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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05-23 15: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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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가 가져다 준 뜻밖의 만남! 세탁과의 생소한 분야와 18년 생사고락을 함께한 '남천세탁' 김수복(81) 대표. 그의 인생후반부 제1막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만, 앞으로 펼쳐질 아름다운 제2막의 시작을 성원합니다. -수영넷-


▲ 이곳이 남천동이니까 `남천`이라는 지역명이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남천세탁`으로 상호를 변경했다는 김수복(81) 대표. 수영넷=강경호 기자 suyeongnet@naver.com




언제부터 세탁업을 하셨습니까?


☞ 이곳에 오기 전 대신동, 문현동에서 박스공장과 인쇄업, 가구점도 잠시 했어. 그러다 IMF가 덜컥 터진 거지. 장사가 잘 될 리 없었어. 박스공장은 문을 닫고, 무엇을 해야 하나 걱정이 태산이었지. 어떤 것을 하면 밥벌이라도 할 수 있을까? 의류, 세탁, 식당 등 이것저것 궁리를 하다가 선택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어. 벌써 18년이나 되었네. 내 기억에 다른 업종은 모두 힘들었고, 세탁은 그래도 밥은 먹고 살 수 있을 거라 여겼지.



왜 그렇게 생각했습니까?


☞ 그때는 그렇게 생각이 들더라고. 세탁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겠다 생각했지. 다른 것에 비해 많은 돈도 필요 없었고, 기계 정도만 구입하면 되겠다 생각했거든.



그런데 이 곳으로는 어떻게 오게 되었습니까?


☞ 집사람과 결정을 하고 처음에 시장조사를 했어. 그런데 아는 사람으로부터 마침 남천동에 자리가 하나 났다고 소개를 받은 거야. 젊은 부부였는데, 트러블이 자주 있었다고 들었어. 돈은 안 되지, 시간 늦게까지 일해야지, 여기는 동네 장사라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나 9시까지는 일을 해야 하거든. 그것도 그렇지만 하루 종일 꼼짝도 못하고 붙어 있어야 하는 게 젊은 부부에게는 쉽지 않았을 거야.



가게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죠. 여러 가지 조건도.


☞ 다른 곳에도 알아 봤는데, 지역도 그런대로 괜찮았고, 소액으로 할 수 있는 거 치고는 적당했어. 눈 딱 감고 가게를 인수했지. 권리금도 당시 다른 것에 비해서는 적당했거든.



‘남천세탁’이란 상호도 같이 인수했나요?


☞ 아니 이전에 상호가... 갑자기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이곳이 남천동이니까 '남천'이랑 지역이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지. 아무래도 지역이 들어가면 친근하고... 그 때만 하여도 남천동은 부촌이라는 느낌이 강했어.



그래도 주변에 세탁소가 여럿 있었을 텐데요


☞ 그렇지. 문을 열었을 때도 근처에 세탁소가 많았지. 그래도 고전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당시엔 경기가 지금처럼 그렇게 나쁘지도 않았고, 부자들도 제법 있었어. 나도 뒤처지지 않으려고 세탁 일을 시작하면서 책을 사 공부를 했어. 아주 기초적인 거, 예를 들면 천이라든지... 그런 세탁 관련 서적을 3권 구입했지. (마침 기자도 박사과정 때 패션 재료 관련 공부를 한 적이 있어 호기심이 발동했다.)



▲ 다림질은 세탁물의 재질에 따라 주의할 것이 많아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남천세탁` 김수복 대표는 인생 후반부와 함께한 18년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사진은 인터뷰를 위하여 다림질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 수영넷=강경호 기자




대단하시네요 어떻게 책을 사실 생각을 했습니까? 그래 도움이 되었습니까?


☞ 보고 듣는 것도 좋지만 책을 사서 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어. 잘해야겠다는 결심이 서면서 연구하는 자세가 되니 마음이 편안해 지더군. 실지 도움이 많이 되었어. 다림질 할 때 천의 종류에 따라 조심해야 할 것이 많거든. 다림질 뿐 아니라 세탁에 있어 실크나, 마 등 천의 속성을 모르면 사고가 나기 쉬워, 여기는.



자격증 같은 것은 없어도 상관없었습니까?


