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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5-18 23: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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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부산art] 부산서화단(釜山書畵壇)을 만나다 (3)



[뉴스부산ART] 들어가면서=예술(藝術)과 생활(生活)의 경계(境界)가 사라지고 있는 지금, 서예(書藝)는 동시대(同時代)를 반영한 생활예술(生活藝術)이자 현대미술(現代美術)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서예의 '예술과 가치(價値)'로 규정된 '전통(傳統)과 계승(繼承)'은 이제 '창조(創造)와 발전(發展)'이라는 담론(談論)과 직면(直面)하고 있다. 이를 위한 본격적 논의에 앞서, 이번 '부산서화단(釜山書畵壇)을 만나다'에서는 중진·원로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핵심적인 '서단의 활동을 짚어보고, 서예에 대한 서예인으로서의 자세 등을 엿보고자 한다. 글·사진 강경호(예술감상전문가)




▲ [뉴스부산ART] 부산여류서예인회 제산 신은숙(霽山 申銀淑) 고문이 지난달 2일 오후, 명륜로 자택 목눌헌(木訥軒)에서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다`는 뜻을 담은 `군자지덕풍 소인지덕초(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작품 앞에서 섰다. 글·사진 강경호(예술감상전문가)




부산여류서예인회 고문, 제산 신은숙(山 申銀淑) (2)



 2001년은 여류 서예인 활동이 그리 많지 않던 부산 서단에 여성 서예인들의 모임 등이 결성되면서 여성 서예가가 기지개를 켤 수 있었던 토양이 마련된 시기였다.

 외형상으로 상호 교류와 창작 활동의 든든한 울타리가 된 지금의 부산여류서예인회와 부산여성작가회가 당시 연이어 발족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용을 추구하고자 하는 젊은 여성 서예인들의 실험정신이 현장에 활착 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오는 6월 17일 부산여류서예인회 창립 20년을 앞둔 지난달 초, 초대·2대 회장을 역임한 제산 신은숙 고문을 만나 여류서예인회의 설립 배경과 활동, 서예 입문과 정진, 서단과 서예에 대한 단상 등에 대해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이날 대화는 코로나19 예방 수칙을 준수하였으며, 사진 촬영 시 마스크를 벗고 진행했다. 인터뷰는 독자의 편의를 위해 질의응답 형식으로 2회에 걸쳐 게재한다.

 - 글·사진 강경호(예술감상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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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14일자, '인터뷰(1)'에서 이어집니다.



☞ 운명 같은 '서예와의 만남'은 어디서 시작되었던 것입니까?

 계셨던 부친께서 서예를 즐겨하셨습니다. 편찮으셔서 시골에 오시게 되었는데 동네 사람들을 위한 입춘첩(立春帖)를 쓰거나 친구분들과 시어를 쓸 때, 저는 먹을 갈아주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미술시간, 이젤에다 스케치북을 세워놓고 그리는 모습을 처음 접하며 어떻게 그려야 할지 어려워하다 수채화 붓으로 '몰라 어렵다. 신은숙'을 썼는데, 이를 본 선생님이 저를 불러 '글씨 쓴 적 있느냐'고 물어보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닙니다. 초등학교 습자 시간에 쓴 거밖에 없습니다'라고 하니, 저를 안동 서도협회 그러니까 서예원에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때가 4월이었는데 6월까지 3개월을 배웠습니다.
 7월 여름방학 때 고향에 내려가 부친께 선생님이 붓하고 다 사주시고 서예 공부를 했다고 말씀드렸더니 진학도 해야 하고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하시며, 봉투에 편지와 재료비를 넣어 선생님 갖다 드리라고 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 당시 미술 선생님이 일찍이 재능을 알아보신 것이군요. 그러면 서예는 부친 말씀대로 진학 후에 하셨습니까?
 "사정상 저는 바로 진학을 못하고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서예와 인연이 없었을 것 같았던 어느 날, 저를 서예원에 데려가 주셨던 그때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래 우리 선생님이 그 많은 학생 중 나를 데려갔으니, 뭔가 있으니까 데려갔겠지 그냥 데리고 가시지는 않았을 거다'라는 생각이 저를 다시 서예로 이끌어왔던 것 같습니다."

