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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7-26 00: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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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이유의 '이유 있는 소설' ... 퍼즐 위의 잠<마지막 회>


▲ 1회(6월 17일), 퍼즐 맞추기만 하면 됩니다.

▲ 2회(6월 21일), 아무 장식 없는 흰 벽에...

▲ 3회(6월 24일), 그녀는 상자 속 비닐을...

▲ 4회(6월 28일), 그녀는 옥상 한켠에 있는...

▲ 5회(7월 01일), 그녀는 방바닥에 커다란...

▲ 6회(7월 05일), 그녀가 검은 조각 하나를...

▲ 7회(7월 08일), 곰솥 뚜껑을 열고 국을 뜨는데...

▲ 8회(7월 12일), 그녀는 고흐의 검은 사이프러스 나무를 메우고 있다.

▲ 9회(7월 15일), 하나, 두나를 시가에 맡길까 하다...

▲ 10회(7월 19일), 가정에서 〇〇〇 부업 하실 분 구합니다.

▲ 11회(7월 22일), 돈 받으러 간 그는 전화도 없고...

▲ 12회(7월 26일), 그녀는 지갑에 남아 있는 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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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위의 잠<마지막회>, 그녀는 지갑에 남아 있는 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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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지갑에 남아 있는 돈을 통틀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를 비닐봉지 가득 사 온다. 그녀는 상 위에 스낵과자와 초코파이를 놓아두고 아이들 셋을 상 둘레에 얌전히 앉힌다. 하나 두나에게 쮸쮸바를 물리고 세나에겐 젖병에 우유를 부어주고 부드러운 빵을 쥐어 준다. 그녀는 아이들이 놀던 고무튜브에다 물을 채워 넣는다. 큰 냄비로 여러 번 물을 담아 나른다. 물이 어느 정도로 차오르자 그녀는 큰방과 작은방 경계에 서서 아이들을 하나하나 내려다본다. 아이들의 까만 머리통만을 보며 일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들은 먹는 데와 만화영화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녀는 늘 열려 있던 얇은 미닫이문을 닫으며 말한다. 엄마 피곤해서 물속에 앉아 있을 테니 방해하지 말고 너희들끼리 티브이 보면서 놀고 있어. 엄마가 됐다고 하면 그때 들어 와. 그녀는 미닫이문 가운데의 물음표 같은 걸쇠를 구멍에 끼운다.


그녀는 책상 서랍에서 초록색 테이프를 꺼내 들고서 옷 입은 채로 가만히 튜브 욕조 안으로 들어가 앉는다. 물에 과자부스러기 같은 부유물이 떠 있다. 퍼즐 조각들이 그녀를 옥죄던 얼마 전의 꿈이 떠오른다. 퍼즐을 기어코 맞추려고 애를 썼던 것이 먼 일처럼 느껴진다. 낱낱이 분해되어 떠도는 조각처럼 그녀 자신이 해체된 느낌이다. 그녀는 얼룩진 벽면의 모서리를 응시하며 스크린처럼 펼쳐지는 그녀의 미래를 본다. 돈의 가랑이 아래 짓눌려 모욕당하는 그녀의 모습이 정답처럼 보인다. 진저리치도록 뻔한 답에 그녀는 새로이 답을 쓸 용기를 잃어버린다. 뻔하다는 건 어떻게 더 해볼 도리가 없다는 것. 그녀는 심호흡을 깊게 하고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둥글게 구부린다. 엎어진 태아의 자세로 그녀는 얼굴을 물에 묻는다. 머리까지 잠긴다. 그녀는 꼼짝하지 않는다. 그녀는 숨이 차오를 때까지 숫자를 세듯 속으로 되뇐다. 겨우 15만원 때문에 그까짓 5만원 때문에 고작 8만원 때문에 기껏 4만원 때문에 겨우 2만원 때문에 고작 기껏… 그녀는 숨이 차지만 아무리 숨이 막혀도 절대로 입을 벌리지 않으리라 이빨을 앙다문다. 점점 더 미친 듯 숨이 가빠오지만 꼬옥 꼭 지퍼를 잠그듯 입술을 닫아걸고 머리를 물 위로 내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아래로 처박는다. 정말 죽을 수 있을까를 실험하는 것처럼 그녀의 행위가 진지한 만큼 희극적이고 허술해 보인다. 좀 더 오래 자고 싶은 것뿐이라고, 깊게 자고 싶은 거라고. 깊은 잠을……


