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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3-12 21:46:20
  • 수정 2019-03-13 16:4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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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潭의 書藝漫評

"현대는 지나친 규격화시대이다. 모든 공산품은 규격화되어있고, 우리의 정서는 여기에 점점 메말라 간다. 서화디자인은 이러한 우리의 기계적 환경을 좀 더 인간적 환경으로 순화시킬 수 있으며 서화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이는 해담(海潭) 오후규(吳厚圭) 선생이 밝힌 '대한민국서화디자인협회'의 창립 배경의 한 내용이다. 뉴스부산은 2017년 11월 28일부터 '기존의 서예법을 벗어나 서화의 감성 디자인을 현대 미술에 접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대한민국서화디자인협회 오후규 회장의 서예만평(書藝漫評)을 소개하고 있다. 오늘은 14번째 시간으로 "디지털기술은 서실의 공간을 넓혀준다"를 소개한다. 선생의 서예철학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 뉴스부산 강경호 기자 newsbusancom@daum.net -





(14) 디지털 기술은 서실의 공간을 넓혀준다



Ⅰ. 17년 전, 사람들은 ‘Y2K’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으로 새로운 2000의 새 아침을 맞았다. 염려했던 디지털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디지털은 하루도 쉬지 않고 세상의 모든 것을 너무나 크게 그리고 빨리 바꿔놓았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기술 분야뿐만 아니라 윤리 도덕까지도 바뀌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근간인 4차 산업혁명에서는 과거에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만들 수 있고, 가능하게 할 것이라 한다. 날마다 법고창신에 여념이 없는 서예가에겐 그러한 거창한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아도 될 것이나 디지털 기술이 서실의 공간을 넓힐 수 있다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Ⅱ. 지난 년 말 지인으로부터 희귀한 서화 관련 도록 한 질[전 6권]을 선물로 받았다. 상당히 높은 가격으로 구매하겠다는 사람이 있지만 필자에게 주는 것이라 하였다. 이유인 즉, 장기간 애장해 온 책은 자식과 마찬가지인데. 시집을 보내는 것으로 생각하니 필자가 책의 주인으로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한 것이란다. 책으로부터 ‘지식을 얻고 그 지식을 널리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을 뿐 다른 조건은 없었다.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고 책꽂이에는 꽂을 수 없는 큰 책, 무게도 30~40kg 정도 됨직한 책을 쌀가마 옮기듯 연구실로 옮겼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희귀한 책을 공짜로 얻게 되었으니 기뻐해야겠지만 속으로는 별로 그렇지 않았다.

귀한 고서(古書)를 구했을 땐 정말 기쁠 때도 있었다. 너무 좋아서 애완동물을 쓰다듬듯 할 때도 있었다. 유학 시절, 거의 맨몸으로 이주하여 빈방이나 다름없는 방에 책꽂이를 마련했을 때, 책꽂이에 책이 한 권 두 권 꽃일 때마다 기쁘기 이를 데 없었다. 책꽂이를 빨리 채우고 싶어서 틈날 때마다 헌책방을 찾아다녔다. 일본에서는 헌책방이 많아서 쉽게 책꽂이를 채울 수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헌책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공공 도서관은 일정 기간 지난 단행본 책은 버린다. 이때 일정한 곳에 버리거나 헌책방으로 들어가기도 하는데, 이들 책은 거의 공짜나 다름없을 정도로 저렴하다. 물론 ‘아마존’에서도 헌책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어느 사이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 이사할 때 보면 30~40박스는 가볍게 넘는다. 여기에다 복사 문헌도 보통 4~5박스이다. 선진국 대학 도서관에는 논문집의 경우 100년 이상 된 문헌이 많다. 인용된 문헌의 진본을 보는 것은 흥분 그 자체였다. 혹시 귀국하여 대학원생이나 본인의 연구과제에 도움될 가능성 있어 보이는 것은 가리지 않고 복사하였다. 이렇게 구입한 책과 복사한 문헌을 한 컨테이너에 싣고 귀국하기를 5회, 그 많았던 책과 복사 문헌은 지금 나의 손에는 거의 없다.