☞ 흥미진진해지는군요. 서예를 본인 의지대로 다시 시작한다는 것인데, 직장 다니며 공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군요.
 "마산에 첫 발령을 받아 처음에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학원에 다녔습니다. 1981년 부산으로 전근을 와서도 학원을 다녔는데, 더 깊이 공부하고 싶다는 갈증을 느껴 주말마다 서울로 몇 년을 공부하러 다녔습니다. 힘들다기보다는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지난 1984년이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글을 써야겠다'고 결정을 내린 해였습니다.
 사실 그사이 직장 생활하면서 차(茶) 공부도 하고 많은 것을 했거든요. 심지어 찰흙, 지점토를 했는데도 다시 서예로 돌아가더군요. 그래서 '여기에 제대로 해야 하는가 보다. 운명적인가 보다'라고 마음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글씨 공부를 하면서도 국전 등 전시 관람을 많이 다녔습니다. 삼문 우성화 선생, 근원 김양동 선생, 창현 박종화 선생, 마산에는 문정숙 선생께 사사했습니다."

지난 1984년이 인생의 전환점이었던 시기였군요. 서울까지 가게 된 결정적 원인은 무엇인가요. 안정적인 공무원을 그만두고, 불투명한 전업작가로 뛰어들기까지 주변의 반대는 없었나요.

 "어느 날 시골집에 내려가 우연히 서예 관련 예술지에 실린 사진을 보았는데, 힘차게 쓰인 예서에 마음이 동하게 되었습니다. 근원 김양동 선생의 작품이었는데, 알고 보니 부친께서 제자였다고 하시더군요. 부친께 소개해 달라고 말씀드리고, 그해 가을부터 서울 나들이가 시작된 것입니다. 거의 주일에 1번씩 몇 년을 배웠습니다. 부산서 공부한 것과 너무 달랐습니다. 갈등의 시기였지만, '그래 바로 이거다'라고 서예가로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던 시기였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부친과 가족들의 반대가 많았습니다, 막내였던 저를 걱정하셨던 것인데, 뒤에는 격려해 주셨습니다. 전포동 성북초 인근에 부친이 지어준 '푸를 청(靑), 언덕 구(丘)' 청구서예학원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 [뉴스부산ART] `좋은 작품과 훌륭한 작품`에 대해 제산 신은숙 고문은 ˝이를테면 전시장에서 발걸음이 오래 머무는 작품, 발을 다른 곳으로 바로 옮기기가 쉽지 않을 때, 그런 작품들이 좋기도 하고 훌륭하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왼쪽은 신은숙 세 번째 개인전 `한국 여류문학 먹에 놀다` 중, 정부인 안동장씨(貞夫人 安東張氏) 시(詩). 글·사진 강경호(예술감상전문가)



☞ 작가에게 소중하지 않을 작품은 없을 것이라 봅니다만, 그래도 서예에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 '좋은 작품'과 '훌륭한 작품'에 대한 의견을 들려주신다면.

 "좋은 작품과 훌륭한 작품을 구분 짓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전시장을 누구보다 많이 가는 편인데 저의 경우, 좋은 작품은 결국 내가 좋다고 느꼈던 것이 훌륭한 작품일 때가 많았습니다. 이를테면 전시장에서 '아 작품 괜찮네'라고 느끼며 그곳에서 발걸음이 오래 머무는 작품, 발을 다른 곳으로 바로 옮기기가 쉽지 않을 때, 그런 작품들이 좋기도 하고 훌륭하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는 사진을 찍어오기도 하고, 또 그 한 작품을 위해 도록을 사 올 때도 있습니다.


전시장을 자주 가신다고 하셨는데, 장르의 다양성에서 오는 새로운 시선과 느낌이 주는 감동이 있을듯합니다만.

 "저는 서예가 문자를 가지고 써나가는 써내려 가는 것이니 처음엔 데생하듯이 보고 쓰기만 하고, 그러다가 약 20년 공모전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틀이라 볼 수 있는 공모전에 빠져 글씨를 계속 쓰고 또 기초를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하다 보니까 전형적인 제 작품에 대한 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15~20년 지난 이제 창작에 눈을 뜨다 보니 많이 딱딱해져 있더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 문자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끓고 있는 내면의 것을 표현할까. 그런데 붓과 종이로만 너무 힘이 들고, 다른 것을 보고 시선을 좀 돌리고 왔을 때, 좀 더 글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부분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여백이라든지 불균형 속에서 균형이라든가를 찾아볼 수 있는 공간이자 학습의 장인 셈입니다."


☞ 이번에는 '서단'으로 화제를 돌려보겠습니다. 서단 관련해서조금은 무겁고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는 부분이라 특정 주제 등에 대한 논의는 별도 자리에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평소 '서단'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어떤 말씀이든 한 두어 개 들려주시죠.

