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9-04-22 02:37:41
기사수정





■ 배이유의 '이유 있는 소설' ... 도에는 새가 없다(5)



배이유 작가의 첫 번째 연재작 「조도에는 새가 없다」는 지난 2015년 출간한 그녀의 첫 소설집 『퍼즐 위의 새』에 실린 10편의 작품 중, 3번째 소개되는 작품이다. 총 7회분으로 매주 두 차례, 월요일과 금요일 연재한다. 오늘은 지난 19일에 이어 제5회분으로 "하늘에 별들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를 게재한다. 일자별 게재 순서는 다음과 같다. - 뉴스부산 강경호 기자 -




1회(4월 08일) 사람들 새가 되어 날아오르는 섬!

2회(4월 12일), 짐을 들고 승선하는 사람들을 따라 배에 올랐다.

3회(4월 15일), 바다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4회(4월 19일), 방안에는 푸짐한 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5회(4월 22일), "하늘에 별들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6회(4월 26일), 별채에 아직도 불이 켜져 있다.

7회(4월 29일), 맞은편에 펜션이라는 글자가 버젓이 보였다.




........................................................................................................................................


배이유 단편소설



"하늘에 별들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5)"



  하늘에 별들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어릴 때 보던 별들의 수보다 훨씬 적었지만 적어도 도시에서 보다는 별이 잘 보였다. 여자는 눈썹 같은 달이라며 손으로 가리켰다. 밤이 되니 공기가 차가웠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담요를 가져와 평상에 앉아 있는 여자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여자는 어깨 위의 담요를 활짝 펴서 온몸을 감쌌다. 바다는 목탄 같은 어두운 잠에 빠져 있었다. 술을 마신 탓이겠지만  담배가 생각났다. 나는 일어서서 담 쪽으로 가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싸한 공기가 폐부를 뚫고 들어왔다. 담요를 걸친 여자도 일어서서 내 곁으로 왔다. 나는 담배 하나를 여자에게 건넸다. 여자는 담배를 쥐고서 연기를 뱉어내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담배를 배운 것은 세 번째 영화를 찍을 때였어요. 그 역할에 몰입하느라 담배를 엄청 피워댔는데 그때 담배의 맛을 알았어요. 청순한 이미지를 벗고 과감하게 변신을 시도 했었는데, 그 영화는 성적이 안 좋았어요. 실패했죠. 대중들은 나에게서 그런 흐트러진 이미지를 원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나도 물론 그 영화를 몇 번이나 비디오로 봤었다. 난 그녀의 스크린 속의 일탈된 모습도 좋았다. 그녀는 TV CF광고 속에서 청순하고 단아한 여신의 이미지로 끊임없이 반복 소비되었다. 순결하고 정숙한 여인의 대명사로 각인되었다. 나도 여자의 이미지를 탐닉했다. 나의 판타지 속 신부와 누이로.


   “난, 이제 배우가 아니잖아요. 잊혀진 과거죠.” 여자는 쌉쌀한 박하사탕 같은 향기를 내뿜었다. 여자는 몇 년 전 스크린에서, 광고나 드라마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여자는 갑작스런 스캔들로 끝 모를 바닥으로 추락했다. 악의적 기사로 도배되고 불륜녀로 낙인이 찍혀 더는 일어설 수 없는 상태에서 여자는 어쩔 수 없이 칩거를 택해야만 했다.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재기를 시도했으나 번번이 무산되었다.


   “다 내 죄죠. 뭘 몰랐던 거예요. 한 남자를 사랑한 게 그렇게 분노를 일으키리란 걸, 그렇게 파장이 크리란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죠. 내 사랑에 대한 태도가 너무 당당했던 게 사람들을 더 분노하게 하고 나를 더 뻔뻔한 여자로 만들어버린 거죠.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반성하는 포즈를 취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용서를 받지 못한 거죠. 절대로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였죠. 절대로! 배우는 이미지로 먹고 산다는 걸 잊었던 게 가장, 큰 죄죠. 사람들은 진실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아요.” 여자는 격앙되어 둑이 터지듯 말을 쏟아내었다.    


   “제가 말이죠, 부뚜막에 올라간 얌전한 고양이었더라구요. 강아지가 아니라 앙큼한 고양이요.”


   여자는 자조하듯 큭큭대며 웃었다. 웃는 게 우는 거처럼 보였다. 여자는 입술을 떨며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추운데 그만 들어가요”


   “좀 있다 들어갈게요. 술이 깨면요.”


