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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06-04 19:5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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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절벽의 시대! 주변의 아이들 웃음이 사라져간다. 1950년~60년대 베이비붐의 시대를 거쳐 그들의 자녀들이 가정을 꾸리는 1970년~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출생아 수는 년 간 80만 명을 웃돌았다. 그러던 것이 지난달 24일 발표한 통계청의 ‘2017. 3월 인구 동향’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신생아 수는 2015년에 43만 8,400명 지난해는 40만 6,300명으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OECD국가 중 최저 출산율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산아제한 정책이 시행되기 전 산업화 시대, 동네를 휘젓고 다니던 우리의 손녀, 자녀, 조카, 동생들이 하나둘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한 반에 60명을 훌쩍 넘던 초등학교 입학생 비율도 어느새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고령화,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로 국가 경쟁력은 물론 국가 존재마저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처지에 이르렀다.


출산을 장려하는 복지, 육아 등 각종 시책과 주장,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는 지금, 정작 자녀를 낳고 길러야 할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당사자 부부일 터. 오늘은 그 막중한 임무를 담당할 신혼부부를 찾아, 활동가의 길을 걷게 된 이유, 결혼스토리와 출산 및 육아에 대한 예비 부모로서의 계획 등을 들어 본다. -수영넷-




(수영넷=현장에서) 강경호 기자 = ‘수영넷’은 지난 4월 결혼에 골인해 요즘 신혼의 즐거움을 크게 느낀다는 장영희(31) 활동가를 찾았다. 현재 법인일과 교육센터를 4년차 담당하고 있다는 그녀를 만난 것은 지난달 17일 오후 3시가 넘은 ‘부산여성의전화’ 사무실이었다.




▲ (사)부산여성의전화 활동가 장영희 씨. 수영넷=강경호 기자 suyeongnet@naver.com



▶결혼을 축하해요. 요즘 ‘깨’가 쏟아지겠군요.ㅎ
- 감사합니다. 크게 신혼을 느끼고 있어요. ㅎ


▶그동안 결혼 준비하느라 바쁘셨겠어요.
- 바빴다기보다는 준비하면서 고민이 좀 있었답니다. 인생에 있어 의미 있는 날이니까요. 의견 충돌이 많았어요. 원래 작년 10월 이었는데 사정이 있었어요. 서로가 정리했는데... 지금의 남편이 많이 설득했어요. 남편을 믿고 기다렸죠. 시간이 지나니 어느 정도 정리되면서 다시 신뢰를 바탕으로 지난달 결혼에 골인 했어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어려움을 잘 극복하신 것 같군요. 다시 한 번 축하해요. 그런데 어떻게 만났어요?
- 알고 지낸 건 11년 쯤 됩니다. 본격적으로 만나 것은 7년 전이에요. 오빠(지금의 남편) 친구가 저랑 친한 오빤데 그 오빠 결혼식에서 4년 만에 우연히 보았어요. 남편이 저에게 반하고 종교도 서로 기독교라 대화가 잘 통했죠. 직업도 반듯했어요. 수영구에 있는 수입차회사의 정비 일을 하고 있죠.


▶그래도 ‘이 사람이다’라고 결정적 결심을 하게 된 것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 있었죠. 무엇보다 남편이 저의 일을 존중하고, 믿음을 줬어요. 결혼 전, 시민활동을 전개하고 그런 보람된 일을 하고 싶다고 분명한 의사를 밝혔는데, 그런 제의를 수용하고 지지하겠다고 하더군요. 사실 사회복지 이런 일 자체가 시급으로 치면 최저 임금인데, 그런 것도 사실 저에게 큰 힘이 되었어요.



▲ 활동가 장영희 씨. 수영넷=강경호 기자


활동가를 꿈꾸며
그녀는 원래 산업경영을 전공하고 태광산업 ‘트리코텍’이란 회사를 2년 다녔다. 그런데 같은 팀이 중국으로 다 넘어가면서 직장을 나오게 되었다. 이후 기관소개로 관련된 업무를 찾다가 24살에 사회복지라는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었다. 틈틈이 일과 학문을 병행하며 사이버대학을 마쳤다. 그리고 사회복지기관에 취업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꿈꾸던 원하던 업무와는 달랐다. 그녀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잠시 방황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갑자기 이 젊은 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수동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무언가 살아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쳤다.
마침내 그녀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사회복지라는 것에 마음을 둔 이상 혼자의 힘으로 더 큰 세계를 경험해보리라 마음먹고 호주 행을 택했다. 3개월의 필리핀 어학연수를 마치고 1년 단기 비자를 얻고 마침내 호주 행에 올랐다. 홀연히 호주로 떠난 유학 시절. 그녀는 말로만 듣던 백호주의의 경험을 현지에서 체험한다.




