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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7-05 14: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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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潭의 書藝漫評] 뉴스부산은 지난 2017년 11월 28일부터 '기존의 서예법을 벗어나 서화의 감성 디자인을 현대 미술에 접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대한민국서화디자인협회 오후규 이사장의 서예만평(書藝漫評)을 소개하고 있다. 오늘은 30번째 시간으로 '어떻게'보다 '무엇'을 먼저 생각해야(3)'을 소개한다. 선생의 서예철학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 뉴스부산 강경호 기자 newsbusancom@daum.net -




뉴스부산ART : 해담의 서예만평 海潭의 書藝漫評




어떻게보다 무엇을 먼저 생각해야 (3)



서양미술에서 인상주의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서예에서는 인상주의가 아니라 표현주의, 추상표현주의 미술이다1)에 관심이 간다. 앞서 지난 6월 4일자 海潭의 書藝漫評 (29)에 이어, 서예와 관련이 깊은 표현주의 미술에 대해 좀 더 알아본다.


1) 추상표현주의라는 말은 미국의 한 평론가가 1929년 미국에서 전시 중이던 칸딘스키(W. Kandinsky)의 초기작품에 대해 "형식은 추상적이니만 내용은 표현적'이라고 말한 것이 처음이고, 1951년 MoMA에서 <미국 추상 회화 조각전 >에 출품된 1940년 후반에 등장한 추상회화 작가들의 개별적인 양식을 총칭하기 위해 ‘추상표현주의 ’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추상표현주의는 어떤 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작가의 내면 세계를 중시하며 추상 형태나 무의식의 상태에서 발생한 우연한 결과를 존중하며 그에 대한 미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미술의 한 사조이다.


추상표현주의 미술 사조는 시대적 산물이다. 1945년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자 유럽은 전쟁의 폐허를 복구하는데 정신이 없었고, 철학, 문학, 미술 분야 사상가들은 큰 정신적 충격에 빠졌다. 반면에 미국도 큰 인적 물적 피해를 봤으나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면에서 세계 제1의 강대국이 되었다. 미국은 이것을 배경으로 정부, 기업, 미술인들이 서로 뭉쳐 미국만의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1, 2차 전쟁의 소용돌이와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피하여 유럽을 떠나 미국[특히 뉴욕]으로 건너온 일군의 미술가들이 미국 출신 작가들과 합류하게 되었다.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정부와 미국, 유럽 미술가들이 함께 창안한 새로운 표현이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미술이다.


뉴욕을 중심으로 화상, 비평가, 문인, 미술가, 철학자들이 모였고, 이들이 미국 현대 미술 수립에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당시의 뉴욕은 미국 정부의 ‘연방미술프로젝트’를 통한 공공미술품 제작을 지원하였고, 미술가들은 경제적 안정 속에서 작업할 수 있었다. 특히 뉴욕은, 유럽의 이성적인 추상 화가들과 감성적인 성향의 초현실주의자들이 교류하게 되면서 새로운 양식의 미술을 탄생시킬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조성된 곳이었다. 뉴욕파라 불리는 이들은 칸딘스키의 표현적 추상과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 마티스의 원시적인 색채 추상을 혼합하여 “추상표현주의 (abstraction expressionism)”라는 새로운 영역의 현대 미술, ‘미국적인 미술’을 만들었다. 이것으로 미국은 유럽 콤플렉스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20세기 이후 세계미술의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추상표현주의 미술에서 서예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아니, 서예는 태생부터 표현주의 미술 요소를 가지고 있었으나 남처럼 지내왔던 것은 아닌가!



▲ [뉴스부산ART] 오후규 서예만평=젝슨폴록, 작품 No. 30, 1950, enamel on canvas, 105 x 207in, MMA, New York.



추상표현주의 미술은 창작 기법이나 작품 자체의 시각적 특성에 따라 액션페인팅 (Action Painting)과 색채추상(Chromatic Abstraction 또는 Color Field)으로 구분한다.


액션페인팅 작가는 잭슨 폴록 (jackson Pollock, 1912~56), 빌렘 드 쿠닝 (Willem de Kooning, 1904~97), 프란츠 클라인 (Franz Kline, 1919~62) 등이 있고, 색채추상 작가는 바네트 뉴만 (Barnett Newman 1905~1970), 마크 로스코 (Mark Rothko, 1903~1970), 클리포드 스틸 (Clifford Still, 1904~80) 등이 유명하다. 이들 유파 사이는 다음과 같은 조형적 차이가 있다.


그림 1은 잭슨 폴록의 액션페인팅 No. 30이다. 작품을 보면 어떻게 작업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캔버스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물감을 떨어뜨리거나 뿌려서 얼룩지게 하였다. 종래의 방식에 비해 캔버스 둘레를 돌아다니며 작업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나는 나의 감정들을 설명하기보다 표현하려 한다. 나는 물감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다. 시작이 없으면 끝이 없는 것처럼 여기에 우연이란 없다.” 하였다. 이것을 보면 폴록 작품은 겉보기와 달리 즉흥적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고, 상당히 의도적이다.



