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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7-22 15:4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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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 세잔, 〈온실 속의 세잔 부인〉, 1880년, 캔버스에 유채, 92×73cm,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세잔(Paul Cezanne, 1839~1906)은 '사과의 화가'라 부를 정도로 세잔의 〈사과〉가 유명하게 된 것은 현대미술이 세잔의 〈사과〉로부터 꽃 피기 시작하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세잔은 같은 사과라도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므로 이들의 특징을 담아야 한다 생각하고 그 본질을 구사한 것이다. 사물의 본질뿐 아니라 형태, 음영, 입체감 등을 색채만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고, 형태도 단순히 구형, 원통형, 원뿔형 세 가지에서 비롯한다 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그의 〈생 빅투아르 산〉에서 그대로 적용하였다.

그림의 〈온실 속의 세잔 부인〉을 보면 세잔의 생각을 잘 알 수 있다. 보통 초상화와 달리 특징이나 세부 묘사가 없다. 얼굴이 너무 단순하게 동그랗고 귀의 모양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그는 오랜 시간 모델을 응시하며 그의 본질을 읽어 내고 그것을 단지 색채로만 화면에 옮겨 놓았다. 이런 세잔의 이론과 화풍은 야수파와 입체파를 태동시키는 업적을 이루었다. 그래서 세잔을 ‘천재’라 한다.

천재가 세상을 바꾼다. 서예에서는 천재나 신동이 태어날 수 있는 토양이 아니다. 수재도 나타나기 어렵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 했듯이, 어쩌다 우둔한 사람이 명필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서예에서 ‘천재 서예가’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 ‘소년 문장은 있어도 소년 명필은 없다.’라는 말은 서예에 신동도 없다는 것인데, 왜 천재도 없고 신동도 없을까? 천재의 사전적 의미는 “선천적으로 보통 사람보다 아주 뛰어난 정신 능력이나 재주. 또는 그런 능력이나 재주를 가진 사람”이다. 그렇다면 천재는 신동과 수재와 어떻게 다르며 서예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의 genius(천재, genie)는 오늘날 사전적 의미와는 다소 다르게 안내자나 땅을 지켜주는 수호신을 의미했다. 천재는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보통사람과는 다른 존재인 신, 신령, 천부의 재능 등의 뜻을 가지게 되었고, 14세기에 영어로 유입되었다.


칸트는 그의 『판단력 비판』에서 ‘예술가는 천재다.’ 하였는데, 그가 말한 천재는 ‘천부의 재능이 있는 존재’, 자연에서 어떤 규칙을 발견하고 그 규칙으로부터 예술작품을 만드는 미술가를 말한다. 즉 창의성을 발휘하여 독창적인 무엇을 창작하는 사람이 천재이고, 미술가는 바로 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론 칸트는 기본적으로 미술가가 만드는 미술작품(인공미, 부속미)보다 자연의 미가 우월하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단지, 때로는 천재들의 독창적 창작이 자연-하느님의 창작물, 객관적이며 목적 없는 합목적물-에 버금하고, 특히 현상계인 인간 사회에서 미술가가 창작하는 ‘목적 있는 합목적물’이 때로는 좋은 역할을 할 때가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경우의 미술 작품에서 미술가의 천재성을 인정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천재성은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한 모방이고, 그것에는 독창성, 원본성이 들어가야 한다. 즉, 자연의 표상에 기인하는 것이나 미술가의 창작적 상상력을 적용하여 창조해 내는 능력을 천재성으로 보았다.


▲ 《그림 2》피카소, 〈guitar〉, 신문 등 혼합재료 콜라쥬, 1913.

피카소(1881~1973, 스페인)는 누구나 인정하는 칸트형 천재이다. 입체파 화가이며,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 <납골당> 등 수많은 명작을 생산한 (회화)미술가로 알고 있으나 1200여점의 조각 작품을 남긴 조각가이기도 하다. 피카소에 대해서는 말 할 필요가 없다. 칸트가 말한 그러한 천재로 평생을 살았다. 보통 천재는 하나의 천재성으로 만족했다면 피카소는 입체파, 콜라주 등 당시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아방가르드 기법을 창안하였다. 이러한 피카소의 전위적인 미술 성향의 영향을 받지 않은 20세기 미술가는 전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소는 말년까지도 끊임없이 새로운 미술을 추구한 전대미문의 천재이다.

