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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7-08 00: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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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이유의 '이유 있는 소설' ... 퍼즐 위의 잠(6)


▲ 1회(6월 17일), 퍼즐 맞추기만 하면 됩니다.

▲ 2회(6월 21일), 아무 장식 없는 흰 벽에...

▲ 3회(6월 24일), 그녀는 상자 속 비닐을...

▲ 4회(6월 28일), 그녀는 옥상 한켠에 있는...

▲ 5회(7월 01일), 그녀는 방바닥에 커다란...

▲ 6회(7월 05일), 그녀가 검은 조각 하나를...

▲ 7회(7월 08일), 곰솥 뚜껑을 열고 국을 뜨는데...

▲ 8회(7월 12일), 그녀는 고흐의 검은 사이프러스 나무를 메우고 있다.

▲ 9회(7월 15일), 하나, 두나를 시가에 맡길까 하다...

▲ 10회(7월 19일), 가정에서 〇〇〇 부업 하실 분 구합니다.

▲ 11회(7월 22일), 돈 받으러 간 그는 전화도 없고...

▲ 12회(7월 26일), 그녀는 지갑에 남아 있는 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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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위의 잠(7), 곰솥 뚜껑을 열고 국을 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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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솥 뚜껑을 열고 국을 뜨는데 국자에 건져진 건 퍼즐 조각들이다. 국물에도 굳어진 돼지기름처럼, 아니 석유 방울처럼 검은 퍼즐 조각들이 둥둥 떠 있다. 그녀는 놀라기도 했지만 하필이면, 퍼즐 조각인가 싶어 몹시 불쾌해져서 곰솥 냄비를 들어 하수구에 쏟아 붓는다. 퍼즐 조각들이 하수도로 빨려들어 가는가 싶더니 수챗구멍 바깥으로 물이 점점 차오르며 내려가지 않는다. 검은색 조각들이, 어느새 알록달록한 퍼즐들이 되어 입구를 틀어막으며 빈틈없이 쌓인다. 손으로 자꾸 긁어서 떠내는데도 조각들은 줄어들지 않고 물은 점점 차올라 집안을 가득 채운다. 어린이집 가방과 우산과 옷들 장롱이 떠오르고 그녀도 운동화처럼, 생활집기처럼, 마치 수세미나 빗자루처럼 둥둥 떠 있다. 떠오르는 물체들 사이로 납작하게 눌려진 사람 같은 퍼즐 조각들이 마치 진짜 작은 생명체처럼 팔다리를 움직이며 쏠려 다닌다. 목 주위로 거미같이 엉겨 붙는 조각들을 떼어내려 그녀는 다급하게 손을 놀리며 버둥거린다. 숨이 막힌다. 그녀는 물밑으로 가라앉지 않으려고, 퍼즐에 먹히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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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퍼즐 그림판만 한 창문으로 빗물이 떨어지는 게 보인다. 눅눅한 방안에 고소한 기름 냄새가 감돈다. 아이들의 기분 좋은 웅얼거림이 냄새와 섞인다. 상 위에 후라이드와 양념치킨이 든 포장박스와 양념무가 펼쳐져 있다. 하나는 닭다리를 두 손으로 쥐고 야무지게 뜯고 있다. 하나의 입에는 땅콩소스가 번져 있다. 체하지 않게 콜라 마셔가며 먹어. 그녀가 콜라를 따라주자 하나는 벌컥벌컥 마시고는 술 마시듯 과장되게 캬아, 캬아, 거린다. 두나는 하나의 행동이 재밌다며 따라한다. 그는 맥주를 마시는 중에도 두나에게 뼈가 들어가지 않도록 살을 발라준다. 세나는 그녀의 무르팍에 앉아 그녀가 손으로 잘게 비벼서 주는 살코기를 받아먹는다. 그녀도 그가 주는 맥주를 오랜만에 맘 편히 받아 마신다. 기분 좋게 건배를 하고는 텔레비전 화면에 눈길을 준다. 텔레비전에서는 연예인들이 나와 숨바꼭질 하며 서로의 등판에 붙은 번호판을 누가 먼저 떼느냐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는 티브이를 보면서 구김 없이 철딱서니 없게 웃는다. 아이들한테도 아빠가 아닌 형처럼 다정하고 장난스럽다. 집안에 있는 대부분의 가구들은 결혼 전 그와 그녀가 쓰던 것들을 가져온 것이지만 24인치텔레비전은 친구들이 돈을 모아서 해준 새 거였다.
요 며칠 그는 기분이 좋다. 퀵서비스 일이 꽤 짭짤하다며, 돈 많이 벌어오겠다며 흰소리하는 그가 그녀의 눈에 밉지 않았다. 포만감으로 아이들도 더 이상 먹지 않고 상에서 물러난다. 상 위에는 뼈다귀와 양념 묻은 휴지와 기름 묻은 컵들이 지저분하다. 그녀가 물휴지로 아이들의 손과 입을 닦는다. 그가 상을 구석으로 물리고는 방에 벌렁 드러누워 세나를 가슴 위에 올린다. 세나를 들었다 놓았다 하자 세나는 꺄르륵거린다. 장난기가 발동한 그녀가 그의 발바닥을 간지럽히자 그가 발작하듯 웃음을 참으며 하지 마, 하지 마, 그런다.
어느새 세나는 누워있는 그의 가슴께에 엎어져 잠이 들고, 그녀는 그의 허벅지를 베고 그녀의 양 다리는 하나와 두나가 하나씩 베고 누웠다. 재미있는 사슬뜨기처럼 얽혀 있다. 오늘만 같아라, 그녀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배부르고 등 따습고, 식구들 무탈하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남부러울 게 없다고 생각한다.