☞ 가게를 인수 받았기 때문에 승계하는 것이라 자격증이 없어도 가능했지. 승계 없이 자기가 따로 차리거나하면 안되는데 그 자리에서 하는 거는 괜찮아.



가게 수입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 생활에 큰 보탬은 안 되고, 그저 달세 정도는 나왔어. 겨우 밥 먹고 살 정도였지. 그런데 작년부터 경기가 급속도로 나빠진 거같애. 이 동네도 거의 5군데나 세탁소가 없어졌어. A대단지아파트에도 사람이 바뀌었어.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요즘엔 넥타이 부대도 없지. 캐주얼 시대로 넘어간 지 오래 되었잖아. 수요가 점점 줄어지고 대형세탁소 같은 곳에서 덤핑을 치니, 우리 같은 곳이 어떻게 살아남겠어. 옷 한 벌에 4천 원씩 받아 장사가 되겠어? (봇물 터지듯 쉬지 않고 빠르게 격정적으로 말을 이어갔다. 기자가 궁금했던 부분도 속 시원하게 의견을 밝혔다.) 우린 동네 장사지만 그 친구들은 공장이 김해에도 있고 양산에도 있어. 전세만 내니까 우리처럼 달세 같은 것도 없잖아. 셔츠 1장이 990원, 1000원이라는데 이게 말이 되나.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배겨내겠나? 옛날에는 사우나 손님도 있고 그랬지만, 이젠 그런 손님조차 없어진 것이 오래되었어. (그러고 보니 기자도 직장 다닐 때, 사우나에서 셔츠를 속성으로 세탁을 맡겨본 적이 있었다.) 서민들은 갈수록 어려워. 지금이 가장 어려운 거 같아.



그래도 한 때 좋았던 시절은 있었을 것 아닙니까?


☞ 시작하고 3~4년까지 좀 괜찮았어. 내 기억으로 15년 전만 해도 남천동하면 명품동네였어. 우성은 부자동네로, 뉴비치는 의사, 변호사, 사업가들이 줄줄이 살았지. 지금은 그저 그런 선술집으로... 해변시장도 예전과 비교가 안될 만큼 경기가 없다고 다들 이야기 하지만 그래도 횟집하면 남천동이었는데. 그 뒤 한 2~3년 정도 밥이나 먹고 지낼 정도고, 그 이후로는 달세 정도 낼 형편이었어. 계속 좋지 않았던 거지. 최근엔 그냥 놀기 삼아 나온다고 보면 되.



언제부터 가게를 그만 둘 생각을 하셨습니까?


☞ 재작년부터였어. 손 놓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전체적으로 경기가 4, 5년부터 안 좋았던 것 같아. 인근 대여섯 개가 문을 닫았어. 요즘 사업하는 사람들 말고 누가 양복을 입나. 거의 캐주얼 복이 많아. 문 닫아야겠다 생각이 들더라고. 어떤 사람은 놀이터 겸 왔다 갔다 하라고 하는데 월세라도 나와야지 있을지 말지 할 거 아냐. 이젠 희망이 없어.



인수할 사람은 나설까요? 없으면 기계는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십니까?


☞ 요즘 젊은이가 이걸 배우겠나? 다 자동 세탁인데, 인수자가 없으면 고철로 내다 팔아야지 뭐. 그래도 한 대당 사려면 7, 8백은 줘야해. 세탁기, 드라이, 건조기, 전기보일라 다 치면 2천이 넘는 금액이야. 잘못하면 돈 주고 버려야 할지도 몰라 허허...



기억에 남았던 손님들 가운데 가장 피곤한 유형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 무조건 가격을 깎자고 하는 사람이야. 기껏해야 만 이삼천 원되는 세탁 비를 몇 천 원이나 깎아 달라는 사람이 제일 얄미워.



옷이 뒤바뀌는 경우는 없었나요?


