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7-04-27 01:58:55
기사수정
30년 한길을 간다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한 청년이 잠깐의 외도를 맞이했지만 앞으로도 그림과 함께하는 꿈을 꾸고 있다. 미술대 학생들의 큰형님으로 통하는 대연동 경성대 앞 '길화방' 김종화 대표의 얘길 들어본다.



▲ 30년 경성대앞 화방을 지키고 있는 `길화방`, 주문받은 캔버스를 손질하고 있는 이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는 김종화 대표. (수영넷)



화방을 운영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습니다. ·고교시절 미술부 활동을 하면서 공모대회 입상도 제법 했더랬습니다. 당연히 미술대학 진학을 생각했고요. 하지만 예술대학 진학은 공부가 뒤쳐질 수 있다고 부모님께서 반대를 하셨습니다. 공대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녔습니다만 이내 그만두었습니다. 적성에 맞지 않았던 거죠.


화방은 우연찮게 하게 되었습니다. 방향을 바꿔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던 중, 연산동 부산여대 앞 화방을 지날 때 였습니다. 불현듯 화방이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나도 모르게 그림에 대한 열정이 불쑥 나온 겁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랑 바로 동업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경성대 쪽으로 언제 왔습니까


2년 정도 화방을 하면서 그림에 대한 열망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학사 편입도 하고 화방도 운영할 곳을 찾다가 지금의 이곳으로 정했습니다. 연산동 '수련화방'의 운영권은 친구가 맡기로 정리하고, 저는 독립하면서 경성대 앞에 화방을 열었습니다.


▲ 지하 1층에 위치한 `길화방` 곳곳에 미술전문용품이 자리하고 있다.(수영넷)



'길화방'이라고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초창기 경영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오픈 당시 주위에 몇 개의 관련 가게가 있었습니다. 사실 '화방'이라고 하면 미술전문용품을 파는 곳인데, 부산에 화방이 25군데에 불과했습니다. 당시엔 문구도 팔고 미술용품도 취급하는 형태였어요. 엄밀히 말해 전문 화방은 아니었던 거죠. 전문 화방이 아니고는 구입할 수 없었던 미술재료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그림을 그려왔던 저는 마치 ''을 오가며 누구나 쉽게 미술용품을 살 수 있도록 해야겠다 결심하고 '''화방'을 조합한 '길화방'을 선택했습니다.




처음 2년간 고전을 했던 것 같습니다. 3년차 접어들면서 좀 나아지더군요. 전체 매출 비율은 대략 콤푸레샤 등 디자인용품 60%, 회화용품 40%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컴퓨터 작업이 본격적으로 활성화 되고, 매출이 확 줄기 시작하면서 차츰 디자인용품이 한 자릿수로 내려가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이러다 정말 문 닫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이 많아지면서 고민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학생 중심에서 주부, 직장인 등으로 고객층이 바뀌고, 가라앉았던 디자인용품 수요가 살아나기 시작한 겁니다. 기관· 단체 등의 미술관련 교육 활동이 진행되고, 주부반과 취미반이 활성화된 것입니다.


매출 비율의 경우, 이전에는 수채화, 유화 장르가 거의 매출의 60% 이상이었는데 지금은 민화, 크로키, 캘리그라피, 캐리커쳐 등으로 영역이 확장되면서 매출도 70%가 넘을 때도 있습니다. 그만큼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나 할까, 하여간 이전에 여건상 하지 못했던 걸 요즘엔 다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화방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으시면 소개해 주시죠


이십년도 더 되었을 겁니다. 예술대 학생들 졸업작품전(졸전)이 있을 때는 밤 12시까지 같이 작업을 하는 것은 다반사였습니다. 동생 같은 이 친구들과 같이 이리저리 옮기고 거들어주다 보면 금방 시간이 흐릅니다. 5층 작업실 잠긴 문을 여느라 떨어져 골절상을 입고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진적도 있었습니다. 회화과 체육대회 복싱시합 등 그러고 보니 예술대 학생들과 관련된 일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큰 고객이었으니까요. 아직도 연락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한번은 졸전 마지막 날, 광안리에서 뒤풀이가 있다고 초대를 받았습니다. 친하게 지내던 학생 몇 몇이 와 덕분에 전시를 잘하게 되었으니 식사라도 함께 하자는 것이었죠. 학생들 요청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당연히 참석해 축하도 해줘야지 생각했고 찬조금을 준비해서 참석했습니다. '락카페'라는 곳에서 1차가 끝내고 모두 백사장으로 가 빙 둘러 앉았습니다. 전체학생 70명 중 69명이 참석한 자리였었죠. 일일히 그들에게 돌아가면서 캔 맥주와 새우깡 1개씩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한가운데로 나아가 서서 오늘 이 자리에 초대해 줘서 고맙고, 그동안 길화방을 사랑하고 애용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일제히 박수가 쏟아졌고, 같이 노래 부르고 한 기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또렷이 그 때가 생각나는 것은 '학창시절의 순수함과 그림에 대한 열정'을 공감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까다로운 고객도 많았을 텐데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30년 하다 보니 간혹 그런 분도 계시지만 별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주로 작업과 관계되는 일입니다. 어느 날 늦게 한 청년이 찾아 왔어요. 내일까지 액자를 하나 짜 달라면서 오후 2시까지 해 달라는 겁니다. 당시엔 대부분 수작업이라 대개 의뢰를 하면 일주일에서 빨라야 3~4일 지나 납기일을 맞추곤 했어요. 미안하지만 내일까지는 안 된다고 거절했죠. 그랬더니 청년은 다급한 표정으로 그러면 오후 4시까지라도 꼭 해 달라는 겁니다. 사정을 들어보니 딱하기도 해 밤을 새서더라도 하자 싶어 4시까지로 약속을 했습니다. 새벽까지 작업을 마치고 다음 날 일찍 출근해 작업을 거의 마무리 하고 있는데 2시쯤 의뢰인이 찾아 왔어요. 그런데 불같이 화를 내며 약속한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안 해놓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는 겁니다.


