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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1-17 13: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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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부산ART : 해담의 서예만평(37)





☛ 19세기까지의 철학은 이데아, 로고스, 신 중심 철학이었으나 20세기부터 이들 형이상학, 불변의 진리를 부정하는 철학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관점에 따라 진리는 얼마든지 변한다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주장이 참신하며 또한 수긍이 간다. 물리적 관점에서도 그렇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우주가 항상 변하고 있으니 그 안의 만물, 만물에 속하는 우리네 삶도 변하게 됨은 당연하다. 이렇게 인간은 항상 변화 속에 살고 있으니 ‘진리 없음’에 수긍할 수 있으나, 이번에는 또한 이것이 진리로 된다면 ‘진리 없음’의 모순에 빠진다. 어떻거나 세상만사, 큰 틀에서 보면 보수와 진보, 음과 양 등 수많은 2분법도 진리 있음과 진리 없음의 사고방식이니, 그래서 세상은 둥글둥글 재미있게 돌아간다. 여하튼 변화는 변함없는 활력소이다. 서예에서의 변화를 생각해 본다.


☛ 최근 우리에게 큰 변화가 있었다. 2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을 말한다. 코로나로 사회 곳곳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서예는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차에 코로나로 인하여 더욱 어려운 환경에 처했다.


주위에 큰 변화가 있으면 종속된 존재도 그것에 따라 변하게 됨은 역사가 잘 말해주고 있다. 회화를 예로 들면, 19세기 초중반 카메라가 발명되고부터 전통적 회화는 큰 어려움에 빠졌다. 회화는 사실성에서 카메라를 따를 수 없기에 과거와 다른 길을 걸어야 했고, 여기서 등장한 것이 인상파이다.1)

1) 물론 카메라 발명은 회화에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은 틀림 없을 것이다. 그러나 카메라가 발명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인상파는 생겨났을 것이다. 당시의 카메라는 사용하기에 대단히 불편하였고, 성격상 사진과 회화는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화가는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고, 또한 튜브 물감과 이젤의 발명으로 과거에 비해 자유롭게 된 것도 인상파 발생의 원인일 것이다.

인상파는 카메라와의 경쟁을 피하고, 카메라가 따를 수 없는 영역에 주목했고, 이 때부터 회화는 새로운 길을 걷게 되었다. 현대철학에 큰 영향을 미친 실존주의도 이와 비슷하다. 1, 2차 세계 대전, 특히 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은 인적 물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도시는 파괴되고 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러나 이것이 새로운 발전 계기가 되기도 했으니, 그중의 하나가 실존주의이다.2)

2) 실존주의란 개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키르케고르 , 니체 , 하이데거 등의 철학자에 의해 서서히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지만, 그 근원은 불분명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니체의 허무주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20세기 전반기 철학적 흐름을 주도하게 되었고, 더구나 양 차에 걸친 세계대전 경험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되는 충분한 동기가 되었다. 즉, 양 차 대전을 겪었던 전후 유럽의 문학가들이 인간의 내면세계에 내재된 파괴적 본능을 새롭게 이해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을 그들의 작품에 논의함으로써 사회적 움직임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하다. 그리고 카브리엘 마르셀(Gabriel Marcel, 1889~1973)에 의해 실존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 그 근본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키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 카뮈(Albert Camus, 1913~1960) 등의 철학적 사유를 중심으로, 그 동안 주목받았던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와 전통적 종교에 대한 불신을 실존주의 철학적 가치관이 대신하기에 이른 것이다.

