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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9-08 23: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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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부산ART=진품과가품, KANG GYEONGHO (Sept 8, 2022)


☛ 작가가 중요한가? 작품이 중요한가?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는 말에 의하면 작가보다 작품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당연히 맞는 말이다. 작가는 작품을 생산하는 것이니 작품은 작가의 얼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서예의 목표라 말할 수 있는 ‘서여기인’으로 보면 ‘작품은 작가를 말한다.’로 되고, 이는 전자와 의미가 달라진다. 어떤 작품이건 작가에 의해 생산되는 것이니 작가는 작품의 얼굴일 수밖에 없다. 작가와 작품, ‘하나 그리고 둘’이기도 한 작품과 작가를 하나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단순히 말해 무명일 때는 작품이 중요하고, 유명인이 되고부터는 작가가 중요하다 할 것이다. 무명작가의 경우는 아무리 작품이 좋더라도 위작이 없다는 것은 작품보다 작가가 더 중요하다는 방증이다.


위조 작가는 대개 유명 작고 작가의 작품을 위작하나 더러는 생존작가의 작품도 그 대상으로 한다. 천경자, 이우환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아이러니한 것은 작가가 직접 위작으로 의심되는 작품을 감정했음에도 위작 여부가 불분명(판결나지 않았다)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품과 위작(가품)은 작가 자신도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일까? 차이가 있다면 도대체 무슨 차이일까? 필자가 과거 본연재 어디에 ‘미술품 감정’에 대해 언급한 바가 있기에 여기서는 정성적인 차이만을 단순히 생각해 본 후, 이것과 인간의 근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고자 한다.



☛ 작가를 논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작가 작품에는 그 작품의 분위기, 품운(品韻), 기운(氣韻)이 있다. 즉, 작품에서 풍겨오는 작가의 정신, 작품제작 과정에서의 몰입도와 정성, 운필의 유연성 등이 포함되고 여기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자신의 예술철학이 있는 진품 작가는 창작을 위해 사유하고 사유한다. 그래서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작품에 자신의 철학이 들어가게 되어어 어딘가 모르게 기운이 생동하게 된다. 반면 위작 작가는 오직 모방에만 집중할 것이니 여기에 작가적 철학이 있을 수 없고, 더구나 위작 작가와 진품 작가의 철학이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설사 위작에 그것이 포함된다 하더라도 식견있는 눈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정성도 마찬가지이다. 진품은 정신일도(精神一到)의 창작이니 일필 일필에 정성을 다할 것이나 위작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 오직 그럴듯하게 모방하면 되는 것이니 무심코 놓치는 부분이 많고 마무리가 부족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작품에서의 자유다. 진품 작가는 운필에서 구애됨이 없다. 반면에 위작 작가는 원작의 습관이나 스타일에 벗어나지 않으려 하다보니 어딘가 구속된 듯한 선질(線質)을 보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어딘가 불안하고 조잡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정신, 정성, 자유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나, 일단 위작으로 드러나면 가치야 말할 것 없고 소장하는 그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진품과 위작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라 할 정도로 위작품의 가치는 형편없다. 물론 그림의 경우는 이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진실보다 위작, 가짜, 위작이나 다름없는 사기가 너무 많다. 현대일수록 이런 가짜가 많고, 가짜가 수많은 사람을 먹여 살린다는 기막힌 현실이 또한 오늘의 세상이다. 보이스피싱, 거짓말하는 정치인, 광고 등 각종 가짜에 시달리면서 즐기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거짓에 실망한 사람은 이 세상에 진실만 있기를 바랄 것이다. 진실의 세상은 오아시스같이 만사가 쾌적하고 낙원같이 편안하리라 생각하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고, 끔찍한 세상이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않는 세상을 상상해 보면 그곳이 바로 지옥임을 방금 알 수 있다.


아무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세상에는 소설책도 동화책도 없을 것이다. 변호사, 검찰, 경찰도 필요 없다. TV 어나운스는 ‘오늘 우리가 임의로 가공한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음료수 광고도 ‘설탕물이고 당뇨병의 원인물질’이라 해야 할 것이니 모든 상품 광고도 사라질 것이다. 엔터테인먼트도 없고 웃을 일도 없을 것이다. 자기의 마음을 그대로 말해야 할 것이니 연애는 3일을 넘기지 못하고 가정도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공산국가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고, 민주국가도 기업이 망하고 국민은 헐벗고 굶주릴 것이다. 가짜가 있기에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의 세상이 유지된다 할 것이니 어찌 가짜가 이 세상을 재미있게, 풍요롭게, 부드럽게 굴러가게 한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가짜도 가짜 나름이다. 등급이 있어서 나쁜 가짜는 우리의 삶을 정말 짜증나게 하고, 이 세상을 지옥같은 세상이게 하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좋은 가짜는 진짜 못지 않은 순기능을 하며, 이것이 앞에서 말한 세상을 재미있고 풍요롭게 하는 정(正) 기능의 가짜이다.


다시 생각해도 진짜만 있는 세상은 정말 지루할 것이다. 청소년 시절 친구와의 대화에서나 가벼운 입다툼에서 심하게 막말할 때가 많다. 농담인 것을 알기에 같은 농담을 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다. 만약 농담이 진짜라면 이 세상은 무서운 지옥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가짜가 좋다거나 숭상할 가치가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디까지나 배척해야 할 대상이고, 오직 진실만이 추구해야 할 우리의 목표라야 한다. 가짜는 배우지 않고도 저절로 익혀지는 것, 손쉽게 이루어 지는 것, 마치 엔트로피와 같은 성질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기에 가짜를 배울 필요는 없다. 앞에서 가짜(거짓)가 순기능을 한다고 하였으나 코믹이고 역설일 뿐이다. 마음에 솟아나는 거짓은 억눌러야 하며 여기에 필요한 무기와 요령은 DNA가 바뀔 정도의 학문이고 수양이라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위작이 진품과 다른 것은 내외가 화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위작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예를 들면, 난이나 매화를 그리면서 그 마음이 고고하고 향기롭지 못하면 바라는 감성이 우러나지 않을 것이요, 대나무나 소나무를 그리면서 그 마음이 조삼모사요 바람부는 대로 왔다 갔다 흔들리는 소인배라면 이 또한 작품 소재의 그 기운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마음과 표현(손)이 화합하지 않으면 가품에 다름 아닐 것이다. 소동파(蘇 東坡)가 ‘몽당붓이 산처럼 쌓여도 그리 대단할 것 없고, 책을 만권 읽어야 비로소 신명이 통한다(退筆如山未足珍, 讀書萬卷始通神)’라 한 것은 이를 두고 말한 것은 아닐까? 공자도 『논어』에 회사후소(繪事後素)라 했다. 서예를 함에 앞서 학문으로 수양하며 학습(學習, 배우고 실천함) 연후에 붓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다시금 떠오르는 요즈음의 서단이다.


미술(회화)은 거짓이나 서예(문자)는 거짓이 아니다. 미술은 정감이나 서예는 다르다. 정감에 앞서 인간 교육이고, 이를 위한 수단의 하나가 서예이다. 옛날 선비, 추사(秋史)도 동파(東坡)도 ‘서예란 아무나 하는 예술이 아니다.’ 했던 것은 허투루 한 말이 아닌 것 같다.

海潭 吳厚圭(書畵批評家)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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