 "부산 서단을 이야기하자면 서단뿐 아니라 후배들이 거의 없는 것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서예는 글을 쓰는 것이고, 또 자기 작업에 대한 소중함을 지키며 잘해오고 왕성한 활동을 하는 선배도 많으나 그것은 개개인의 것이고, 서단이라는 큰 단체를 이야기하자면 떻게 하면 후배를 양성해 이어갈지 고민입니다. 몇몇 후배 친구들이 모이면 술 한 잔 하며 그런 고민을 합니다. 그대들이 마지막 주자가 될까 겁이 난다고. 숙제이자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단정적인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젊은 작가는 생각도 다르고 화선지에 글을 표현하는 것도 다릅니다. 우리는 보이고 읽어지는 것을 표현한다면 그들은 읽어지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냥 봐 달라. 못 읽으면 어때'라는 식이죠. 그래서 이들을 만나보면 이게 옳다가 아니라, 그렇게 옮겨가는 과정에 신서예를 보여주고 느껴지고, 읽을 수 있는 것을 저는 이해하려 합니다."


☞ 앞서 '서예 먹빛의 확장'과 관련해 고민하고 있다 하셨는데, 구상하고 있는 계획이나 검토 중인 활동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죠.

 "서예도 며칠 전시만 하지 말고 '하루 전시해서 무대에 세워보자'는 생각, 그리고 일반인들이 서서 보는 것이 아니라 관객석에 앉아서 본다거나 하는.... 우리 여류서예인회를 통해서 음악·춤(전통과 현대) 등과 더불어 융합된 서예의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논의 중에 있습니다. '서예 무대에 서다'라고. 가령 국악원이라든지 음악과 더불어 무대를 활용한 여러 가지 기획이죠, 그런 활동 계획을 늘 염두에 두고 생각해 왔습니다. 혼자 작업으로서는 너무 크고 힘들 것 같아 못했던 것이었거든요."


☞ 혹여 서예를 도외시하고 보여주기만을 위한 형식에 치우친다는 우려는 없을까요. 이를테면 서예가 어려워지고 일상과 더 멀어지는 전시 행위라고나 할까요.

 "저는 하나의 '자신감'이라고 봅니다. 그러면서 먹을 대하는 겸손함도 보여주고 싶은 것이죠. 사실상 종이에 먹을 묻히는 서예가 일회성을 가장 잘 나타내려면 전통의 뿌리를 가지고 자기 마음 안에 깊이 스며있어야 무대에서 한 필을 제대로 그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전통 서예의 뿌리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묻혀 가는 우리 서예를 밝히려는 몸부림이라 할까. 그러면서도 같이 융합해서 같이 해 나갈 수 있는 이 시대에 맞는 그런 예술 형태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 [뉴스부산ART] 요즘 한글의 매력에 빠져 있다는 부산여류서예인회 제산 신은숙(霽山 申銀淑) 고문. 왼쪽은 신 고문이 쓴 글씨를 한옹 김진희 선생이 서각을 했다. 지난달 2일 목눌헌(木訥軒)에서. 글·사진 강경호(예술감상전문가)



☞ 우리 서예를 밝히려는 노력이 결실을 보았으면 합니다. 끝으로 드리는 질문입니다. 앞서 많이 논의되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신 고문께 '서예란' 무엇인가요?
 "서예란 문학적 요소, 조형적 요소가 동시에 공존하는 것이며 동양적 사유의 특성을 학문과 예술의 집합체로 묶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만든 문자로 정신세계를 펼치는 조형예술인 셈이죠. 말하자면 단순한 붓놀림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먹의 농도에 따라 무한히 달라지는 색감·종이·붓의 성질이 서로 연관되어 글씨의 느낌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조형미 율동미 추상미가 함께 내포되어 있으며 작가의 개성이나 심리까지 표현된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련기사

- [뉴스부산ART] 부산여류서예인회 제산 신은숙 고문 (1)

- http://www.newsbusan.com/news/view.php?idx=7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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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화단(釜山書畵壇)을 만나다(3)=부산여류서예인회 신은숙 고문(2)

일시 및 장소 : 2021. 4. 2. 오후, 동래구 명륜로 목눌헌(木訥軒)

제산 신은숙(霽山 申銀淑)

개인전 4회, 대한민국서예대전 우수상(1994), 월간서예대전 3체상(해서 예서 행서 1993), 대한민국서예대전·부산미술대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역임, 전 부산여류서예인회 초대·2대 회장, 전 부산대학교 예술대 객원교수

글·사진=강경호(아트디렉트, 예술감상전문가)

writing and photography; Kang GyeongHo(art director, art appreciation expert)


인터뷰는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 등 예방수칙을 준수하고, 사진 촬영의 경우 마스크를 벗고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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