▲ 모든 공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캔버스를 만지고 있는 김종화 대표.(수영넷)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단체 주문이었는데 주문하고 2~3일이 지났을 겁니다. 70% 이상 작업이 진행된 상황에서 전화가 온 겁니다. 저번에 주문한 거 취소하고 사이즈를 바꿔달라는 거였어요. 아무런 미안함도 없이 당연하듯요. 한두 개도 아니고 이미 작업에 들어가서 곤란하다고 했더니 다짜고짜 화를 내는데... 이런 경우, 좀 번거롭고 손해를 보더라도 고객의 입장을 생각하는 편입니다. 하루이틀할 가게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한두 개도 아니고 혈기왕성할 때라 그 때는 화가 좀 났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우리 작업 시스템을 모르니까 그랬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냥 넘어갑니다.



화방 운영에 대한 앞으로 계획은


딸이 가정을 꾸리고 나니 이제는 좀 쉬워도 되겠다 싶었어요. 아들은 직장 다니고 있으니 자기 살 길 찾아갈 것이고 크게 들어가는 비용은 없으니, 가게세 내고 용돈만 벌어 쓰면 되겠다 했죠.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자신의 일이 없으면 오늘처럼 이렇게 출근해서 내일까지 제작할 액자 틀을 만들 일도 없을 것 아니에요. 당분간은 쉬면서 좋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시간이 무작정 길어진다고 하니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현재 오전 9시 반에 출근해 오후 8시 반에 퇴근을 합니다만, 앞으로 6시 경 마칠 생각입니다. 하지만 출근시간은 지키려고 합니다. 할 일이 없더라도 출근해서 문을 열고 청소하고 신문 보고 패턴을 유지할 생각입니다.


▲ 인터뷰 중간에 수시로 걸려오는 고객 전화, 단골의 힘이 고맙고 무섭다고 했다.(수영넷)


한편으로 오랫동안 저를 찾아주는 고객 생각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흔히들 '단골'이란 말을 쉽게 생각하시는 경향이 있는듯합니다 만, 이 분들은 참 고맙고 무서운 분들입니다. 이 분들에게는 가격도 저렴하게 받고 최대한 잘해 드려야한다는 부담감도 있는 반면 IMF 같이 어려운 때라도 잊지 않고 항시 찾아와 주시는 분들입니다. 아직은 건강하고 30년 넘도록 이 일에 매달렸으니 아니다 싶을 때까지 일을 하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하시고 싶은 일이 있으시다면


최근 화방을 찾는 고객을 보면 연령대가 10대부터 80대까지 정말 다양합니다. 특히 40, 50, 60대에서 주부, 학생, 직장인 등 자신의 일을 즐기고 사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림이 미치도록 그리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잠시 삶에 지쳐서인지 주춤하고 있지만 조만간 캠퍼스를 펼치고 바로 이 곳에서 그림을 그릴 것이라는 소망을 가져 봅니다.




▲ 화방 입구에서 포즈를 취한 김종화 대표, 고객의 편의를 위해 일요일을 제외한 평일은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8시 반까지, 토요일은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수영넷)




0
기사수정
저작권자 ⓒ뉴스부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수영넷 다른 기사 보기
  • <뉴스부산>은 지역의 정보와 소통의 플랫폼입니다
    <뉴스부산>은 소소한 일상이 묻어나는 지역의 사랑방입니다.
    <뉴스부산>은 따뜻하고 훈훈한! 싱그럽고 아름다운 이웃의 이야기를 찾습니다.
    "당신의 아이디어와 뉴스부산이 만나면 경쟁력이 됩니다"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최근 1주일 많이 본 기사더보기
김해공항 국제선 확장터미널 4월 26일 개장 속초 앞바다서 길이 3m 청상아리 혼획 ... 7만원에 위판 부산시특사경, 5월 가정의 달 맞아 '먹거리 안전 특별단속' 실시 부산도서관, 5월 4일 어린이 체험행사 운영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
google-site-verification: googleedc899da2de9315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