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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7-12 2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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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이유의 '이유 있는 소설' ... 퍼즐 위의 잠(8)


▲ 1회(6월 17일), 퍼즐 맞추기만 하면 됩니다.

▲ 2회(6월 21일), 아무 장식 없는 흰 벽에...

▲ 3회(6월 24일), 그녀는 상자 속 비닐을...

▲ 4회(6월 28일), 그녀는 옥상 한켠에 있는...

▲ 5회(7월 01일), 그녀는 방바닥에 커다란...

▲ 6회(7월 05일), 그녀가 검은 조각 하나를...

▲ 7회(7월 08일), 곰솥 뚜껑을 열고 국을 뜨는데...

8회(7월 12일), 그녀는 고흐의 검은 사이프러스 나무를 메우고 있다.

▲ 9회(7월 15일), 하나, 두나를 시가에 맡길까 하다...

▲ 10회(7월 19일), 가정에서 〇〇〇 부업 하실 분 구합니다.

▲ 11회(7월 22일), 돈 받으러 간 그는 전화도 없고...

▲ 12회(7월 26일), 그녀는 지갑에

 남아 있는 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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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위의 잠(8), 그녀는 고흐의 검은 사이프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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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고흐의 검은 사이프러스 나무를 메우고 있다. 손은 빨라지는데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온다. 깊은 밤 작은 방에 그와 하나와 두나가 배추처럼 포개져 잠들어 있다. 더울 텐데 세상모르고 잔다. 그는 어제부터 커피숍에 알바 하러 나간다. 그녀는 당분간, 임시직, 이라고 위안한다. 그녀는 낮에 화낸 것을, 두나를 심하게 때린 것을 후회했다. 아이들도 방 안에서 얼마나 갑갑했을까. 그녀 뒤에 누워있는 세나의 배 위에 그녀는 타월을 덮어준다. 세나의 목에 땀띠가 심하다. 그녀는 다시 상 위에 엎드리며 땀방울이 그림판에 떨어지지 않게 조심한다. 그녀는 퍼즐 조각을 들어 배경의 바탕색을 요리저리 맞춰본다. 내가 좀 더 고생하면 되고 밤샘을 해서라도 끝을 내면 되겠지. 달 부분인 노란색 퍼즐 조각을 홈에 끼운다. 안 맞는다. 그녀는 다른 조각을 찾아 끼우고는 목의 통증 때문에 옆으로 슬쩍 눕는다. 조금만 눈을 감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녀는 스르르 잠이 들고 만다.


그녀가 눈을 떠 폰을 보니 3시 15분이다. 그녀는 추스르고 일어나 냉동실에서 얼음을 꺼내 먹고 눈두덩 위에도 올려둔다. 그녀는 상 앞에 앉아 퍼즐 조각을 쥐고 빈곳을 메워나간다. 간간이 새벽의 빈 도로를 자동차가 빠르게 스치며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그녀는 뚫어지게 그림판을 보며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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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맑고 투명하다. 그녀는 옥상에서 길 아래 층층이 지붕 낮은 집들을 바라보며 어깨를 펴고 숨을 깊이 들이쉰다. 며칠을 방에 처박혀 있다 햇볕을 쬐니 뜨겁거나 말거나 온몸을 소독하는 것 같아 개운하다. 더 날아갈 것 같은 건 그녀가 퍼즐 맞추기를 다 마쳤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녀는 춤추듯 빙글빙글 돌기만 했는데, 내심 더 하고 싶은 건, 해방이다, 해방, 이라며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비록 세 개의 그림판 중 한 개는 손도 못 대었지만, 두 개라도 완전하게 끝을 낸 게 어딘가 싶었다. 하찮은 일이지만 뭔가를 해낸 것 같은 성취감. 그녀는 혹사한 눈에도 눈꺼풀을 크게 열어 바깥 공기를 흘려 넣고, 뻣뻣한 두 팔을 벌려 습한 겨드랑이에도 바람이 들어가도록 한다. 보이지 않는 곰팡이에 그녀의 전신이 먹힌 것 같았는데,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새삼스럽게 다닥다닥 붙은 집과 건물들의 지붕을 내려다보며 그녀가 서 있는 가운데를 중심으로 이 동네의 풍경이 하나의 그림판이고 집과 나무와 사람들이 위에 올려진 퍼즐 조각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마디마디 틈 없이 꽉 짜 맞추어진 세계. 그녀는 여기에 꼼짝없이 서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콕 박힌 퍼즐 조각처럼 그녀도 하나의 조각이고 이웃한 퍼즐 조각들에 포위된 채 계속 그대로 있어야만 현실이라는 그림판이 빈틈없이 완성될 것 같았다. 문득 그녀가 그림 바깥으로 튕겨나가거나 증발한다면 여전히 이 세계는 이 빠진 그림판으로 남아 있게 될까, 아니면 다른 똑같은 퍼즐로 채워져 완성될까. 아니면 와르르 전체가 무너져내리고 흩어져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릴까? 그녀는 새삼 그게 궁금해졌다. 그녀는 발이 달린 퍼즐 조각이 되어 그림판 바깥으로 걸어나가 사라져버리는 상상을 한다. 아주 멀리 위에서 굽어보니 그림판은 구멍 난 채로, 아니 그 구멍조차도 금방 물의 흔적처럼 지워져 아무런 변화 없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구름처럼 잘도 흘러간다. 그녀는 뭔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빨래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건조대로 끌어당기는데 육포같이 납작하고 긴 게 시멘트 바닥에 붙어 있다. 바짝 마른 지렁이가 틀림없다. 지난번에 살려준 지렁일까 짐작해 보지만 전혀 알 수가 없다. 지렁이는 너무나 특징이 없어 구별이 가지 않게 똑같아 보이니까. 그녀는 다른 지렁이일 거라 믿으며 건조된 지렁이를 집어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파란 플라스틱 화분 흙 위에 얹는다. 흙과 섞이면 잘 썩어 흙이라도 될 수 있지. 흙이라도. 그녀는 마치 누가 듣기라도 하는 듯 속삭였다.



