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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11-18 17:4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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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사병, 제대로 인식하자"




중국에서 흑사병 (페스트) 환자가 발생하여 공포를 안겨주고 있다. 우리 모두는 어떤 식으로든지 중세 흑사병의 참상에 대한 기록을 접해 본 적이 있으므로, 그 공포가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나치게 흑사병에 대한 공포를 가질 필요는 없다.


감염병이 대중에게 위협이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전파력과 독력(독성)이다. 독감 바이러스(인플루엔자)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2009년의 소위 “신종 플루”는 전파력이 매우 뛰어난 바이러스였기 때문에 전 세계로 퍼져서 수억 명 이상이 감염되었지만, 독력이 그리 높지는 않았다. 반면, 1918년의 스페인독감은 전파력과 독력 모두 매우 높아서 많게는 1억 명까지 사망했다는 추정이 있을 정도로 희생이 컸다.


전파력과 독력의 관점에서 흑사병을 살펴 보면 이렇다. 전파력은 예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지만 옛날에는 전파 경로를 몰라서 전파 차단이 어려웠던 반면, 지금은 전파 경로를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옛날처럼 무분별하게 전파될 가능성이 없다. 독력도 여전하나 인간의 대응 능력이 달라졌다. 그때는 효과적인 치료제가 없었으나 지금은 "항생제"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갖고 있다. 물론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세균이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지만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Yersinia pestis”에 의해서 생기는 세균감염증이 옛날의 “흑사병” 혹은 “페스트”라고 불리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고, 그저 “Y. pestis에 의한 폐렴 혹은 패혈증” 정도로 불리는 게 옳다고 본다. 현재 그만한 독성을 보이면서 환자를 희생시키는 미생물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의 얘기가 Y. pestis 감염증이 위험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 세균이 여전히 높은 독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개개인의 환자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고, 사람 사이의 전파도 가능하여 공중보건의 측면에서 철저히 관리되어야 하는 질병임에는 틀림이 없다. 우리나라 보건 당국은 수십 가지의 감염병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는데, 여기에 흑사병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법정 감염병들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 중세의 흑사병을 떠올리지는 않는 것처럼, Y. pestis 감염증에 대해서도 일상적인 감정을 가지는 정도의 주의를 기울이면 되겠다는 뜻이다.


사실 흑사병은 기록이 있는 과거부터 따지면 크게 세 차례의 대유행이 있었다. 6세기의 유스티아누스 역병, 중세의 흑사병, 19세기 중국의 흑사병이다. 세 번째 유행의 여파로 아직도 세계에서 산발적으로 흑사병 환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2010~2015년까지 3천 명 이상의 환자와 6백 명 가까운 사망자가 생겼다. 마다가스카르에서는 거의 해마다 흑사병이 유행하고 있으며, 2017년에는 2천 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하여 2백 명 정도가 사망하였다고 한다.


“현재 흑사병은 아프리카, 과거 소련을 구성했던 국가들, 그리고 미주 지역에서 유행하고 있다. 2003년 세계보건기구는 2,118건의 흑사병례와 182건의 사망례를 보고하였다. 그 중 2,025건의 흑사병례와 177건의 사망례는 마다가스카르와 콩고 민주공화국에서 보고된 것이다. (...) 2004년 12월 콩고 민주공화국의 다이아몬드 광산 노동자들 사이에서 폐렴 흑사병이 발생하여, 이듬해 3월 유 행이 통제될 때까지 130명이 감염되어 57명이 사망하였다.” (『세상을 바꾼 12가지 질병』 154-155p)


마지막으로 흑사병의 중요성에 대해서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필자는 위에서 흑사병의 공중보건학적 중요성을 과소 평가하는 듯한 글을 썼지만, 생물학적 터러에서는 매우 중요한 세균이다. 지금 세계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흑사병이 산발적으로 발생할 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가 사악한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세균을 살포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페스트균은 어쩌면 전쟁에서 사용된 최초의 생물학적 무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몽골 제국이 발트해 연안의 카파를 공격할 때 흑사병으로 죽은 병사의 시체를 성 안으로 던져 넣은 것이다. 1990년대에 구 소련이 생물 병기로 사용할 흑사병균 에어로졸을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미 고위 당국자들이 “당신의 도시에 퍼진 전염병”이라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통해 모의 연습한 결과, 테러 4일째에 누적해서 4천 명의 환자와 1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현대의 흑사병에서 중요한 것은, 보건 당국이 신속하고 효과적인 계획을 세우고 대비하는 것이다. 산발적인 증례, 특히 사람 사이에 전파될 수 있는 폐렴성 흑사병에 대한 대비도 중요하고, 생물 테러에 대한 대비도 중요하다. 일반 시민들은 보건 당국의 지시에 적극 협조하여 질병의 확산을 막고 개인의 안녕을 추구하여야 한다. 지나친 공포로 동요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장철훈 양산부산대병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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