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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07-22 21:5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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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나우스고르 <나의 투쟁>




우리 주변에는 일상사를 꼼꼼히 기록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옛 사람이 쓴 그런 글들이 몇 백 년을 살아남아 한 시대의 역사를 대변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런데 그것이 한낱 기록 정도가 아니라, 작가의 비상한 기억력과 빼어난 문장력에 힘입어 문학의 한 장르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노르웨이 출신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는 2009년부터 3년 동안 3622쪽 분량의 글을 총 6권의 책으로 나누어 출간했다. 질풍노도의 청년기부터 43세까지 30여 년의 인생을 세밀한 기록으로 나의 투쟁안에 녹여 내린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서 삶이 다할 때까지 그의 생활과 생각을 담는 이 작업이 계속될 것임을 작가는 시사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3권까지 번역되어 있다. 1, 2권은 아버지와의 불화와 그의 죽음을 주제로 하고 있고, 3권에서는 스웨덴에 정착한 다음 재혼한 린다와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육아문제를 주로 다룬다.


남의 시시콜콜한 사생활 이야기가 왜 이리 흥미 있지!” 우선 적잖은 두께를 자랑하는 그의 책은 한번 손에 쥐면 놓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재미있다. “강력하다. 자유롭다. 다채롭고 풍요로우며 때로는 섬뜩하다. 지독하게 상세하며 매혹적이다.” 등의 다양한 찬사를 전 세계로부터 받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다.


나의 투쟁은 우선 총인구 5백만 명의 노르웨이에서 50만 부 이상이 팔렸다. 1~3권이 먼저 출간되자 전국 서점들은 모두 특별진열공간을 만들어 아직 출간되지 않은 나머지 책들을 위한 자리를 미리 비워둘 정도로 인기였다고 한다. 곧 전 세계 32개국에서 연이어 호평리에 출간되는 성공을 거두며 노벨 문학상에 거론되기까지 했다. 책속의 특이한 문체를 거론하며 크나우스고르 현상이라는 문학 용어까지 생겨났다.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나의 투쟁이란 거창한 제목과는 달리 그의 글은 사소한 일상을 담백하게 기술하고 있다. 스웨덴 여자와 결혼한 노르웨이 남자가 아이 셋을 키우며 주변의 인물들과 교류하는 신변잡기에 가까운 내용이다. 우리로서는 다소 생소한 북유럽의 풍물과 생활 풍속도를 세세히 그려 보인다. 동시에 현대사회와 예술에 대한 놀랍도록 깊은 성찰이 담겨있다.


북구인답게 한 인간의 내면에 본능처럼 자리한 고뇌와 열정과 광기가 분출되기도 한다. 특히 치매인 할머니와 함께 살던 중증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오물로 가득 찬 할머니의 집을 두 아들이 여러 날에 걸쳐 스스로 치우는 장면은 압권이다. 이 놀랍도록 치밀한 이야기 덕분에 선의의 피해를 입은 주변 사람도 없지 않다고 한다. 실명으로 나온 삼촌과 전 부인이 명예훼손으로 작가를 고소하기도 했다.


책의 내용은 대부분 작가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다른 누군가가 그를 바라보며 쓴 것 같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냉정하고 리얼한 문체라 일종의 자해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나는 깨진 유리 조각 중 가장 큰 것을 집어 들고 거울을 보며 얼굴을 그어대기 시작했다. 가능한 한 깊은 상처를 남기기 위해 기계적으로 온 얼굴을 그어댔다. 턱과 양 볼, 이마와 코, 턱에 이르기까지 한 군데도 남기지 않고, 흐르는 피를 닦아가며 유리조각으로 얼굴에 상처를 남겼다. 긋고 닦기를 수차례 계속한 후 그제야 나는 만족할 수 있었다. 얼굴에 단 한 줄도 더 그을 만한 틈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한 나는 마침내 잠자리에 들었다.” 처음 린다에게 고백한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술에 취한 그가 벌인 행동이다. 그는 자신이 마조히스트가 아니라 리얼리스트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할 수 있는 일이란 글쓰기밖에 없다고 크나우스고르는 고백한다. 바로 이 글을 쓰는 작업을 통해 그는 자신을 해부하고 관찰하며 스스로가 누구인가를 알아보려 한다. 비록 그것이 부끄럽고 아픈 일이라 할지라도 그는 주저하지 않는다. “나는 하루에 다섯 장을 쓰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일 반항하듯 꾸역꾸역 글을 썼다.”라는 문구를 읽으면 김훈의 필일오(必日五 ; 하루에 원고지 5장 쓰기)가 연상된다.


