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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5-07 02:3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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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부산ART : 해담의 서예만평 海潭의 書藝漫評




(28) 어떻게보다 무엇을 먼저 생각해야



▲ [뉴스부산ART] 오후규=로버트 머더웰(Robert Motherwell, 1915~1991, 미국), 〈에스파냐 공화국에 바치는 비가〉, No.134, 1974, 캔버스에 아크릴, 237.5 x 300, Grahan Gund Collection, Cambridge, MA.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작가 머더웰의 연작 중 하나이다. 도판에서처럼 대담하고 무게감 있는 형상은 한글 자모를 연상하기도 하지만 삶과 죽음에 대한 은유 등 다양한 알레고리를 암시한다. 2




☞ 서예가는 누구나 창작을 염두에 둔다. 창작은 어떻게 하는가? 막연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고대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각종 서론(書論)이 바로 창작 지침서에 해당한다...1) 그런데, 그 창작 지침서가 잘 작동할까?


1) 참고가 될 문헌 : 『書論選讀』, 吳明南 編著, 미술문화원, 2004


불행하게도 중국 고대 서론이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서론 중에, 채옹(蔡邕, 133~192, 東漢, 中國)은 그의 「筆論」에서 ‘서예를 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풀어놓아야 한다(書者散也).’ 하였고, 「九勢」에서는 ‘서예는 자연에서 그의 법을 취하였다(書肇於自然).’ 하였다. 이후 왕희지(王羲之), 손과정(孫過庭), 항목(項穆), 강유위(康有爲, 1858~1927) 등 많은 (중국)학자들에 의해 서예 창작론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어느 것도 자연이나 인성을 창작의 바탕으로 생각한 채옹의 서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 대동소이하고 이것의 재서술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서론[창작론]이 변하지 않았으니 서예 작품 또한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보기 좋은 글쓰기’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음은 당연한 일이다.2) 반면에 서양은 불과 500여 년 사이,


2) 사실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 북비, 남첩, 2차 대전 후 일본에서 크게 유행한 전위서예, 그리고 10여 년 전에 한중일에서 유행했던 현대서예 등은 하나의 사조(思潮)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르네상스 ➜ 매너리즘 ➜바로크➜로코코-[근대미술]신고전주의(1793년 프랑스 혁명)➜낭만주의➜사실주의(리얼리즘)➜인상주의➜상징주의➜야수파➜표현주의➜입체주의-미래파➜다다➜추상주의-초현실주의➜추상표현주의➜팝아트➜미니멀 아트-(개념주의)➜신표현주의➜(퍼포먼스, 뉴 미디어 아트 등)

등 많은 변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고,3) 앞으로도 환경에 따라 계속해서 변할 것이다.


3) 이러한 사조(思潮)가 순차적으로 나타난 것도 아니고, 또한 그럴 수도 없다. 단지 개략적 변화를 도시한 것이다. 특히 세계 제2차대전 이후 미국, 유럽, 유럽에서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 비슷한 시기에 많은 사조가 나타났음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사조의 변화는 전쟁, 혁명, 정치적 변화 등 큰 사회적 변화가 있을 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지금 온 세계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는 우환 코로나19도 차후 미술 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미술은 누구나 할 수 있게 되었고 고급, 통속도 없어졌으며, 거래가격 1,000억 이상이 수백 점,4) 부럽지 않을 수 없다.


4) 100억 넘는 작품이 수천 점이라 한다. 100억 이상 국내 기록은 1건이다. 2019년 홍콩 경매에서 김환기의 작품 〈우주〉가 132억 원에 낙찰되었다.


지금은 융합과 연결의 시대, 더구나 AI 혁명의 시대이다. 순수는 썩고 마는 ‘고인 물’과 같다. ‘서예와 회화는 다른 것이다.’며 벽을 쌓거나 외면할 일이 아니라 본다.



☞ 그런데, 서예에서 말하는 창작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반적 의미의 창작은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어떤 것과 융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거나 어떤 것으로부터 힌트를 얻어 (전혀)다른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창작이다. 말하자면 무엇인가 자신이 생각한 것을 표현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개방된 자세, 심오한 생각이 필수적이다.


각한 것이 있어야 표현할 수가 있으니 무엇인가에 몰두하게 되고, 이것이 수십 년 쌓이게 되면 마음의 기운이 밖으로 나타나 보통 사람과 무엇인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전문직에 종사한 사람이 퇴임했을 때 얼굴에 그 직업이 나타나는 것과 같이 외견상 어떤 것이 보이는 사람이다. 도인(道人), 소위 예술가같이 보이거나 어딘가 다소 부족한 사람으로도 보일 것이다. 달리 말하면 평범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창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창작을 위해서는 견문이 넓어야 한다. ‘독서 만권’이라든지 ‘한 수레의 책’이란 말도 있지만, 능사가 아니다. 이것보다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항상 ‘나의 생각’이 부족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고,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개방된 사고가 우선이다. 이러한 능력은 책을 읽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환경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다음과 같은 교육 심리학적 예는 이를 대변한다.


심리학자와 교육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창의적인 인간이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이 될 때 창의성이 발현된다고 한다. 즉 창의력은 후천적이며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인데, 이것을 뒷받침하는 보편적 실험이 있다. 예를 들면, 실험재료로 직육면체, 원통 등 입체적인 것과 퍼즐 조각과 같은 평면적인 것들이 포함된 서로 다른 수십 개의 다양한 물체를 준비한다. 실험 대상 학생을 A, B, C 그룹(각 그룹 10명)으로 나눈 후 각자에게 같은 실험재료를 제공한다.


