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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10-03 13: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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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潭의 書藝漫評] "현대는 지나친 규격화시대이다. 모든 공산품은 규격화되어있고, 우리의 정서는 여기에 점점 메말라 간다. 서화디자인은 이러한 우리의 기계적 환경을 좀 더 인간적 환경으로 순화시킬 수 있으며 서화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이는 해담(海潭) 오후규(吳厚圭) 선생이 밝힌 '(사)대한민국서화디자인협회'의 창립 배경의 한 내용이다. 뉴스부산은 지난 2017년 11월 28일부터 '기존의 서예법을 벗어나 서화의 감성 디자인을 현대 미술에 접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대한민국서화디자인협회 오후규 이사장의 서예만평(書藝漫評)을 소개하고 있다. 오늘은 21번째 시간으로 "空間에 妙味가 있다"를 소개한다. 선생의 서예철학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 뉴스부산 강경호 기자 newsbusancom@daum.net





▲ [뉴스부산ART] 해담 오후규=도판은 서예에서 공(空, 여백)의 역할을 도식화한 것이나, 의도로 이루어진 공이 아니라 서사 후에 저절로 생긴 공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출처: 『余白』 吉川蕉仙 著, 木耳社(일본), 2000, p. 87.







뉴스부산ART : 해담의 서예만평 海潭의 書藝漫評 (21)




(21) 空間에 妙味가 있다.




☛ 매사에 ‘공(空)’, ‘텅 빈’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색(色)인 흑(黑)에만 관심을 두었지, 공(空)인 백(白, 화선지)에는 (아마도)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공에는 다양한 얼굴이 있다.


일상에서는 공간의 소중함을 의식하지 못하나 공간만큼 소중한 것도 없다. 공간 없이 단 하루도 살지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한다. 공간에 묘미가 있다. 불후의 과학자 뉴턴도, 아인슈타인도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의 묘를 찾은 것이고, 앞으로의 누군가도 이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려면 공간에서의 묘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공간은 우주공학에서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 심지어 서화도 공간의 문제에 자유롭지 못하다.


공자가 논어에서 ‘회사후소(繪事後素)’라 한 것이나 서예에서 한 말 채옹(蔡邕, 133~192, 혹은 132~192)이 그의 「필론(筆論)」에서 ”글씨라는 것은 푸는 것이다.(“書者 散也”)라 한 것도 공의 범주라 할 것이다. 물론 전자는 그림 그리기에 앞서 바탕의 상태가 소(素)라야 한다는 것이고, 후자는 글을 쓰기에 앞서 정신적 상태가 산(散)해야 함을 강조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소’나 ‘산’은 ‘공’의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 공간은 다양한 개념, 다양한 형태가 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빈방,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빈 호주머니, 빈 병, 빈 봉투 등이겠다. 물론 없다는 의미에서의 ‘0’이나 ‘무(無)’도 ‘공’에 포함될 것이다.


없다는 것은 없는 것이지 무슨 의미가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렇지 않다. 우선 숫자로서의 0은 생각할수록 신비롭다. 현대 수학에서 0은 2가지 기능을 갖는다. 예를 들면 10과 100 등을 구분할 수 있는 차원의 기능이 있고, 또 하나는 숫자를 나타내는 기능이 있다. 0은 기원전 바빌로니아에서 사용하였고, 그리스인들이 좀 더 구체적 개념으로 정착시킨 것이다. 그러나 0이라는 수의 심오함은 그로부터 수 세기가 지난 뒤 인도인들에 의해 밝혀졌다. 힌두의 수학자들은 0 그 자체가 고유한 수, 즉 아무것도 없음을 나타내는 수임을 간파한 것이다. 이전까지는 전혀 구체화할 수 없었던 무(無)의 개념은 0의 등장과 함께 비로소 실제적인 기호로 표현할 수 있었다. 이것은 대단한 발견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B.C.384~B.C.322)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들도 0의 의미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0을 가리켜 '규칙에서 벗어난 수'라고 하였을 뿐이다. 1~0의 숫자가 발견되고 2천 년이 지난 6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0의 의미가 밝혀진 것이다. 예를 들면, 인도 수학자들은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무한대'라는 개념과 연결 켰고, 7세기 인도의 브라마굽타(598~668)는 '임의의 수를 0으로 나눈 몫'을 ‘무한대’라 정의하였다.