철학자들은 자신이 경험한 전쟁의 참상으로부터 인간, ‘나 자신을 다시 생각해 보자’는 욕구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점차 실존주의를 비롯한 현대철학3) 으로 연결되면서 철학은 더욱 풍요로워졌다. 이렇게 변화는 새로운 변화로 이어지면서 20세기 이후, 세계는 급격하게 변했고 서예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4)

3) 현대철학이 근대철학과 구분되는 점 : 현대철학에는 시간성, 우연, 다양성, 차이에 대한 감수성이 짙게 배어있다. 우리의 현대적 인식[철학적 선입견]을 반영하고 있다. 근대철학은 과학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다시 말하면 근대철학이 과학과 밀접한 것에 비해 현대철학은 예술과 밀접한 관계이다. 보편성, 합리성, 객관성에 기반한 이성주의가 과학과 가까울 수밖에 없다면 우연성, 다양성, 감각에 기반한 현대철학은 예술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4) 세계 제2차 대전으로 우리나라의 서예는 큰 영향을 받았다. 일본의 패전으로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하였고, 이에 따라 독자적 서단 활동도 왕성하게 되었다. 특히 한글서예가 크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패전국인 일본 서예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소위 전위서예가 유행했다. 전위서예는 포스트 모더니즘 사조가 더해지면서 일본 서예의 큰 흐름을 이루게 되었다.


☛ 옛날에는 서예(붓글씨)를 잘 하면 온 동래에 이름이 알려지는 등 강력한 명예의 수단임과 동시에 거의 유일한 서사 수단이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서양 문물, 특히 경필과 컴퓨터(WP, 워드프로세서)가 상용화되면서 서예 고유의 기능이 무너졌고, 최근에는 AI의 등장으로 그 매력이 더욱 허물어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서예)작가의 본업인 작품 판매는 점점 어려워지고, 강의 수입조차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례 없는 어려움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환경]에서 서예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난관을 헤쳐나갈 묘안이 없다 하여 그냥 있을 수는 없다. 우리의 일이기 때문이다. 우선, 앞에서 언급한 카메라에 대처한 인상파와 같이, 양 차 대전에서 활기를 얻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이나 실존주의 철학과 같이, 서예도 닥쳐온 환경변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전략이 필요하고, 전략은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지어진 『손자병법(孫子兵法)』 「모공편(謨攻篇)」에 나오는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는 말이 좋은 참고가 된다. 서예도, 서예를 알고 서예를 해야 서예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서예를 모른다면 서예에 물음을 던져야 하고, 알고 있다 하더라도 깊이 알기 위해서는 또다시 물음을 던져야 하며, 더 많이 알기 위해서는 더 많이 실존적 물음을 던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서예는 무엇인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라 질문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렇기는 하다. 초등학생 이상이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답을 하라고 하면 얼른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음속으로 서예를 ‘붓으로 글을 쓰는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썰마?’하여 망설일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개념 잡기가 어려워 망설일 것이다. 비록 서예를 하는 사람이라도 망설인다면 ‘거름 지고 장에 가는’ 서예를 하기 때문일 것인데 어느 경우이건 서예를 잘 모르거나 자신의 서예 정체성에 문제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손자병법』에서 “知彼知己, 百戰不殆”라 했다. 서예를 알아야 하며 알더라도 더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도 때도 없이 “서예는 무엇인가?”하고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하고, 이에 대해 사유하고 나름대로 답을 내려야 한다. 아마도 많은 답이 있을 것이다. 서예의 얼굴은 하나가 될 수가 없기 때문이고 그 중의 어느 것을 자신의 서예 모습으로 만들어 간다면 그것이 자신의 서예 정체성일 것이다.


사실, “서예는 무엇인가?” 에 대한 물음은 정답을 묻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세계를 묻는 것이고, 단순한 메타포보다는 하나의 사유체계를 말하는 알레고리라 하겠는데, 예를 들면,

(1) 서예는 인품이다.

(2) 서예는 교육이다.

(3) 서예는 모방이다.

(4) 서예는 음악이다.(오케스트라, 뮤지컬 등)

(5) 서예는 시문학이다.