▲ [뉴스부산ART] 오후규 서예만평=프란츠 클라인, Mahoning, 203 x 254cm, 1956, 휘트니미술관



그림 2는 클라인의 작품이다. 거대한 캔버스에 흑색과 흰색을 이용한 거친 붓 터치로 작품하는 대표적인 추상 표현주의 작가이다. 흑색과 백색만을 이용한 것은 사물의 본질을 가장 단순하고 순수한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나 일부 논자는 서예(일본 서예)를 모방한 것이라며 창작성을 의심했다. 이에 대해 클라인은 “사람들은 내가 흰 캔버스에다 검은색을 칠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 나는 검은색을 칠하는 만큼 흰색도 칠한다. 흰색도 검은색만큼 중요하다.” 하며 자기 작품의 원천은 창작임 주장했다. 클라인의 주장을 서예에서 보면 역시 서예 기법을 차용한 것이며, 그 정신도 서법에 닮았다. 서예가 본래 그렇지만 클라인의 작품은 단순한 흑과 백만으로 강력한 역동감을 준다. 특히 1980년대 사물의 본질적인 모습은 단순함과 간결성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2세대 미니멀리즘 화가들에게 재평가되면서 클라인은 더욱 유명해졌다.



▲ [뉴스부산ART] 오후규 서예만평=마크 로스크, untitled, 1955,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 C.



그림 3은 로스코의 색채추상 작품이다. 로스코의 작품에 대해서는 본 연재(해담만평, 제115회, 2015년 9월)에 언급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이상에서와 같이 액션페인팅과 색채 추상은 서로 다른 기법으로 제작되며 시각적 느낌도 다르나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인상파 이후, 화가들의 필수품이었던 이젤을 버렸다.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은 바닥에 캔버스를 눕혀놓고 작품했기에 이젤은 필요 없었다. 이것은 과거와 달리 수공예적이고 계획적인 작품제작이 아니라는 것, 작업이 자유롭다는 것, 다양한 작업 도구와 물감을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것 등을 의미한다. 즉 작품 제작이나 재료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묘사 대상이 없어졌다. 완성된 그림에서 사실적 이미지가 없으므로 감상자는 멍할 수도 있다. 볼 수 있는 것은 작가의 페인팅 흔적, 물감의 색이나 터치만이 드러나도록 하였다. 즉 조형요소인 점, 선, 면, 색 등의 무질서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화면, 이것이 곧 창작품이다.


셋째, 대형 작품을 선호한다. 묘사 대상이 없으므로 작가의 기분대로 그리는 것이니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심적 감동이나 경외감을 유발한다는 의미에서도 대형일수록 그 효과가 클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광활한 자연에 대항하고 싶은 의도, ‘이것이 미국적 스케일’이라는 의도, 이렇게 압도적인 것이 ‘나의 작품’이라는 의도 등이 작용했을 것이다. 사실, 거대한 작품 앞에 서면 그러한 느낌, 웅장한 자연을 대하는 숭고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즉 작가는 자유로운 공간을 좋아했고 감상자에게는 자연의 초월성을 느끼게 한다.


넷째, 작가의 정신이 바로 작품이다. 잭슨 폴록의 작업은 바닥에 눕힌 캔버스 주위로 돌아다니며 물감을 붓고, 뿌리고, 흘려 화면을 무질서하게 칠해버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즉각적, 감각적 작업을 무의식으로 하고, 이때 나타나는 무의식의 세계가 창작이며 작품이다. 즉, 신물 혼연일체의 가시적 결과물이 작품임과 동시에 작가 자신인 셈이다.



추상표현주의자들이 나타내고자 한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대상의 본질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그들 자신과 그 행위의 결과물이다. 어떠한 기억, 전설, 신화 등의 과거가 아니라 지금 작품을 제작하는 행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했다.


추상표현주의와 관련해서 서예를 생각하면 한발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추상표현주의 미술, 특히 클라인의 작품은 바로 서예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일이지만, 우리가 너무 안일했다는 생각이 든다. 2차 대전 후 일본은 활발하게 전위서예를 하였으며, 일본의 전위서예는 바로 표현주의 미술과 다르지 않다. 물론 폴락 작품도 서예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노상동은 폴락과 유사한 작품을 꾸준하게 발표하고 있으며, 윤재혁은 독자적 표현을 하고 있다. 이들뿐만 아니라 많은 서예가들이 클라인과 유사한 작품을 발표해 왔다. 문제는 이들의 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소리가 아니라 단체라야 울림이 있고 남들이 눈여겨보게 된다.


유파를 형성한 서예 단체로 보면, 표현주의는 아니나 국내에서 자생한 서예 유파가 있었다. 바로 라석 손병철 선생이 주도한 물파 그룹이다. 당시 참신한 서예 운동이었다. 물파 그룹은 1997년 라석을 포함한 13명으로 출범하여 국내외 작가 30명이 2013년까지 16년간 활동하였다. 불행히도 뒤이은 유파도 없이 끝났다. 그러나 물파 활동은 국내 서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며, 이것에 대해서는 언젠가 재고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추상표현주의 미술의 표현기법과 특징은 서예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어떤 것은 서예 그 자체이다. 지금까지의 서예는 내용이라면, 앞으로의 서예는 표현으로 나아가야 하고, 이것은 서예를 더욱 확장하는 길일 것이다.



海潭 吳厚圭(書畵批評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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