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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1-05 19: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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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부산ART : 해담의 서예만평 海潭의 書藝漫評




▲ [뉴스부산] 오후규=新禧, 春山不語, 杜宇一聲(춘산은 말이 없고, 두견새는 운다), 乙酉之元旦, 金文瑄, 고 김문선 선생님께서는 생전에 매년 연하의 글을 써 지인에게 보냈다.





(24) 지금 여기 福 많이 받으세요!



☛ 살아가면서 인간만큼 불평불만을 많이 하는 동물도 없을 것이다. 남녀노소·지위고하 막론하고 불평불만이 많다. 신은 인간에게 미래의 일을 알 수 없게 하였음에도 이를 알고자 과학을 동원하고 역술인에게 매달린다. 동화 〈어부와 황금 물고기〉에서처럼 욕심이 많아서 그럴 것이다. 욕심 중에서도 가장 으뜸인 것은 구복(求福)일 것이다.


인간은 시시때때로 복(福)을 원하지만 한 해가 시작되는 1월 1일, 설날은 복을 주고받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 사람마다 ‘복 받으세요!’한다. 복은 보이지도 않고 또 자신이 주지도 못하면서 물건을 주듯 ‘받으라’ 한다. 또 받지도 않았으면서 받은 듯 ‘고맙습니다.’ 하고 ‘복 받으라’며 되돌려 준다. 어떤 면에서는 아주 착하고 정직한 인간적 모습이다.


복은 운(運)과 더불어 종교, 미신, 음양오행설 등과 결부되면서 서민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농락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복은 무엇이며 운은 무엇일까?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동양철학이나 종교에서 이들에 관한 주석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서민의 상식으로는 ‘자신에게 유익한 무엇을 갖는 것’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와 달리 자신의 마음 작용에서 얻어지는 만족감이라 해도 될 것이며 다른 여러 가지 표현이 있을 것이다.


반면에 운은 복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문자가 다른 것만큼 차이가 나는 말이 있다. 아마 동양에서는 복을 더 많이 언급하고 서양에서는 have a good luck에서와 같이 운을 더 많이 언급하는 것 같다. 물론 luck은 행운의 뜻이겠고, 행은 행복으로 복의 대표적 모델일 것이다. 여하튼 복은 동양 정신문화의 주축을 이루어 왔고, 아마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며 서양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동양의 관점에서 보면 인생은 필연이고 운이다. 점치는 사람은 이름과 생년월일만 알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것도 운명은 주어지는 것, 우연이 아니고 필연으로 보기 때문이다. 무서울 정도로 남의 과거사를 정말 기막히게 맞추는 점쟁이도 있다. 지인 중의 한 사람이 점을 봤는데, 점쟁이를 대면하자마자 점쟁이가 ’너 그 집 처분할 생각이구나! 그 집 팔지 마라!‘ 하는 말에 너무 놀랐고, 점쟁이 말대에 따랐던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고 하였다.




▲ [뉴스부산] 오후규=慶祝日의 뜻을 담은 남천 노두호(89세) 선생님의 연하장. 사진 왼쪽 그림은 ‘慶’, 오른쪽과 아래는 ‘祝’, 뒤는 ‘日’자로 남편이 아내에게 집문서를 보이는 경사스러운 날의 형상이다. 남천 선생님께서는 수십 년 동안 도상문자를 연구해 오면서, 갖가지 의미 있는 (도상)단어를 개발하고 있다.



☛ 인생이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생각하기 나름이나 어느 경우이건 불가항력적 시간성에 의존하게 되는 인생이니 복과 운을 원하는 것이리라.


신정 구정이 연이어 있는 1, 2월은 누구나 가족, 일가, 지인에게 만나면 ’복 많이 받으세요!‘ 할 것이고 문자로도 보낼 것이다. 그런데 문자로 ’복 많이 받으세요!‘라 할 때 한글로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것보다 한자(漢字)인 ’福‘자를 사용하여 ’福 많이 받으세요!‘라 해야 제격일 것이다. 벽사(辟邪)의 의미로 대문에 호랑이 처방을 한다면, 종이에 한글로 ’호랑이‘ 하는 것보다 호랑이 그림이 더 실감 나는 것과 같다고 할까,