10명으로 구성된 A그룹 학생에게는 각자의 실험재료에서 7개를 선택하여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라 하고, B그룹에는 각자의 재료에서 마음에, 드는 것 7개를 고르게 한 뒤, 각자가 선택한 재료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라 한다. 그리고 C그룹에는 새로운 것을 만든다면 어떤 것을 만들겠느냐고 묻고 결정하게 한다. 그리고 각자의 재료에서 7개를 선택하여 만들기로 한 것을 만들어 보라고 한다.


보편적 결과는, 창작 목표와 수단[재료]을 미리 알고 있는 A그룹 학생들은 대부분 직육면체와 같은 일반적 물체를 골라서 집이나 자동차 등 평범한 물건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수단과 목표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에 생각하는 에너지를 가장 적게 소모하는, 가장 평범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선정된 수단으로 목표를 완성하게 한 B그룹 학생은 목표가 없는 상태에서 재료를 선택하기 때문에 독특한 물체[재료]도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나중에 주어지는 목표[무엇]에 당황하게 되지만 A그룹보다 훨씬 더 기발한 결과물을 도출한다는 것이다.


C그룹 학생은 수단은 생각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양한 목표물[무엇을]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나중에 주어진 수단으로 생각했던 목표물을 만든다는 것은 당혹스러운 일이겠지만 B그룹 학생보다 더 창의적인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다. 즉, A그룹과 같이 수단과 목표에 구속됨이 없을 때는 평범한 작품을 만들고, B그룹과 같이 수단[어떻게]에 구속될 때는 다소 창의적 작품을 만들겠지만, C그룹과 같이 목표에 구속된 환경일 때 가장 창의력이 발동한다는 것이 보편적 연구 결과라 한다.


위의 경향을 서예로 생각해 보면 서예는 A에 해당할 것이다. 아니, A보다 더 편한 환경 같기도 하다. A는 목표를 알고 그것에 적당한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니 가장 평범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서예는 목표, 즉 무엇을 만들 것인가? 도 없고 수단[어떻게]만 있으니 창의력과 별로 상관없는 작업이 아닐까?


붓으로 화선지에 문자를 쓰는 서예, 어쩌다 평소와 다른 작품, 남과 다른 작품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서예라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그런데 생각을 달리하여 C의 경우와 같이, 서예로 무엇을 나타낼 것인가를 먼저 정해놓고, 수단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결과가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5) 정해진 목표를 완성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강구(講究)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비록 생각했던 그 목표에 미치지 못할지라도 통상의 서예와는 다르게 될 가능성이 있다. 목표에 따라서는 화선지가 바뀌고, 붓이 바뀌며 먹도 바뀔 수 있으므로 결과물이 바뀌는 것은 당연할 것이고, 여기서 창작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5) 왕희지의 의재필선(意在筆先)은 C의 경우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의재필선을 ‘먼저 마음을 담아야 한다.’는 것으로 보면 손과정의 오합(五合)과 다를 바 없으므로 C와는 다른 개념이다.



☞ 서예가는 ‘창작한다.’ 한다. 그러면서 통상의 서예가들이 작품에 임해 어떻게 하고 있는가? 아마도 서예로 무엇을 표현할까? 보다 어떤 문장을 선택[選文]할까? 가 가장 큰 고민일 것이다. 선문이 끝나면 작품은 ‘하루아침의 일’이라 생각한다면 이것은 착각이라 할 것이다. 예부터 서론(書論)에 선문은 논하지 않았고, 오직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논했다. 이는 곧 서예가 문학이 아니라 시각 미술임을 말한 것이나 다름없고, 그렇다면 표현, 즉 형상의 문제로 봐야 할 것이다.6)


6) 물론 서예인 이상 문(文, 文章)의 선택은 더없이 중요하다. 마치 화가가 사물을 이해하고 그려야 기운이 생동하는 것과 같다. 즉 서예는 문이 서자(書者)와 합일된 후의 일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자작시를 강조하며 나아가 서예가는 곧 선비, 학자를 연상하게 된다. 이러한 사고는 인격미를 중시하는 전통서예에서 강조되는 것이며, 본 고의 목적과는 다른 문제이기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위의 예를 미루어 생각하면, 종래의 서예 창작론, 법고창신을 비롯한 많은 창작 격려문과 서론들은 아날로그 시대의 금과옥조(金科玉條)일 뿐이다. 현재의 디지털 시대에서는 가슴을 울리지도 못하고 창작력 증대도 기대할 수 없다.


서예이건 아니건 모든 분야의 창작은 상상력의 문제이다. 예의 A, B, C에서도 서로의 차이는 상상력의 차이이다. C와 같이, 예를 들면 붓을 들기 전에 무엇을 표현한다는 상상을 하고 그 상상을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강구하면 무엇인가 달라질 것이다. 아니라 하더라도 이러한 방향이 창의성을 양성하는 보다 좋은 길인 것 같다. 열심히 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우연히 무엇이 만들어질 것이란 기대를 버려야 한다. 생각 전환은 작지만 큰 차이를 유발할 수 있다. ‘어떻게’ 보다 ‘무엇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海潭 吳厚圭(書畵批評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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