배이유 ·소설가 eyou11@naver.com





▶ 관련기사 : [뉴스부산초대석] 배이유 소설, 퍼즐 위의 잠(7)

- http://newsbusan.com/news/view.php?idx=3479

▶ 관련기사 : [뉴스부산초대석] 배이유 소설가, '배이유의 이유 있는 소설'

- http://newsbusan.com/news/list.php?mcode=m333yu8b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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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야기를 담는 신문, 뉴스부산'은 지난 4월 총7회(4월8일~29일)에 걸쳐 인기리에 연재된「조도에는 새가 없다」에 이은 '배이유 작가'의 두 번째 연재작 「퍼즐 위의 잠」을 모두 12회로 나눠 게재합니다. 지난 2011년 중반의 나이로 <한국소설>에 등단한 배 작가는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문학창작기금상'을 받아 2015년 첫 소설집 ⌜퍼즐 위의 새⌟를 출간하였으며, 이 소설집으로 2016년 '부산작가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녀는 또 2018년, ‘검은 붓꽃’이 '현진건문학상 추천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첫 소설집에서 그녀가 밝혔듯이 작가의 작품은 언제나 실패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문학과 자신에 대한 끈질긴 희망을 '변신'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고백은 '크게 변동 사항이 없는 한'이라는 단서에도 불구하고, 송정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패배로 거듭날 글쓰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혀왔습니다. 두 번째 소개작 「퍼즐 위의 잠」 또한 이전과 같은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뉴스부산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성하의 계절을 앞둔 6월, 이번 작품을 통해 '배이유'라는 우리 시대의 또 다른 나를 만나보기를 권합니다. 고맙습니다. - 2019년 6월, 뉴스부산 강경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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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진해에서 유년기를 보낸 뒤 줄곧 부산에서 살았다. 시골 들판과 수리조합 물가, 낮은 산, 과수원. 그리고 유년의 동네 골목길에서 또래나 덜 자란 사촌들과 열심히 몸을 움직이며 뛰어놀았다. 지금은 징그럽게만 느껴질 양서류, 파충류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누군가의 등에 업혀 가던 논둑길에서, 밤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들이 내 눈높이로 낮게 내려와 심장에 박히던 기억. #2학년 때 초량동 구석진 허름한 만화방에서 경이로운 문자의 세계에 눈을 떴다. 몸과 언어가 일치하던 어린 시절 책의 세계에 깊이 매혹되었다. 이런 강렬한 기억들이 모여 저절로 문학을 편애하게 되었다. 결국 소설에의 탐닉이 지금의 나로 이끌었다. 크게 변동 사항이 없는 한 송정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패배로 거듭날 글쓰기를 계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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