▶왜 호주행을 택하셨나요?
- 사회복지관에 잠시 있었어요. 종합복지관 사회적기업 운영팀에서 결식아동 도시락사업 등 관련 일이었죠. 그러다 27살에 접고 1년간 세상 구경하겠다고 마음 먹었구요. 일 하면서 영어도 배우고, 많은 경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필리핀 3개월 어학연수를 마치고, 같이 공부했던 사람들이 각자 몰타, 뉴질랜드, 호주, 카나다 등으로 가는 걸 봤죠. 그런데 저에게 호주가 비자가 제일 받기 쉬웠어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거든요.


▶그럼 사회 활동가를 하리라 마음먹은 건 호주에서였나요?
- 호주에서 지내는 동안 일부 현지인들에게 인종차별을 많이 겪었죠. 언어적 부분도 힘들었고요. 시민활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그때였어요. 동양인을 무시하는 상대방의 행동들... 지나가면 백인 남성들이 눈이 찢어진 동양인이라며 (손으로 눈가를 찢는 행동으로) 놀리고 막무가내 무시하는 시간들을 접하면서 한국에 돌아가면 나처럼 무시당할지도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여기서 조롱받고 천대받는 것을 잊지 않고 똑 같은 인간으로 대우하겠다는 생각을 굳혔던 거죠.


▶참기 힘든 일이었겠어요.
- 현지에서 그런 경우를 많이 경험했었죠.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 반대의 입장을 맞이하게 되었어요. 어머니랑 길을 걷는데 동남아노동자들이 여럿 지나가는 거예요, 근데 엄마가 냄새 난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엄마에게 막 큰소리로 얘길 했어요. “엄마, 엄마 딸이 호주에서 그거 당하고 왔다. 그게 바로 인종차별이다.” 이런 것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있는 거예요.




▲ 장영희 활동가. 수영넷=강경호 기자


르는 세상에 대한 궁금증
귀국을 1달 반 남겨놓을 즈음 그녀는 현지에서 모아놓았던 알바비용을 모두 자신에게 투자하기로 하고 남은 기간 미지의 세계를 경험한다. 호주 전역을 돌아보기로 한 것이다.




▶출국을 앞두고 잠시 둘러보는 것도 아니고 모아놓은 돈을 몽땅 쓰면서까지 1달 반이나 여행을 하려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나요?
- 원래 여행자체를 좋아하는 것도 있고, 졸보(拙甫)지만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어요. 덕분에 긍정적으로 변하면서 시야가 많이 넓어졌다고 생각되죠... 우물 안 개구리에서. 그래서 돈을 버는 일보다 ‘다문화의 다양함’을 많이 볼 수 있는 사회복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그녀에게 행운이 찾아 왔다.
그해 12월 귀국을 하고 다음해 1월 원하는 직종에 맞는 일터를 발견한 것이다. 다행히 합격의 행운까지 누린 그녀는 2월부터 바로 새로운 활동가로서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현재 4년차 교육센터를 담당하며 법인 일을 같이 하고 있는 그녀는 업무에 만족하면서 동시에 한계를 느껴 동아대 사회복지대학원에 진학하여 사회복지 행정을 공부하고 있다.




▶원하시던 일이라 보람이 많겠어요.
모든 일에 다 보람을 느낍니다. 주관하는 여성인권 영화제도 그렇고, 5월 가정폭력 없는 평화의 날 캠페인을 진행해도 보람을 느끼고요, 오늘도 여성피해자들을 위한 기자회견 갔다 왔잖아요. 그런 걸 다녀와도 보람을 느껴요. 그 중에서 보람된 일은 ‘비혼모 사업’이 사실 제일 커죠.


▶미혼모가 아니고 ‘비혼모’라 하셨습니까?
저희는 미혼모를 ‘비혼모’라 불러요. 아닐 비(非)를 쓰서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이라는 의미죠. 여성에게는 아이를 낳을 권리가 있고, 낳지 않을 권리가 있는데. 나는 아이 아빠와 관계없이 이 아이를 낳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낳은 여성입니다. 아직까지 미혼모에 대해 시선이... 약간 사회적으로 안 좋은 시선이 있잖아요. 약간...


▶아~ 그렇군요.
그러니까 본인이 혼자서 자녀를 양육하시는 거예요. 아이아빠가 아버지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그랬을 때 우리가 보는 그 미혼모의 시선을 저희는 사실 ‘사회인식캠페인’을 많이 하죠. 그런 것 때문에...



▲ (사)부산여성의전화 활동가 장영희(우측) 씨. 수영넷=강경호 기자



▶결혼과 자녀에 관한 질문입니다. 여성의 경우, 결혼 기피나 결혼하면서 자녀 문제에 대한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죠? 예를 들어 육아, 맞벌이, 출산, 경제력 등...
- 개인적으로는 경제적 이유가 제일 큰 것 같아요. 결혼 기피나 육아에 대한 그런 부분이... 아무래도 집값... 부동산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는 걸 케어하지 못하니까 그런 부분에 있어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해요.


▶가족계획은 있으신지
- 저의 경우 가족계획을 말씀드리면 1명입니다. 지금부터 3년 뒤.