☞ 가끔 있지. 양심적인 사람들은 즉각 연락이 오는데, 자기 옷보다 좋은 걸 받은 사람은 거의 얘길 안 해.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에게 출고할 걸 B에게 배달했을 경우, A보다 질이 낮은 남은 B의 세탁물이 A에게 배달이 되니 A는 세탁소에 변상을 요구하는 거지. B는 끝까지 우기고. 기가 막힐 노릇이지. 증거가 있으면 모르되 없으면 끝까지 우기는 B를 어떻게 이기겠나? 이것도 그래. 변상할 때가 되면 A의 2만 원짜리가 10만원이 되는 거지. 양복 드라이 5천원 받고, 10만 원 이상 물어주면 그날 일은 끝이지. 또 이런 일도 있어. 물건이 갔는데, 안 왔다고 따지는 사람들이야. 급한 일로 맡긴 사람들이지. 나중에 착각했다며, 찾았다며 미안하다고 하는 업소 아가씨들이 더러 있었어.



고정단골은 하루 어느 정도였나요?


☞ 단골은 매일 오거나 2~3일 또는 1주일에 1~2번 오는 고객으로 대략 30~40명쯤이고, 한 달이나 열흘에 오는 사람도 있는데 한 30군데 될 거야. 주로 자영업이 많고, 회사 다니는 사람들이지. 이전에는 업소 종업원들도 있었고. 요즘은 단골이라는 것이 거의 없어. 이 지역에 단골 없어진 것이 한 10년 정도는 될 거야.



신경이 쓰이는 세탁물은 어떤 것들입니까?


☞ '실크'가 힘들어. 얼룩이 묻으면 지지 않는다고 먼저 얘길 하는데도 그래도 한 번 해 보라고 맡기는 손님들이 있어. 그럴 때는 아무래도 부담스럽지. 면 같은 것도 부담스럽고. 염색강도에 따라 잘못 건드리면 실수 해. 쉽게 봐서는 변상하다가 볼일 다보는 거지, 중노동이야. 노동의 대가가 쉽지 않아.



▲ ˝허무하지. 일을 접는다고 하니... 뒷산으로 넘어간다고 하니 슬픈 생각이 들지만 일 할 곳이 있을 거야. 그래도 인사는 하고 가야지. 오랫동안 남천세탁소를 이용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수영넷=강경호 기자



업계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 큰 업소 빼고는 차차 문을 닫아 거의 없어지고 있어. 대형 업소는 기계를 돌려 세탁을 하니 여기처럼 깨끗하게 오염물이 빠지지는 않는 것 같아. 가격을 보더라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쩌면 그 때보다 못해. 아직도 4천원 받는 곳도 있어. 협정가격이라는 게 있지만 지키기가 쉽지 않아. 협회도 있기는 하지만 마찬가지야.



앞으로 계획은 어떻습니까?


☞ 요즘 청년일자리도 없다고 하는데 우리 같은 80대를 채용하는 곳이 어디 있겠어. 당분간 쉬면서 일을 찾아 볼 생각이야. 밀양이 고향인데 시골가면 일할 것은 있지만 힘이 달려 젊은이처럼 비닐하우스 같은 일은 못해. 그 절반 일당인 3~4만 원짜리 일을 찾아봐야지. 사과철, 감철, 하우스 딸기 등에.



앞으로 세탁 일 하려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십시오.


☞ 잘되면 권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누가 나서겠나 싶어. 그래도 할 생각이 있다면 '최소 3년' 정도 배워야 해. 그렇게 해도 사고가 나는 게 이 분야지. 오래 전 일인데 하루는 젊은 친구가 날 찾아 왔어. 외국에 갈 자격증이 필요한데 좀 배우겠다고. 외국에서는 세탁소를 하지 않아도 자격증이 있으면 신임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더군. 그러더니 며칠 하다가 나오질 않아. 시켰던 셔츠 다림질 하나도 제대로 못하더라고. 허긴 요즘 몇 만 원짜리 스팀기도 나오니.



그만 둔다고 하시니 마음이 어떠신가요.


☞ 허무하지. 일을 접었다하니... 뒷산으로 넘어간다고 하니 약간 슬픈 생각이 들어. 우리 나이 받아줄데는 아무데도 없어. 촌에 딸기밭이나, 고추밭에 젊은이 반값 받고 일 할 거 아니면 천장보고 집 지키는 거밖에. 그래도 찾아보면 일 할 곳은 있을 거야.



마지막으로 어디에선가 이 인터뷰를 읽어볼 '남천세탁'의 단골분들께 인사를 해 주시죠.


☞ 다른 말 이 뭐 있겠나. 고맙다는 말 밖에. "오랫동안 남천세탁소를 이용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강경호 기자 suyeong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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