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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7-22 01:3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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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이유의 '이유 있는 소설' ... 퍼즐 위의 잠(9)


▲ 1회(6월 17일), 퍼즐 맞추기만 하면 됩니다.

▲ 2회(6월 21일), 아무 장식 없는 흰 벽에...

▲ 3회(6월 24일), 그녀는 상자 속 비닐을...

▲ 4회(6월 28일), 그녀는 옥상 한켠에 있는...

▲ 5회(7월 01일), 그녀는 방바닥에 커다란...

▲ 6회(7월 05일), 그녀가 검은 조각 하나를...

▲ 7회(7월 08일), 곰솥 뚜껑을 열고 국을 뜨는데...

▲ 8회(7월 12일), 그녀는 고흐의 검은 사이프러스 나무를 메우고 있다.

▲ 9회(7월 15일), 하나, 두나를 시가에 맡길까 하다...

▲ 10회(7월 19일), 가정에서 〇〇〇 부업 하실 분 구합니다.

▲ 11회(7월 22일), 돈 받으러 간 그는 전화도 없고...

▲ 12회(7월 26일), 그녀는 지갑에 남아 있는 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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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위의 잠(11), 돈 받으러 간 그는 전화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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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받으러 간 그는 전화도 없고 들어오지도 않는다. 몇 시간째 전화를 받지도 않는다. 그녀는 걱정도 되지만 그의 무심함에 약이 오른다. 점심때가 훨씬 지나 그녀의 폴더폰으로, 바로 가게로 왔어, 라는 그의 메시지가 날아온다. 그녀가 그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며 못 받은 돈을 받아 달라고 했을 때 그는 선뜻 그러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수법에 넘어간 그녀를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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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개한테 물렸다 생각하고 잊어버리자, 라는 그의 말에 그녀는 그의 뺨을 후려치고 싶었다. 어떻게 저 말을 쉽게 뱉을 수 있는지, 그는 그녀의 마음을 전혀 이해 못한다고 생각한다. 너는 잊어버려, 나는 포기 못해, 어떻게 만든 돈인데, 거기 가서 밤을 새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안 물러날 거야. 거기 오는 사람들한테 다 떠벌릴 거야. 보증금, 가입비 다 받아낼 거야. 그는 그녀의 말에 한숨을 쉬더니, 한참을 머뭇거리다 되돌려 받지 않겠다는 포기각서를 써주고 왔다고 실토한다. 포기각서라니? 아니 받지는 못할망정 각서라니? 그녀의 목소리가 녹슨 철제난간처럼 위태롭다. 그는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말해보려 하지만 이 상황에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병신아, 내가 널 믿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 그녀는 방바닥에 주저앉으며 그동안 누르고 눌렀던 울음을 터트린다. 그녀를 달래려던 그는 맹렬하게 화가 치밀어 오른다. 퍼즐업체의 남자는 다른 사람을 죄인처럼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남자는 그를 아이 다루듯, 손안에 든 장난감 쥐듯 했다. 그도 어떡하다 그 지경까지 갔는지 사무실에서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데, 그녀는 더욱더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이 엿 같다고 여긴다. 그녀의 울음에 짜증이 난다. 그는 자신의 못난 짓을 감추려 그녀에게 더 심한 말을 해댄다. 그와 그녀는 생채기를 들추며 서로를 할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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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도록 그녀는 잠들지 못했다. 벽에 기대어 한곳만을 골똘히 바라보며 날이 밝을 때까지 나무관절인형처럼 앉아 있다.




배이유 ·소설가 eyou11@naver.com







▶ 관련기사 : [뉴스부산초대석] 배이유 소설, 퍼즐 위의 잠(10)

- http://newsbusan.com/news/view.php?idx=3544

▶ 관련기사 : [뉴스부산초대석] 배이유 소설가, '배이유의 이유 있는 소설'

- http://newsbusan.com/news/list.php?mcode=m333yu8b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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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야기를 담는 신문, 뉴스부산'은 지난 4월 총7회(4월8일~29일)에 걸쳐 인기리에 연재된「조도에는 새가 없다」에 이은 '배이유 작가'의 두 번째 연재작 「퍼즐 위의 잠」을 모두 12회로 나눠 게재합니다. 지난 2011년 중반의 나이로 <한국소설>에 등단한 배 작가는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문학창작기금상'을 받아 2015년 첫 소설집 ⌜퍼즐 위의 새⌟를 출간하였으며, 이 소설집으로 2016년 '부산작가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녀는 또 2018년, ‘검은 붓꽃’이 '현진건문학상 추천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첫 소설집에서 그녀가 밝혔듯이 작가의 작품은 언제나 실패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문학과 자신에 대한 끈질긴 희망을 '변신'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고백은 '크게 변동 사항이 없는 한'이라는 단서에도 불구하고, 송정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패배로 거듭날 글쓰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혀왔습니다. 두 번째 소개작 「퍼즐 위의 잠」 또한 이전과 같은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뉴스부산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성하의 계절을 앞둔 6월, 이번 작품을 통해 '배이유'라는 우리 시대의 또 다른 나를 만나보기를 권합니다. [2019. 6. 17.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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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진해에서 유년기를 보낸 뒤 줄곧 부산에서 살았다. 시골 들판과 수리조합 물가, 낮은 산, 과수원. 그리고 유년의 동네 골목길에서 또래나 덜 자란 사촌들과 열심히 몸을 움직이며 뛰어놀았다. 지금은 징그럽게만 느껴질 양서류, 파충류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누군가의 등에 업혀 가던 논둑길에서, 밤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들이 내 눈높이로 낮게 내려와 심장에 박히던 기억. #2학년 때 초량동 구석진 허름한 만화방에서 경이로운 문자의 세계에 눈을 떴다. 몸과 언어가 일치하던 어린 시절 책의 세계에 깊이 매혹되었다. 이런 강렬한 기억들이 모여 저절로 문학을 편애하게 되었다. 결국 소설에의 탐닉이 지금의 나로 이끌었다. 크게 변동 사항이 없는 한 송정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패배로 거듭날 글쓰기를 계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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