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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04-13 21: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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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하다보면 좌절의 순간이 종종 있다. 사업체를 가진 사람이 한 두 번은 겪어 보았을 우리 이웃의 이야기다. 다들 좋은 결과를 바라지만, 일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평생 일궈 왔던 노력과 재산이 일순간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SRF(주)조현보 대표(58)는 보증 실패 후 어렵게 일군 회사의 화재, 소송 등 연속되는 절망의 순간에서도 희망을 잊지 않고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서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공장이 있는 김해 상동의 사무실을 찾아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대석 SRF(주) 조현보 대표




악몽과도 같았던 지난 시간을 송두리째 가슴에 묻었기 때문이었을까. 나쁜 기억을 지우는 방법이 '내 탓이오' 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조현보 대표(58)의 모습은 의외로 편안한 듯 했다.



"요즘 힘 많이 드신다고요, 자금회전이 꽤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어쩌겠습니까. 다 내 부덕의 소치인데. 최선을 다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오리라 믿고 있습니다."


조 대표는 십 수 년 전 보증이 빌미가 되어 힘든 시간을 보냈다. 순간의 판단치고는 지불해야할 고통이 너무 컸다. 그러던 중 김해 상동에서 2013년 7월 사업자등록을 내면서 재기의 발판을 만들었다. 사회적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신재생에너지 분야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SRF(Solid Refuse Fuel)라는 재생이 가능한 가연성 폐기물을 선별한 뒤 파쇄, 분쇄하여 고형연료로 제조하는 사업이었다. 평소 환경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조 대표는 관련 기술과 연구로 업계에 자문 등을 해왔던터라 낯설지만은 않았던 출발이었다.



▲ 김해시 상동면 신재생에너지 기업 `대석 SRF(주)` 현장



그러나 첫 번째로 그를 가로 막은 것은 자금이었다. 2곳의 시중은행에서 대출 승인이 거절되었다. 신용불량의 멍에를 짊어진 그에게 선뜻 나서 대출을 알선해 줄 곳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역지사지로 생각해봐도 저에게 누가 대출을 쉽게 해 주겠어요. 다만, 그 분들을 설득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실현가능한 사업계획서를 만드는 방법밖엔 없었어요."


조 대표는 실망하지 않고 차근차근 사업계획서를 보완해 가면서 회사의 비전을 제시했다. 다행히 한 시중은행에서 조 대표가 추진하려는 SRF분야를 국가적으로 필요한 산업이라고 판단하여 마침내 동년 10월 대출 승인이 이루어졌다.

"우리 공장이 있는 녹산공단지점의 지점장이 아니었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죠. 그 분의 마인드 덕분에 우리 같은 작은 공장들도 희망의 싹을 심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출이 시작되면서 기계 제작, 채용, 건물 작업 등을 진행하였습니다. 특히 인력 채용 시, 과거 중국 연길에서 담배건조기 사업 건으로 몇 년간 체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외국인 근로자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014년 6월 드디어 관할관청인 김해시로부터 공장 준공에 대한 허가가 떨어지면서 조 대표의 공장은 역사적인 시험 가동에 들어가게 되었다.

"시험 가동 후, 제일 큰 문제는 역시 생산과 판로였습니다. 수익이 나야 근로자 임금도 줄 것이 아닙니까. 정말 죽자 살자 뛰었습니다. 우리 직원 모두가 한마음이었어요."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 시련이 연이어 그를 가로 막았다. 그 해 11월 21일 뜻하지 않는 화재가 발생했다.

"충격적이었습니다. 준공 5개월도 되지 않았거든요."

경찰추산 피해액은 약 25억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험회사는 보험금을 노린 고의 화재로 지불을 거절했다. 그리고 조 대표를 사기로 경찰, 검찰에 고소하였다.

"그런데... 제보자가 알고 지냈던 지인과 후배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서 충격은 말도 못했습니다."


조 대표는 이 대목에서 잠시 한숨을 쉬었다.

"작년 11월 부산검찰청 조사에서도 무혐의를 받기까지 지난 2년 여 동안 검찰청과 경찰서를 오가며 정신없이 뛰어다녀야만 했습니다. 모두 무혐의와 불기소처분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손해보험사의 '채무부존재' 소송이었습니다. 이것도 금년 2월 민사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었습니다."


민사에서 승소한 뒤, 조 대표는 이제 한시름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네 번째 시련의 시작인 줄 몰랐다고 했다.

"또다시 손해보험사에서 항소를 한 것입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채 현재 고등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대표께서 지적하신 네 차례의 시련 중 그래도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보험금을 노린 고의 화재라고 소문이 나면서 저에게 쏟아지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의심의 눈초리였습니다. 저의 명예는 땅바닥에 떨어지고, 참을 수 없는 치욕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세상을 잘 못 살아왔다는 생각에 괴로워했죠."

조 대표는 이 사건은 한동안 회사의 동력을 급격하게 무너뜨린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반면에 소중한 것을 얻었습니다. 화재 당시 저에 대한 비난과 불신 대신 여태껏 저를 믿고 묵묵히 기다려 주신 모든 분들의 성원과 격려입니다."


그러면서 이내 "시간이 지나면 공정한 판결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면서 "우리 공장과 연계된 다수의 영세 공장과 직원들을 생각하면 절대 쓰러질 수 없다"고 했다.

실지 조 대표가 운영하는 공장과 하청업체인 기계, 제작, 건설회사 등 영세 사업자는 자금 회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일부는 부도 위험까지 가는 위기에 봉착했다고 했다.




▲ 현장 기숙사 모습, 좌로부터 4개의 룸이 있는 입구, 주방과 식탁, 거실 겸 휴식공간



외국인 근로자와 관련하여 조 대표가 한마디를 더 붙인다고 했다.

"현재 우리 공장에는 10명의 근로자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7명이 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입니다. 국적별로는 우즈베키스탄 6명, 조선족 1명으로 여성도 2명이나 있습니다. 이들 중 3명은 공장 가동 때부터 어려움을 함께 해 왔습니다. 2014년 화재가 나고 이 친구들 때문에 고민을 참 많이 했습니다. 떠나 버리지는 않을까, 임금이나 줄 수 있을까. 너무 힘들었으니까요. 문득 준공 당시 이들을 위한 기숙사 방을 만든 것이 생각났습니다. 어렵지만 같이 가자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 고형연료 재조 전 파쇄, 분쇄된 가연성 폐기물처리장 앞에서 우즈베키스탄 국적 아크바르 씨(29 · 부공장장) 씨



가족과 다름없이 자신을 믿고 지지해 준 그들은 늘 자신에게 힘이 되었다는 조 대표는 지난 해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아크바르 씨(29)에게 부공장장이라는 중책을 맡기기도 했다. 체육학 석사 출신의 책임감과 리더십이 있는 아크바르 씨를 평소 눈여겨 봐왔던 것이다.

지금도 급여일이면 마음이 먹먹하다는 조 대표는 시련과 좌절 속에서 반드시 회사를 살리겠다고 했다.

"저처럼 보증 하나 때문에 십 수 년간 허공을 걷는 사람들이 어디 한 두 명이겠습니까. 처음엔 너무 막막하여 마치 꿈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다싶어 무슨 일이든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또 이런 소송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극복의 과정'에 대한 해결책을 물었다.
"이전보다 더 열심히 일합니다. 시시비비는 법정에서 꼭 가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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