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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4-08 23:5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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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이유의 '이유 있는 소설' ... (1) 조도에는 새가 없다


배이유 작가의 첫 번째 연재작 「조도에는 새가 없다」는 지난 2015년 출간한 그녀의 첫 소설집 『퍼즐 위의 새』에 실린 10편의 작품 중, 3번째 소개되는 작품이다. 총 7회분으로 매주 두 차례, 월요일과 금요일 연재한다. 오늘은 제1회분으로 "사람들 새가 되어 날아오르는 섬"을 게재한다. 일자별 게재 순서는 다음과 같다. - 뉴스부산 강경호 기자 -



1회(4월 08일) "사람들 새가 되어 날아오르는 섬!"

2회(4월 12일), 짐을 들고 승선하는 사람들을 따라 배에 올랐다.

3회(4월 15일), 바다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4회(4월 19일), 방안에는 푸짐한 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5회(4월 22일), 하늘에 별들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6회(4월 26일), 별채에 아직도 불이 켜져 있다.

7회(4월 29일), 맞은편에 펜션이라는 글자가 버젓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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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이유 단편소설






"조도에는 새가 없다(1)"




‘사람들 새가 되어 날아오르는 섬! ’


안내판의 큰 글자를 읽으며 나는 피식, 웃었다. 짙푸른 물이 넘실대는 바다를 보며 끊으려고 마음먹었던 담배를 꺼내 물었다. 물 위에 떠 먹이 사냥을 하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흰 물새를 보며 낚시 생각을 했다. 어릴 때 줄낚시도 많이 했었다. 도시에서는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져 유례없는 한파, 어쩌구 하는 뉴스가 들려왔지만 여기는 이상하게도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바람이 잦아들고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미조항(港)에 도착해 제일 먼저 행동으로 옮긴 것은 정육점에서 고기를 산 일이었다. 동네 아주머니에게 물어서 찾아낸 정육점은 제법 큰 슈퍼마켓 뒤 골목 안에 숨어 있었다. 배들이 빈틈없이 묶여 있는 포구 앞 길바닥에 사내 둘이 양철통에 불을 피워놓고 신발을 벗어 발을 말리고 있었다. 포구 앞 빈터에는 자동차들이 빼곡하게 주차되었다. 그 맞은편 덕장에는 내장이 비어버린 물메기들이 배를 벌린 채 막대에 매달려 건조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이 한창 물메기 철이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가며 여기 저기 옛 흔적의 냄새를 맡으려 했다. 바다 쪽으로 방파제와 하얀 등대가 있고 마을 쪽에는 마트라고 이름 붙여진 수퍼가 세 개나 있었고 하나밖에 없을 것 같은 치과가 단장한지 얼마 안 된 미색의 외관을 수줍게 내보이고 있었다. 펜션과 식당과 목욕탕, 면사무소…. 목욕탕은 주인이 바뀌고 개조된 듯했다. 건물들이 헐리고 들어서고를 반복했을 터이다. 바다물빛만 빼고서 다 눈에 익지 않은 것들이었다. 사실 변하지 않는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차를 몰고서 정육점 골목을 빠져나오는데 길이 넓어지며 양 옆으로 식당과 노래방들이 어지럽게 들어찼다. 그 길을 돌아 나오니 또 하나의 다른 바다가 막다른 골목처럼 다가들었다. 차창 앞으로 갈매기들이 공원의 비둘기 떼마냥 날아올랐다. 부두 도로 가운데에 일렬로 자동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사이의 빈 공간에 차를 정차시켰다. 바로 가까이서 손만 뻗으면 닿을 듯 몇 개의 섬들이 앉아 있다. 조도. 새섬이라 불리는 곳. 가슴에 묵직한 공기가 들어찼다. 내 안에 작은 새가 파드득거렸다.


조도 가는 배를 타려면 아직 시간이 일렀다. 도로 건너 낚시점에서 벽돌처럼 얼려놓은 밑밥을 사서 나오는데 안내판 앞에서 서성이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무릎 아래까지 오는 부츠에 스키니진을 입은 젊은 여자를 본 순간, 스타일이 좋은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캡을 푹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겨 선착장 쪽으로 가니 여자가, 여기서 기다리면 조도 가는 배가 오느냐고 물었다. 나는 잘 보이지 않는 여자의 눈을 의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여자가 다시 묻길래, 나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고, 바로 저기 보이는 섬이 조도, 라고 덧붙여 말해주었다. 바로 옆의 섬이 호도라고, 범섬이라고 말해주려다 말았다. 여자의 목소리가 왠지 귀에 익었다. 흔한 음색은 아니었다. 모자 밑으로 길게 찰랑이는 머리카락에 햇빛이 반짝였다.