그녀는 어두운 동굴 같은 데에 있다. 어디선가 퍼즐 조각들이 어지럽게 돌며 그녀 주위로 모인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퍼즐들이 제 홈을 찾아 맞추어진다. 한가운데 관 모양으로 짜여진 커다란 퍼즐판 위에 그녀가 누워 있다. 몽롱하다. 숨이 막힌다. 그녀의 희미한 의식 속으로 동굴 밖 어디선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엄마. 그녀의 이름이 엄마였던가. 엄마, 엄마. 아이의 소리를 따라 동굴 안으로 빛 한줄기가 비친다. 잠 깨고 싶지 않은 의지와 달리 문득 빛이 만들어내는 길을 따라 달려가고 싶다는 자각이 스친다. 그러자 그녀를 감싸고 있던 퍼즐판이 유리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진다. 가쁜 호흡을 참지 못해 그녀는 다급하게 물 위로 고개를 솟구친다. 그녀는 한꺼번에 숨을 몰아쉰다. 실패다. 이번엔 테이프로 입과 코를 막아야겠다. 깊은 잠을 방해받지 않게.


엄마, 엄마!


하나가 문을 두드린다.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젖은 얼굴이 문 쪽으로 돌아간다. <끝>.


배이유 ·소설가 eyou11@naver.com






▶ 관련기사 : [뉴스부산초대석] 배이유 소설, 퍼즐 위의 잠(11)

- http://newsbusan.com/news/view.php?idx=3557

▶ 관련기사 : [뉴스부산초대석] 배이유 소설가, '배이유의 이유 있는 소설'

- http://newsbusan.com/news/list.php?mcode=m333yu8b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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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야기를 담는 신문, 뉴스부산'은 지난 4월 총7회(4월8일~29일)에 걸쳐 인기리에 연재된「조도에는 새가 없다」에 이은 '배이유 작가'의 두 번째 연재작 「퍼즐 위의 잠」을 모두 12회로 나눠 게재합니다. 지난 2011년 중반의 나이로 <한국소설>에 등단한 배 작가는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문학창작기금상'을 받아 2015년 첫 소설집 ⌜퍼즐 위의 새⌟를 출간하였으며, 이 소설집으로 2016년 '부산작가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녀는 또 2018년, ‘검은 붓꽃’이 '현진건문학상 추천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첫 소설집에서 그녀가 밝혔듯이 작가의 작품은 언제나 실패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문학과 자신에 대한 끈질긴 희망을 '변신'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고백은 '크게 변동 사항이 없는 한'이라는 단서에도 불구하고, 송정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패배로 거듭날 글쓰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혀왔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소개작 「퍼즐 위의 잠」 마지막 회(12회)로 그동안 「퍼즐 위의 잠」을 애독해 주신 뉴스부산 독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배이유 소설가의 섬세하고 따뜻한 소설을 통해 또 다른 나를 만나보기를 권합니다. [2019. 7. 26.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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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진해에서 유년기를 보낸 뒤 줄곧 부산에서 살았다. 시골 들판과 수리조합 물가, 낮은 산, 과수원. 그리고 유년의 동네 골목길에서 또래나 덜 자란 사촌들과 열심히 몸을 움직이며 뛰어놀았다. 지금은 징그럽게만 느껴질 양서류, 파충류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누군가의 등에 업혀 가던 논둑길에서, 밤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들이 내 눈높이로 낮게 내려와 심장에 박히던 기억. #2학년 때 초량동 구석진 허름한 만화방에서 경이로운 문자의 세계에 눈을 떴다. 몸과 언어가 일치하던 어린 시절 책의 세계에 깊이 매혹되었다. 이런 강렬한 기억들이 모여 저절로 문학을 편애하게 되었다. 결국 소설에의 탐닉이 지금의 나로 이끌었다. 크게 변동 사항이 없는 한 송정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패배로 거듭날 글쓰기를 계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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