 동인 및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 현재는 부산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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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그루'는 내가 즐겨 쓰는 아이디다. 오랫동안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지금은 자유의 몸이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을 좋아하고 높은 곳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빗소리를 들으면 술 생각이 나고 무엇보다 빈속에 한 잔을 좋아한다. gangmul53@hanmail.net



뉴스부산=강경호 기자 newsbusanco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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