▶왜 3년이죠? 1명이라고 정한 이유는?
- 지금은 일과 학업을 동시에 해야 하고... 그때쯤이면 집 대출금도 어는 정도 갚고나갈 상황이라... 사실 자식 욕심은 우리 두 사람 많이 없어요. 우리 두 사람 워낙 어렸을 때 어렵게 커서 혹시 가난을 물려주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조금은 있었고요. 저가 사회운동도 하고 남편도 본인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그래도 하나는 잘 케어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1명으로 정했어요. 어르신들은 무조건 많이 원하시죠. 시부모님께서나 어머니도 그래요.


▶1명은 커 가면서 너무 외롭지 않겠어요?
- 그 얘기는 하세요. 그런데 자녀라는 것도 가져져야 낳는 건데... 만약 자녀 생기지 않을 경우, 굳이 의학적 기술을 빌리고 싶지 않아요. 나이가 많아지면 임신이 안 될 확률이 높아지잖아요. 그래서 혹시나 아기 안 생기면 우리는 딩크족처럼 살지 않을까... 입양은 생각 없지만 어른이 될 때까지 후원을 하고 싶어요. 그런 이야기들을 이미 나눴어요. (속으로 역시 활동가답구나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물가가 높아서 6명이 한 아이를 후원하지만, 아프리카 아이는 월 3만원으로 가능하고.. 저희는 혹시나 안 될 경우 이 6명 중 한 명이 되기로 했어요. 이것까지는 이야기가 되었어요. 사회적으로 환원할 수 있는 것들은 많으니까... 굳이 아이가 안 생기면 안 되는 것은 하지 말자. 시험관 아니는 갖지 말자.


▶최근 정부나 관련 기관의 출산 정책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정부 시책 등 많은데... 이러한 분위기 사회 여건 등 사실 본인이 결정할 문제인 것도 같고요. 문제는 출산에 따르는 결정은 심사숙고해야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말은 쉽지만 출산과 동시에 ‘경단녀’가 되는 거고, 단절여성이 되면 그 순간부터 그다음 취업할 때는 무조건 이 어렵고 한 단계 아래도 눈높이를 낮춰도 취업이 못해요. 급한 일 있으면 아이 보러 가야해요. 그렇다고 친정, 시어머님이 아이 봐 줄 거 아니면 답 이 없는 현실이에요. 현재 맞벌이 아니면 생활이 힘들잖아요. 대학까지 아이를 국가에서 케어 하지 않는 이상...
실제 공무원들은 출산휴가, 육아휴가를 다 사용하고도 복직이 되고, 국가에서 어느 정도 보조금과 그런 것이 다 보조가 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라면 2명도 욕심을 내보지 않을까 생각도 해 봐요.


▶단기간에 해결되는 문제는 아닌 거 같아요. 비용도 엄청 드는 거고.
신혼부부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출산을 장려하려면 지금 얘기처럼 진짜 대학까지 국가에서 케어하지않으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예비신혼부부나 결혼하더라도 자녀계획이 없는 분들에게 한 말씀해 주시죠.
- 가족계획은 정말 많이 두 사람이 대화하고 부부의 뜻이 맞아야 해요. 솔직히 ‘본인이 낳기 싫다는데 왜 국가가 난리야’라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거든요. 내가 싫다는데. 니가 키워줄 거 아니잖아요. 정부가, 지역이, 사회가 키워줄 거 아니잖아요.


▶근원적 여성 인권 측면에서 출산장려 등은 좀 어렵다는 뜻인가요.
- 여성의 몸을 이런 식으로 제재하는 자체가 여성 입장에서 굉장히 불만이 많아요. 출산 장려는 또 앞전의 ‘둘만 낳아 잘 기르자’도 사실은 국가에서 억지로 만든 거잖아요. 그때에는 낙태가 심해. 그런 거 보면 국가가 여성의 몸을 왜 제한하는 건지. 그런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는 것이죠. 출산을 장려하는 여러 시책이 필요하지만 강요할 거는 못 된다는 의미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묻겠습니다. 질문이 좀 길어집니다만, 혹시 우리의 인권만 찾다가 역으로 태어날 아이들의 인권을 우리가 무시하는 건 아닌지 하는 건데요. 그들도 본인 의지로 태어난 것은 아닌데, 출산이 저조한 상태에서 태어난 소수의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를 가정해 보는 것입니다. 고령화 사회, 지금보다 부양해야 할 대상, 경제력, 노동력, 생산성, 재정 등의 짐을 그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의 출생률은 유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 주변에 외동이 많아요. 근원적인 문제에서 토론할 경우, 자녀가 있는 사람과 출생한 자녀가 없는 사람의 입장이 조금 다를 거라고 봅니다. 나름대로 정리해 보자면 제도적으로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이 좀 현실적이면서 여성 인권의 측면에서 상호 조화가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강경호 기자 suyeongnet@naver.com




▲ (사)부산여성의전화 활동가 장영희(우측) 씨. 수영넷=강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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