하지만 우울증 병력을 가진 아내와의 결혼생활과 아이들 육아문제 등 선택에 따른 결과는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 작가겸 일상인으로서의 갈등이 증폭한다. 글을 쓰지 못할 때 그는 무기력하고 공허하다. “.....나는 홀로 앉아 밤낮으로 글을 쓰던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그 동경은 너무나 강해 온몸이 아플 정도였다. 내가 동경했던 것은 그 광적인 상태, 그 외로운 상태, 그 행복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어린 아이들에게서 등을 돌릴 수 없는 삶도 그는 받아들인다. 다만 내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서서 (.....) 나는 커다란 바위를 징으로 쪼듯 하루하루를 참고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런 나날이 그로서는 투쟁인 셈이다.


아마도 아이들이 자라서 더 이상 큰 보살핌이 필요하지 않을 때 그의 진정한 글쓰기가 시작될 지도 모르겠다. “내가 열여덟 살 때는 온갖 감정에 둘러싸여 살았고, 세상을 지금보다 훨씬 강렬하고 선명하게 받아들였다. 바로 그 때문에 나는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다. 당시 글을 쓰려했던 이유는 그것뿐이었다. 음악으로 움직일 수 있는 세상을 나는 글을 움직여 보고 싶어 했다. 나는 인간의 목소리 속에 담겨 있는 슬픔과 불만, 만족감과 기쁨, 우리를 채우고 있는 모든 것을 건드려보고 싶어 했고, 깨워보고 싶어 했다. 어떻게 그것을 잊을 수 있는가.” 작가의 이런 낮은 목소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까닭이다.


그는 지어낸 이야기는 진정한 이야기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픽션을 쓴다는 것은, 등장인물을 만들어내고 그들을 둘러싼 이야기를 지어낸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구토가 날 것 같다.” 많은 평론가들은 새로운 글쓰기에 해당하는 그의 문체에 주목한다. 주변 사람들의 실명이 등장하는 그의 글은 기존의 소설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과거사건을 재구성한 수필에 가깝지만 대부분 대화체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모든 일들을 파고 들어가 그 순간을, 그 느낌을 이야기로 만들어내는데 주력한다. 그는 이 아니라 인간을 읽고 를 보기를 희망한다. 기존의 어떤 문학이론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 이런 특징을 두고 비평가들은 크나우스고르현상이라 분석한다.


이 숙 희 (수영넷 suyeong.net 고문) 



[덧붙이는 글]
☞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나의 투쟁 1, 2, 3』, 손화수 역, 한길사(2016) ☞ ▶ 이숙희 고문은 따삐스리 본고장 프랑스에서 한국인의 위상을 높인 우리나라 '따삐스리 1세대 예술가'이다. 경남여자고등학교 재직 중 프랑스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도불(1971), '국립 고블랭 따삐스리 아틀리에', 'C. R. E. A. R.의 따삐스리 아틀리에'에서 정부 장학생으로 수련하면서 프랑스 국립 따삐스리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세계적 따삐스리 명장 '피에르 다껭'의 조교를 거쳐 '파리 시립 아틀리에 책임자(1981-1987)'로 근무하였다. 또한 현대문학 소설 추천 완료되어 '이언(필명)'으로 활동하였다. 파리 ADAC화랑(1983) 개인전과 Salon d'Automne, Salon National des Beaux-Arts 공모전, 단체전 등 50여 회 참가하였다. 파리3대학 연극과 석사, 파리8대학 조형예술학 박사.☞ ▶ 귀국 후 국제신문 논설위원, 부산대, 부경대 등에 출강 하였으며, 다양한 직업과 체험을 거친 다음 지금은 조용한 노후 생활을 보내고 있다. 현재 수영넷 suyeong.net 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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