수에서 ‘없다’라는 의미의 ‘0(零)’과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는 의미에서의 ‘공(空)’도 묘하다. 우리가 일상 말하는 ‘나노기술’부터 우주 개발에 이르기까지의 기계기술은 공의 발견과 응용으로 얻어진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 못지않게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사실, 선인들은 일찍부터 공에 관심을 가졌다. 처음으로 공에 대해 논리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그리스 철학자였다. 르네상스 시대 미술에서 3대 천재가 동시대에 있었던 것과 같이 그리스 시대의 아테네에 3대 위인이 동시대에 탄생했다. ‘인간의 덕’을 설파한 소크라테스(기원전 470~399), ‘이데아의 세계’를 말한 플라톤(기원전 427~347), ‘자연현상’에 관심을 두었던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였다. 이들은 서로 사제관계이면서도 관심을 두었던 분야는 각각 대화, 영혼 불멸의 이상적인 세계, 그리고 운동이나 자연 현상의 변화 등으로 서로의 관심 분야가 달랐다. 그런데 이들 3위인 중에 유독 아리스토텔레스만이 “공(vacuum, 공, 진공)” 따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등 공에 관심을 가졌다.


*(1) 『진공이란 무엇인가』, 히로세 타치시게 외, 문창범 역, 전파과학사, 1995, p. 18.


즉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17세까지 서구의 자연관을 지배하였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어떻게 해서든지 진공을 만들어보자는 반작용이 일어났다. 여기에 앞장선 사람, 진공을 가시적으로 보여준 최초의 사람이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1564~1642)의 제자 토리첼리(1608~1647)이고, 그가 실험으로 보여준 진공이 오늘날까지 인용되고 있는 ‘토리첼리의 진공(760mmHg)’이다. 이후 진공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힘과 연계되면서 근대 물리학 연구에 큰 장을 차지하게 되었다. 물론 진공 연구가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로 유명한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는 진공은 ‘미세한 물질로 채워져 있음으로 진공은 있을 수 없다.’는 의미심장한 주장을 하였다. 그의 주장은 옳았고, 이를 이해하려면 소립자의 세계에서부터 우주에 작용하는 힘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또 다른 공이 있다. 고대 동양의 현인들은 유무에 관심이 많았다. 보이는 것은 무엇이며 보이지 않는 것은 또한 무엇인가? 서예인들이 많이 인용하는 『반야바라밀다심경』에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이 나온다. 여기서 현물을 말하는 ‘색’과 무(無)를 말하는 ‘공’은 등가로 보이지만 공을 강조하는 불교 사상이다. 여기서도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상반된 것이지만 같은 것이라니 공은 참 묘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생각해 보면 현실에서도, 집안의 에어컨을 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물이 생기고(응축기에서 응축된 물) 그 물은 증기가 되어 없어진다. 색도 색이 아니며 공도 공이 아닌가 하면, 색이 공이고 공이 색이다.



☛ 길을 가다 발에 차이는 돌멩이도 그 안에 무수히 많은 공(空, 공간)이 있고, 그 공 안에는 무수히 많은 물질이 있다. 또 그 물질 안에는 무수히 많은 공이 있고, 또 그 공에는 무수히 많은 물질이 있다. 공의 세계는 양파와 같다. 파도 파도 끝이 없다.


공은 세상 만물에 존재하는 생명의 근원이다. 공이 없으면 숨을 쉬지도 못하고 움직일 수도 없으니 살지 못한다. 집이고 서실이고 공(간)이 없으면 들어가지도 못한다.


필자는 월간서예 2019년 9월호에서 ‘공간은 아름다운 것’이라 하였다. ‘공간은 우리의 생명 연장에 도움을 주는 것이므로 아름답고, 아름다운 것이니 소유욕이 발동한다. 마치 국가는 국경으로, 개인은 울타리로, 맹수도 분비물로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것도 ’아름다움의 실천’이라 하였다. 금호(今號)에서는, 공간을 가지는 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이용하는 것에 묘미가 있다는 것에 중점을 둔 것이다.


공간은 무용물(無用物)이 아니라 용물(用物)이다. 서예도 달리 말하면 이를 이용하는 것인데도 공간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니 용공(用空)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이러한 경향은 공모전은 물론이고 개인전에서도 자주 보인다. ‘화선지에 글쓰기’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공간의 묘미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공간개념은 분야에 상관없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림이건 서예건 공간을 파악하고 운영하지 않고는 결코 좋은 작품을 생산할 수 없다. 지극한 묘는 공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도시에 꽉 차 있는 고층 아파트, 벽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겠지만 사용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공간만 생각한다. 서예에서도 그렇다. 공(空, 여백)의 중요성이 지대함에도 오직 흑(黑, 획)만 생각한다. 공의 중요성이 5%에도 미치지 못하더라도 결국, 공의 관리 여하가 상하수(上下手)를 구분 짓는 것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누구나 여백(餘白, 空)을 말하지만 아쉽게도 흑(黑)에 앞서 여백을 먼저 구상한 작품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공(여백)을 지배하지 않고는 결코 서예에 달했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글쓰기를 벗어나려면, 그리고 서예의 묘미는 흑이 아니라 공이다.



海潭 吳厚圭(書畵批評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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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해담 오후규(海潭 吳厚圭) ☞ (사)대한민국서화디자인협회 이사장, 부경대학교명예교수, 서화비평가, (사)부산미협학술평론분과회장, (사)한국미학회, (사)한국문협(수필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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