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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7-19 23:2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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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이유의 '이유 있는 소설' ... 퍼즐 위의 잠(9)


▲ 1회(6월 17일), 퍼즐 맞추기만 하면 됩니다.

▲ 2회(6월 21일), 아무 장식 없는 흰 벽에...

▲ 3회(6월 24일), 그녀는 상자 속 비닐을...

▲ 4회(6월 28일), 그녀는 옥상 한켠에 있는...

▲ 5회(7월 01일), 그녀는 방바닥에 커다란...

▲ 6회(7월 05일), 그녀가 검은 조각 하나를...

▲ 7회(7월 08일), 곰솥 뚜껑을 열고 국을 뜨는데...

▲ 8회(7월 12일), 그녀는 고흐의 검은 사이프러스 나무를 메우고 있다.

▲ 9회(7월 15일), 하나, 두나를 시가에 맡길까 하다...

▲ 10회(7월 19일), 가정에서 〇〇〇 부업 하실 분 구합니다.

▲ 11회(7월 22일), 돈 받으러 간 그는 전화도 없고...

▲ 12회(7월 26일), 그녀는 지갑에 남아 있는 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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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위의 잠(10), 가정에서 〇〇〇 부업 하실 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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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〇〇〇 부업 하실 분 구합니다.’
쇼핑백 접기. 봉투 붙이기. 지퍼 달기. 양말 뒤집기. 속옷에 리본 달기. 인형 눈 붙이기.
큐빅 붙이기. 구슬 꿰기. 실밥 뜯기. 십자수. 퀼트. 펠트. 뜨개질. 매듭.
박스/상자 접기. 테이프 자르기. 스티커 부착.
볼펜 문구(단순 조립). 휴대폰 조립. 전선 까기
도라지/ 마늘/ 밤/ 은행 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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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열이 채여 골목길을 왔다 갔다 하다 도로 집으로 들어와 화장실에서 찬물을 뒤집어썼다. 아이들도 그녀의 살벌한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얌전히 있었다. 그녀는 집으로 아이들을 몰고 어떻게 왔는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낮에 사무실에서 당한 상황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여자는 종이 위의 글자 따위를 그녀의 눈앞에서 또박또박 짚어 보이며 그녀의 입장을 이해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선을 그으며 말했다. 계약 조항에도 나와 있지만 어디에도 가입비를 돌려주는 데는 없으며, 보증금이란 것도 원래대로 약속을 이행했을 때 반환하며, 약속한 날짜에 세 개의 퍼즐판을 완성해와야만 개당 사만 원씩 십이만 원이 지급되는데, 이 사항을 위반했기에, 오히려 우리가 위약금을 받아야 한다나, 하면서 그녀에게 덮어씌웠다.


그녀는 기가 차서 듣는 내내 입만 벌렸다. 약속이라니, 무슨 약속.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어요, 내가 고생고생해서 한 것들을 날로 먹겠다니, 내가 지금 무료봉사 한 거예요? 이게 말이 돼요. 억울해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녀는 더 얕잡아 볼까 봐 눈에 힘을 주어 억지로 눈물을 참았다. 그녀의 항변은 퍼즐 한 조각 움직일 수 없었다. 분명히 그들의 작태가 잘못된 것인데도 그녀는 논리적으로 방어할 수 없었고, 이길 수 없었고, 교통사고 시의 흔한 경우처럼 그녀가 분명 피해자인데도 오히려 가해자가 된 듯 한 이 비논리적 상황을 뚫고 나오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높아지자 등에 업힌 세나가 먼저 울고 의자에 불안하게 앉아 있던 아이들이 그녀의 몸에 매달리며 합창으로 울었다. 사무실에는 아이들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급기야 사무실 쪽의 남자 둘이 영업방해죄로 고발하겠다며 아이들과 그녀를 바깥으로 밀쳐냈다. 그들에게 밀리지 않으려 그녀는 온몸으로 뻗대었지만, 바닥에 드러누워서라도 버티고 싶었지만, 그녀를 에워싸며 미친 듯 울어대는 하나, 두나, 세나가 잘못될까 봐 물러나와야 했다.


이 사기꾼들, 내가 이대로 가만있을 것 같애, 절대로 내 돈은 못 떼먹어. 아이들과 짐짝처럼 쫓겨나면서 그녀는 발악하듯 있는 힘을 다해 말을 쏟아내었다.


그녀의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자신이 헐크가 되어 창고에 들어가서 만들어온 퍼즐판들을 다 엎어버리거나 불 지르는 장면이 진짜처럼 되살아나 거듭 그녀의 머릿속을 꽉 채운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당했다는 사실만 그녀에게 또렷하게 인식된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



배이유 ·소설가 eyou11@naver.com





▶ 관련기사 : [뉴스부산초대석] 배이유 소설, 퍼즐 위의 잠(7)

- http://newsbusan.com/news/view.php?idx=3479

▶ 관련기사 : [뉴스부산초대석] 배이유 소설가, '배이유의 이유 있는 소설'

- http://newsbusan.com/news/list.php?mcode=m333yu8b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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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야기를 담는 신문, 뉴스부산'은 지난 4월 총7회(4월8일~29일)에 걸쳐 인기리에 연재된「조도에는 새가 없다」에 이은 '배이유 작가'의 두 번째 연재작 「퍼즐 위의 잠」을 모두 12회로 나눠 게재합니다. 지난 2011년 중반의 나이로 <한국소설>에 등단한 배 작가는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문학창작기금상'을 받아 2015년 첫 소설집 ⌜퍼즐 위의 새⌟를 출간하였으며, 이 소설집으로 2016년 '부산작가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녀는 또 2018년, ‘검은 붓꽃’이 '현진건문학상 추천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첫 소설집에서 그녀가 밝혔듯이 작가의 작품은 언제나 실패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문학과 자신에 대한 끈질긴 희망을 '변신'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고백은 '크게 변동 사항이 없는 한'이라는 단서에도 불구하고, 송정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패배로 거듭날 글쓰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혀왔습니다. 두 번째 소개작 「퍼즐 위의 잠」 또한 이전과 같은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뉴스부산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성하의 계절을 앞둔 6월, 이번 작품을 통해 '배이유'라는 우리 시대의 또 다른 나를 만나보기를 권합니다. [2019. 6. 17.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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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진해에서 유년기를 보낸 뒤 줄곧 부산에서 살았다. 시골 들판과 수리조합 물가, 낮은 산, 과수원. 그리고 유년의 동네 골목길에서 또래나 덜 자란 사촌들과 열심히 몸을 움직이며 뛰어놀았다. 지금은 징그럽게만 느껴질 양서류, 파충류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누군가의 등에 업혀 가던 논둑길에서, 밤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들이 내 눈높이로 낮게 내려와 심장에 박히던 기억. #2학년 때 초량동 구석진 허름한 만화방에서 경이로운 문자의 세계에 눈을 떴다. 몸과 언어가 일치하던 어린 시절 책의 세계에 깊이 매혹되었다. 이런 강렬한 기억들이 모여 저절로 문학을 편애하게 되었다. 결국 소설에의 탐닉이 지금의 나로 이끌었다. 크게 변동 사항이 없는 한 송정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패배로 거듭날 글쓰기를 계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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