칸트는 미술을 2가지로 구분하였다. 미술가의 천재성에 의한 미술과 수공업적 미술[기술]로 구분하였다. 수공업적 미술(기술), 테크네(techne)는 천재성을 필수로 하지 않는다. 특정 기술에 대한 이론과 실기를 배워서 터득하는 기술이다. 반면에 미술가의 천재성은 후험적인 것이 아니라 선험적인 것으로 노력에 의해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천재에도 기계적 기술이 있지만 그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자신의 작품을 창조한다는 것에서 기계적 기술과 차이가 있다. 칸트는 이러한 미술가의 천재성을 도덕적 선과 연결 시켜 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미술가의 천재성을 매개로 신을 경험할 수 있는 경지로 진입할 수 있다고 보았고, 따라서 칸트가 말한 천재의 작품에는 창의성, 독창성, 원본성이 있여야 한다.


이것과 달리 신동은 주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말이다. 어린아이 중에, 예를 들면, 다른 점에서는 뛰어나지 않으나 논리적 사고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산수의 신동, 체스의 신동, 계산의 신동 등이 있다. 모차르트, 슈베르트 등은 음악의 신동이다. 신동은 주어진 재능보다 고된 훈련으로 우수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다. 어떤 제한된 영역에서만 뛰어난 재능이 있고, 자신은 그 능력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특수 재능 정신박약자와는 다르다.


신동은 좋은 기억력과 자신의 경험을 서로 관련짓고 조직할 수 있는 정신적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점에서 선천적이며, 실습, 훈련 등의 교육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는 의미에서 볼 때는 후천적이다. 이와 달리 불우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노력으로 탁월한 업적일 이룬 사람도 신동이라 한다. 역사 속에서 볼 때 어릴 때의 기대만큼 나이와 더불어 계속 성장한 신동은 더물지만 음악에서는 예외가 있다.


그리고 수재는 머리가 좋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고, 서예에서 말하는 명필은 글씨를 매우 잘 쓰는 사람을 말함이니 후천적 재주를 말한다. 즉 서예가는 칸트가 말한 창의성을 발휘하는 천재가 아니라 기계적 기능, ‘테크네’가 바탕이 되는 기능적 예술가에 속한다. 정해진 법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나 천재성을 발휘하여 임의로 문자를 만들거나 법을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구한 미술사를 살펴보면 미술(회화)에는 천재가 많음을 알 수 있다. 르네상스 이후,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세잔, 빈센트, 피카소, 뒤샹, 백남준, 워홀 등 천재가 대단히 많다. 이들을 천재라 부르는 것은 새로운 미술양식을 창안했거나 크게 발전시켰기 때문이고, 이들 천재에 의해 미술은 오늘날의 미술로 발전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역사적 시간은 병열로 흐르지 않기에 평할 수는 없지만, 천재에 의한 새로운 양식이 순기능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러네상스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새로운 양식에 의해 (오늘날의) 미술이 개판(開板)되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역설일까? 천재에 의한 새로운 미술 양식은 대부분 기존양식을 부정하면서 발생하는 것이기에 ‘난해한 오늘날의 현대미술’은 어쩌면 당연한 산물일 것이다.