(6) 서예는 서권기 문자향이다.(학문의 깊이)

*(7) 서예는 차이와 반복의 예술이다.(들뢰즈의 사유)

*(8) 서예는 규정적 예술이다.(칸트적 사유)

*(9) 서예는 반성적 미술이다.(칸트적 사유)

(10) 서예는 도의 예술이다.(정신성, 서도)

(11) 서예는 법의 예술이다.(서법)

(12) 서예는 문자조형예술이다.(서예)

(13) 서예는 추상표현이다.

(14) 서예는 서여기인이다.

(15) 서예는 풀어 놓는 것이다.(書 散也)

(16) 서예는 선조(線條)의 예술이다.

(17) 서예는 종합예술이다.

(18) 서예는 숙달이다.

(19) 서예는 디자인이다.

*(20) 서예는 과정이다.(인격수양)

(21) 서예는 자족이다.

(22) 서예는 자기 과시(誇示)이다.

*(23) 서예는 시뮬라크르이다.

(24) 서예는 조화이다.

(25) 서예는 정감이다.

*(26) 서예는 시간성 예술이다.

(27) 서예는 공식이다.

(28) 서예는 정답이 있는 예술이다.

(29) 서예는 정신이다.

(30) 서예는 붓의 예술이다.

(31) 서예는 필세의 예술이다.

(32) 서예는 일획성의 예술이다.

(33) 서예는 그래픽 예술이다.

등이 있을 것이다. 이 중에는 중복성도 있지만, 이것을 크게 보면 출세의 수단인가?5)

5) 이것은 조선 시대에서나 가능했던 일이고, 지금은 그 의미를 상실했다. 양반의 허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경우일 것이다.

돈벌이의 수단인가? 인격자로서의 자기완성인가? 자족이며 취미인가? 등으로 구분할 수도 있을 것이고, 당연히 어느 것을 취하느냐에 따라 서예는 달라질 것이다. 예를 들면, 동네 어귀에 있는 같은 고목을 보더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보인다. 가구 작가는 재목(材木), (미술)작가는 작품의 소재, 동네 사람은 정자나무, 무속인은 숭배의 대상으로 보는 등 각자의 관점에 따라 존재의미가 달라질 것이다. 서예도 같은 문자를 보더라도 자신의 길(사유)에 따라 그 조형이 달라질 것이기에, 서예에 대한 자신만의 답은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 얼굴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 변화는 위기를 동반하고 체질은 위기에서 강화된다. 오늘날 서예에 닥친 어려운 환경, 코로나 팬데믹에 굴복하지 말고 이것을 계기로 자신의 서예를 되돌아보게 된다면 전화위복일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서예 위기는 시간의 문제였고, 우리는 여기에 대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달리 말해, 오랜 세월 동안 우리는 서예에 대해 현상학적 사유를 했던 때가 있었던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서예가 더욱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나 이러한 난관은 서예의 문제만은 아니다. ‘서예는 서예이다.’며 하찮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서예의 발전을 원한다면, 자신의 서예를 원한다면, 언제나 물음을 던지며 자신의 서예 정체성을 확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의 유무가 아마와 프로, 전통과 현대, 침체와 발전의 갈림길로 봐야 할 것이다.6)

6) 옛날에는 서예가가 자신만의 서풍을 가지게 될 때 일가(一家)를 이룬다 하였고, 이것이 최고의 경지라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다.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그 정체성을 향해 매진하는 것이 서예가의 자세일 것이다. 여기에 완성은 없다. 어제와 오늘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가을은 더 빨리 지나간다. 어제는 초가을인 듯하더니 오늘은 늦가을이다. 가을 하늘도 쳐다보고, 한 잎 낙엽에 시선을 모아보며 가을을 즐겨보자. 그리고, 가을은 서예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좋아서 즐기면 그것이 웰빙이고 때로는 돈도 된다. 차호에는 현상학적, 실존적 서예에 대해 좀 더 살펴볼 것이다.


海潭 吳厚圭(書畵批評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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