배이유 ·소설가 eyou11@naver.com







▶ 관련기사 : [뉴스부산초대석] 배이유 소설, 퍼즐 위의 잠(6)

- http://newsbusan.com/news/view.php?idx=3461

▶ 관련기사 : [뉴스부산초대석] 배이유 소설가, '배이유의 이유 있는 소설'

- http://newsbusan.com/news/list.php?mcode=m333yu8b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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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야기를 담는 신문, 뉴스부산'은 지난 4월 총7회(4월8일~29일)에 걸쳐 인기리에 연재된「조도에는 새가 없다」에 이은 '배이유 작가'의 두 번째 연재작 「퍼즐 위의 잠」을 모두 12회로 나눠 게재합니다. 지난 2011년 중반의 나이로 <한국소설>에 등단한 배 작가는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문학창작기금상'을 받아 2015년 첫 소설집 ⌜퍼즐 위의 새⌟를 출간하였으며, 이 소설집으로 2016년 '부산작가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녀는 또 2018년, ‘검은 붓꽃’이 '현진건문학상 추천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첫 소설집에서 그녀가 밝혔듯이 작가의 작품은 언제나 실패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문학과 자신에 대한 끈질긴 희망을 '변신'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고백은 '크게 변동 사항이 없는 한'이라는 단서에도 불구하고, 송정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패배로 거듭날 글쓰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혀왔습니다. 두 번째 소개작 「퍼즐 위의 잠」 또한 이전과 같은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뉴스부산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성하의 계절을 앞둔 6월, 이번 작품을 통해 '배이유'라는 우리 시대의 또 다른 나를 만나보기를 권합니다. 고맙습니다. - 2019년 6월, 뉴스부산 강경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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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진해에서 유년기를 보낸 뒤 줄곧 부산에서 살았다. 시골 들판과 수리조합 물가, 낮은 산, 과수원. 그리고 유년의 동네 골목길에서 또래나 덜 자란 사촌들과 열심히 몸을 움직이며 뛰어놀았다. 지금은 징그럽게만 느껴질 양서류, 파충류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누군가의 등에 업혀 가던 논둑길에서, 밤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들이 내 눈높이로 낮게 내려와 심장에 박히던 기억. #2학년 때 초량동 구석진 허름한 만화방에서 경이로운 문자의 세계에 눈을 떴다. 몸과 언어가 일치하던 어린 시절 책의 세계에 깊이 매혹되었다. 이런 강렬한 기억들이 모여 저절로 문학을 편애하게 되었다. 결국 소설에의 탐닉이 지금의 나로 이끌었다. 크게 변동 사항이 없는 한 송정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패배로 거듭날 글쓰기를 계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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