처음 얼마 동안은 희귀한 문헌을 많이 소유하게 되었으니 자랑스럽고 뿌듯한 기분도 들었지만, 실용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 자신도 전시용 이외에는 별로 이용하지 않았고, 대학원 학생들은 그 가치를 몰랐다. 10여 년이 지나니 애물단지가 되었다. 버리고자 해도 ‘혹시나’하는 미련에 버릴 수도 없고, 그냥 두자니 공간만 차지할 뿐 사용가치가 없음은 명백하다. 또 10년이 더 지나서야 복사 문헌들은 대부분 버렸고, 책들은 수백 권씩 몇 번 나누어 대학도서관에 기부하기도 했고, 제자에게 주기도 했으며 버리기도 했다. 효용가치가 없어진 것이다. 오래되어서가 아니라 디지털 문화로 인하여 아날로그에 해당하는 책이나 복사 문헌은 학생들조차 별로 보지 않게 된 것이다.


Ⅲ.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별나게 책 모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미국 교수들의 연구실에는 책이 별로 없었으나 우리나라 교수실은 누구나 책이 가득하다. 이러한 현상은 서실이라고 다르지 않다. 서실마다 책이 가득하다. 책은 누구에게라도 필요한 것이나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할 뿐이다. 이러함에도 책을 모으는 것은 장서량으로서 그 사람의 소양이나 지식을 나타낼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거나, 아니면 한 때 책이 귀해 그 열등의식에 대한 보충 심리가 작동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떠한 원인이건 책을 구입한다는 것, 무엇을 수집한다는 것은 젊다는 것이다. 처분한다는 것은 늙었다는 것이거나 의욕을 상실하여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할 것이다. 필자가 그렇다. 공학관련 전공서적은 퇴임[부경대학교]을 기점으로 거의 버렸지만 서예와 관련된 인문서적이 또 어느 사이 방마다 3벽이 모자란다. 그러나 이제 늙었음인가 새롭게 구입하고 싶은 마음이 없고, 있는 것을 어떻게 버리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한 번씩 선별하여 버리고 있지만 인문 서적은 죽을 때까지 다 버리지는 못할 것 같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필자의 지인처럼, 정말 잘 사용할 사람이 있다면 미련 없이 주고 싶은 심정이다.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죽기 전에 자신의 사진이나 옷을 정리하라’는 말을 읽은 것 같다. 공감한다. 죽기 전에 내가 구입한 책, 내가 사용하던 것들은 적당히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특히 책은 버리더라도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점에서는 디지털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특히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책장을 정리해주기에 더없이 편리하다.

법고창신에 여념이 없는 서예가들 중에는 디지털 맹이 많으나 코앞의 디지털 기술까지 외면할 필요는 없다. 서실 벽에 가득한 책들을 핸드폰이나 노트북 한권으로 대신할 수 있게 되었으니 디지털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넓은 공간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디지털이 만능은 아니니 컴맹 서예가가 기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책으로 좁아진 공간인들 어떠랴! 깊은 맛과 구수한 정감은 편리한 디지털이 아니라 불편한 아나로그에서 느끼게 되는 것이니.

선물로 받은 희귀본 책 한 질을 볼 때마다 만감이 스친다.


海潭 吳厚圭(書畵批評家)






▶관련 기사, 海潭의 書藝漫評
. (13) 『조선, 병풍의 나라』 전에 감사드린다, http://www.newsbusan.com/news/view.php?idx=2743
. (12) 『논어』 2.4의 “不踰矩" (2), http://www.newsbusan.com/news/view.php?idx=2743
. (11) 『논어』 2.4의 “不踰矩" (1), http://www.newsbusan.com/news/view.php?idx=2705
. (10) 원광대학교 서예과 동문전, http://newsbusan.com/news/view.php?idx=2562




[덧붙이는 글]
☞ 기고, 칼럼 등 외부 필진의 글은 '뉴스부산'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www.new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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