예를 들면, 김아타(1956~)는 세계 곳곳에 캔버스를 세우고, 1~2년의 시간이 지나 저절로 변한 캔버스를 가져와 전시하면서 ‘자연과 함께 예술을 하는 사유’라 한다. 마치 데미안 허스트가 그랬듯이 땅위에 있는 캔버스는 태양, 비, 눈, 바람 등 주위의 자연을, 땅에 묻힌 캔버스도 물 속에 짐긴 캔버스도 당연히 온갖 자국이 남게되고 이것을 자연이 만드는 ‘작품’이라 한다. 김아타의 작업은 분명히 전통적 그림과는 개념이 다르다. 천재적 시각이고 독특하다. 그러나 천재라는 말은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이미 이와 유사한 시도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반면에 서예에는 천재도 없고 김아타와 같은 아이디어도 없다. 문인화에도 없고 전통산수화, 불화, 민화에도 없는 것 같다. 예부터 여기에 ‘천재’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작가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서예 문인화를 포함한 이들 작품에 시대성, 사회성, 독창성 등 작가 자신의 독창적인 창의성 표현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작가의 천재성보다 재현성, 기계적 기능이 중요하다는 것이고, 이것은 결국 창작불가 내지는 독창성, 원본성이 사실상 어렵다는 방증이다. 흔히 남비북첩, 진운(晉韻), 당법(唐法), 등은 시대성이나 사회성을 나타낸 것이고, 천재적 산물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이것은 작가 자신의 독창성이나 창의성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다시 생각하면 서예는 내용인 문장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문제이다. 어떻게 하면 문장을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할 것인가? 와 어떻게 하면 문장을 아름답게 표현할 것인가? 와의 중간 어떤 지점에서의 서사활동으로 볼 수 있고, 이러한 서사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서예가는 문장가일 필요가 있다. 사실 20세기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서예가는 문장가였고, 그래서 명필이 나올 수 있었다. 이후 서예는 전통 서체를 벗어난 다양한 서체 표현이 활발하게 되면서 시문학과는 점차 멀어졌다. 이것이 오늘날과 같은 표현중심인 서예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시서화는 각자 독립하였고, 서예가는 전통서체나 서사보다 문자의 미적 표현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재 크게 유행하고 있는 ‘캘리’도 우연이나 기획이 아니라 이러한 과정 중에 나타날 수 있는 필연적 산물일 수 있고, 또 달리 생각하면 천재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 《그림 3》 앤디워홀, 〈캠벨 스푸 통조림〉

앤디워홀, 〈캠벨 스푸 통조림〉은 32개의 캠벨 스푸 통조림을 인쇄하여 모아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95년 모마가 1450만 달러에 구입했다. 앤디워홀의 캠밸 스푸 통조림은 대량생산, 대량 소비되는 현대사회를 잘 나타내는 작품이며 팝아트의 선도적인 작품이 되었다.

사람들은 앤디 워홀(1928~1987, 미국)을 팝아트의 제왕이라 부른다. 그는 매스 미디어에서 소재를 찾아 작품을 대량 생산하면서 미술계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나는 그저 언제나 내게 아름다워 보이던 것들, 우리가 깨닫지 못한 채 매일같이 쓰고 있던 물건들을 그린 것뿐이다.”라 한 것은 그의 미술 관념을 잘 나타낸 것이다. 뒤샹 이후 미술의 개념을 새롭게 했다. 그는 캠벨 수프, 코카콜라, 마릴린 먼로 등 등 대중에게 익숙하고 유명한 이미지들을 모티프로 20세기 미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함과 동시에 대량 소비 사회의 일상적 오브제들을 예술품으로 승화시켰다. 그리고, 실크 스크린, 스텐실 같은 기법을 사용하여 작품을 대량 생산하면서 순수 미술과 상업 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워홀은 자신의 작업실을 ‘팩토리’라고 하는 등 ‘미술을 사망하게 한 공로자’이지만 칸트가 말한 천재임에 분명하다.

앞에서 언급한 칸트의 천재에 따르면 한자를 만든 창힐이나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왕희지나 추사 등은 천재라 해야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천재라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 서예에 천재가 없고, 또 필요도 없는가?


천재는 정답이 없는 환경에서 태어나고, 신동, 수재, 명필은 정답이 있는 환경에서 자란다. 전자는 위버멘쉬(초인)의 길, 주인의 길이고, 후자는 편한 길, 노예의 길이다. 전자는 정답을 싫어하는 길, 천재가 선호하는 길이고, 후자는 정답을 찾아가는 모범생의 길, 신동이나 수재가 선호하는 길이다.

서예는 이 두 가지의 길, 전자의 길과 후자의 길에서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당연히 전자를 택해야 할 것이다. 도판의 예에서 보듯 천재 없는 획기적 발전[혁신]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예는 숙명적으로 후자의 길을 택하기 쉽고 그래서 천재가 필요없다. 그렇더라도 백번 그렇더라도 서예는 미술이기에 항상 천재의 길, 전자의 길을 동경(憧憬)해야 한다. 사실, 그것 자체로도 서예는 무척 아름다운 일이며 희망이 있다.


海潭 吳厚圭(書畵批評家)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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