인간이 원하는 복의 종류는 대단히 많다. 이를 말하듯 중국의 어느 음식점 기둥과 벽에 서로 다른 모양의 복(福) 자를 수십 개 붙여 놓은 것을 보았고, 문헌에 소개된 복 자는 수백 개가 넘는다. 이렇게 다양한 복이 있겠지만 보통으로 말하는 복은 ’행복‘ 혹은 소위 5복일 것이다. 5복은 『서경』 「홍범편」에 나오는 다섯 가지의 복을 말하는데, 수(壽), 부(富), 강령(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이다. 건강하게 부자로 남에게 인사 받으며 오래 살다가 편히 죽는 것을 말한다. 정말 이렇게 되는 인생이라면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그러나 인생이란 부자라고, 건강하다고, 오래 산다고 다 행복한 것도 아니다. 오늘의 부나 권력이 내일의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새옹지마의 인생에서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는 것은 많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일, 5복을 빌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미 5천 년 전 고대 메소포타미아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도 ’허황된 욕심을 버리고 현재를 즐기라‘고 했고, 진시황도 현실을 극복하지 못했다. 5복이며 만복도 허황된 일이고 오직 [지금 여기에서의 복], [코앞의 복]이 최고의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지하철에서의 복은 옆 사람의 여하이다. 앉았던 사람이 나가고 새로 앉는 손님이 나를 해치는 강도가 아니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복이다.



☛ 나이가 들수록 행복이 꼭 돈도 아니고 무병장수만도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일을 모르는 인생이니, 지금 내가 존재하는 여기에서의 즐거움이 바로 최고의 복, 가장 바람직한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여기‘는 곧 없어지는 것이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대단히 중요한 시공간이다.


자연에 대한 관찰력이 뛰어났던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강물의 흐름을 관찰하고 "당신의 손에 닿는 강물은 이미 지나간 것의 마지막이자 다가오는 것의 처음이다"라 했으며 폴란드의 시인 쉼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 1923~2012, 폴란드)도 그의 시 〈두 번은 없다〉에서 ’지금 여기‘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복이란 노력 없이 얻어지는 기쁨이라고 보면, “복 받으세요”라는 말은 말 중에 참 듣기 좋은 말이다. 그러나 앉아 기다리는 복은 토끼가 스스로 그루터기에 받쳐 죽기를 기다리는 꼴이니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는 일, 힘써 구하여야 함은 당연하다. 두드리는 자에게 문이 열리듯 복이나 운도 노력하는 자에게 주어질 수밖에 없는 일, 우연의 복이며 운이 있다 하더라도 변함없는 왕도(王道)는 ‘진인사(盡人事)’ 후(後)임은 분명할 것이다.


지난 2019년은 돼지의 해였다. 예부터 돼지는 우리에게 복과 재물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져 왔고, 특히 황금돼지해라 하여 많은 복이 올 것으로 기대하였을 것이다. 혹시 기대에 부족했다 하더라도 오늘 이렇게 생존해 있으니 아마도 가장 소중한 (생명) 복을 받았음은 확실하다.


2020년! 이 글을 대하는 모든 분께 지난해보다 더 큰 복과 더 좋은 운, 그리고 ‘지금 여기의 복’이 듬뿍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海潭 吳厚圭(書畵批評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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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busan.com/news/list.php?mcode=m273ma82




[덧붙이는 글]
[海潭의 書藝漫評] "현대는 지나친 규격화시대이다. 모든 공산품은 규격화되어있고, 우리의 정서는 여기에 점점 메말라 간다. 서화디자인은 이러한 우리의 기계적 환경을 좀 더 인간적 환경으로 순화시킬 수 있으며 서화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이는 해담(海潭) 오후규(吳厚圭) 선생이 밝힌 '(사)대한민국서화디자인협회'의 창립 배경의 한 내용이다. 뉴스부산은 지난 2017년 11월 28일부터 '기존의 서예법을 벗어나 서화의 감성 디자인을 현대 미술에 접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대한민국서화디자인협회 오후규 이사장의 서예만평(書藝漫評)을 소개하고 있다. 오늘은 24번째 시간으로 "지금 여기 福 많이 받으세요!"를 소개한다. 선생의 서예철학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 뉴스부산 강경호 기자 newsbusanco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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