편의점에서 물과 소주와 맥주를 샀다. 과일은 없었다. 과일이 귀했던 시절이 생각나 꼭 사과라도 사들고 가고 싶었다. 비닐 꾸러미를 선착장 입구 짐들 사이에 놓아두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수협공판장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떨어진 거리에서 봐도 사내들이 활기차게 그물을 당기며 용쓰는 게 보였다. 어선에서 방수작업복을 입은 남자들이 삽으로 그물에서 산사태같이 쏟아져나오는 생선들을 공판장 쪽으로 몰아내고 있었다. 갈매기들이 낮게 그 주위를 그악스럽게 날갯짓 하며 맴돌았다. 장화를 신은 사내와 아주머니가 재빠른 동작으로 자디잔 고기들을 커다란 모판 같은 데에 퍼 담아 편편하게 삽으로 다독였다. 멀리서 볼 땐 멸치인 줄 알았는데, 멸치뿐만 아니라 고등어, 전갱이, 복쟁이 등 크다만 치어들이 뒤섞여 은빛 동전처럼 몸을 뒤채며 빛을 뿌렸다. 저들은 삽으로 은의 광맥을 캐고 있었다.


뒤에서 감탄하는 듯한 숨결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어느 결에 여자가 다가와 있었다. 옆에 나란히 선 여자와의 거리는 60센티 정도라고 나는 가늠해본다. 얼굴을 다 가렸던 캡을 벗고 대신 짙은 선글라스를 썼다. 날렵한 콧날이 두드러져 보이지만 이번에도 눈이 안 보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쬐끄만 것들이라니! 얘들이 빛을 내네!”


여자는 조그맣게 탄식하듯 말했다. 서울 말씬데 촉촉한 비음이 섞여 있었다. 여자의 목소리는 들으면 들을수록 어디선가 들은 듯한 확신이 들었다. 누군가를 떠올리려 했지만 퍼뜩 생각나지 않았다. 여자는 모자에 눌려진 머리가 신경 쓰이는지 가는 손가락으로 빗처럼 여러 번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색안경 때문인지 여자의 모습은 이곳과 녹아들지 못하고 더 튀어보였다. 나는 그냥 있기도 머쓱해 공판장을 벗어나 사과를 파는 상점을 찾았다. 과일 파는 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사과를 꼭 사야할 것만 같았다.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물으니 한손을 들어 막다른 길을 가리키며 저 길을 벗어나면 큰 수퍼가 있다고 했다. 나는 시계를 보고는 그리로 가려고 걸음을 떼는데 거짓말처럼 과일 트럭이 내 앞으로 지나갔다. 나는 트럭을 쫓아가 불러세웠다. 내가 무척 반기자 몸과 얼굴이 둥글둥글한 육십쯤 먹은 남자가 차에서 내리며 점심 먹으러 들어오는 길이라고 했다. 거칠고 건강한 사과들이 짐칸에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귤 박스도 있었지만 사과가 주종이었다. 나는 알이 굵고 아삭한 걸로 한 봉지 담아달라고 했다. 어느새 여자도 트럭 난간을 붙잡고 사과를 구경하고 있었다.


이 여자 묘한 데가 있다. 나를 따라다니는 것 같은데 싫지 않았다. 아니 가벼운 설렘이 일었다. 나는 한손에 사과를 가득 담은 커다란 비닐봉지를 들고 가다 뒤미처 생각나 차 안에 두었던 쇠고기를 챙겨 선착장으로 향했다. 여자는 몇 걸음 처져 숄더백에서 캡을 꺼내더니 다시 머리에 눌러썼다. <다음 2회 → 4월 12일 금요일 계속>





▶ 배이유 소설가가 보내온 자기 자기소개 ...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진해에서 유년기를 보낸 뒤 줄곧 부산에서 살았다. 시골 들판과 수리조합 물가, 낮은 산, 과수원. 그리고 유년의 동네 골목길에서 또래나 덜 자란 사촌들과 열심히 몸을 움직이며 뛰어놀았다. 지금은 징그럽게만 느껴질 양서류, 파충류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누군가의 등에 업혀 가던 논둑길에서, 밤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들이 내 눈높이로 낮게 내려와 심장에 박히던 기억.

2학년 때 초량동 구석진 허름한 만화방에서 경이로운 문자의 세계에 눈을 떴다. 몸과 언어가 일치하던 어린 시절 책의 세계에 깊이 매혹되었다. 이런 강렬한 기억들이 모여 저절로 문학을 편애하게 되었다. 결국 소설에의 탐닉이 지금의 나로 이끌었다. 크게 변동 사항이 없는 한 송정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패배로 거듭날 글쓰기를 계속할 것이다. eyou11@naver.com



관련기사 : [뉴스부산초대석] 배이유 소설가, '배이유의 이유 있는 소설'

- http://newsbusan.com/news/view.php?idx=3051





[덧붙이는 글]
☞ 소설가 배이유 ... 2011년 <한국소설> 등단.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문학창작기금상을 받아 2015년 첫 소설집 ⌜퍼즐 위의 새⌟를 출간했고, 이 소설집으로 2016년 부산작가상을 수상했다. 2018년 ‘검은 붓꽃’이 현진건문학상 추천작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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