    여자는 담요를 꽉 여미며 말했다.


    나는 내친김에 더 나가기로 했다.


   “혹시 여기 이상한 맘먹고 온 건 아니오?”


    여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마음속으론 수백 번 시도 했죠… 어차피 서두르지 않아도 죽을 텐데, 쉽게 목숨 끊는 짓은 안 할 거에요. 이게 내 몫이라면 견뎌야죠.”


    여자의 목소리는 침묵 속에 잠겼다. 여자는 손으로 눈을 매만지더니 나를 외면한 채 말을 했다.


    “이겨낼 거예요.” <다음 6회 → 4월 26일 금요일 계속>




▲ design=myosoo



▶ 배이유 소설가가 보내온 자기 자기소개 ...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진해에서 유년기를 보낸 뒤 줄곧 부산에서 살았다. 시골 들판과 수리조합 물가, 낮은 산, 과수원. 그리고 유년의 동네 골목길에서 또래나 덜 자란 사촌들과 열심히 몸을 움직이며 뛰어놀았다. 지금은 징그럽게만 느껴질 양서류, 파충류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누군가의 등에 업혀 가던 논둑길에서, 밤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들이 내 눈높이로 낮게 내려와 심장에 박히던 기억.


2학년 때 초량동 구석진 허름한 만화방에서 경이로운 문자의 세계에 눈을 떴다. 몸과 언어가 일치하던 어린 시절 책의 세계에 깊이 매혹되었다. 이런 강렬한 기억들이 모여 저절로 문학을 편애하게 되었다. 결국 소설에의 탐닉이 지금의 나로 이끌었다. 크게 변동 사항이 없는 한 송정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패배로 거듭날 글쓰기를 계속할 것이다. eyou11@naver.com






관련기사 : 배이유의 '이유 있는 소설' ... (4) 조도에는 새가 없다

- http://newsbusan.com/news/view.php?idx=3102


관련기사 : [뉴스부산초대석] 배이유 소설가, '배이유의 이유 있는 소설'

- http://newsbusan.com/news/view.php?idx=3051




[덧붙이는 글]
☞ 소설가 배이유 ... 2011년 <한국소설> 등단.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문학창작기금상을 받아 2015년 첫 소설집 ⌜퍼즐 위의 새⌟를 출간했고, 이 소설집으로 2016년 부산작가상을 수상했다. 2018년 ‘검은 붓꽃’이 현진건문학상 추천작으로 선정되었다. - 뉴스부산 강경호 기자 -
0
기사수정
저작권자 ⓒ뉴스부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최신 기사
  1. 1 부산시, 「디자인시티 부산 국제 콘퍼런스」 개최
  2. 2 부산시, 청년내일저축계좌 신규 대상자 모집 (5.1.~5.21.)
  3. 3 부산도서관, 5월 4일 어린이 체험행사 운영
  4. 4 인니에 충격패 황선홍호,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 좌절
  5. 5 한국, 변준수 황재원 백상훈 엄지성 강성진...인도네시아전 선발
  6. 6 부산시특사경, 5월 가정의 달 맞아 '먹거리 안전 특별단속' 실시
  7. 7 김해공항 국제선 확장터미널 4월 26일 개장
  8. 8 이태석 3경기 연속 도움 ... 한국선수 올림픽 예선 최초
  9. 9 국토부, ‘K-패스’ 내달 도입…“대중교통비 20~53% 할인”
  10. 10 속초 앞바다서 길이 3m 청상아리 혼획 ... 7만원에 위판
  11. 11 부산시 소통캠페인 홍보대사에 '미스트롯3' 가수 정서주 씨 위촉
  12. 12 인사혁신처, "민간경력자 채용시험... 면접 합격자만 서류 제출"
  13. 13 경찰청, 국민에게 감동 준 선행·모범 경찰관 오찬 격려
  14. 14 국제서화디자인2024전, 6월 3일 개막 ... 4개국 183명 작가
  15. 15 尹 대통령, 2024년도 재외공관장 만찬 개최
  16. 16 윤석열 대통령, 2024년 과학기술·정보통신의 날 기념식 참석
  17. 17 신임 대통령비서실장 정진석, 신임 정무수석비서관 홍철호
  18. 18 김민우 결승골 한국, 일본에 1-0 승... 26일 인도네시아와 8강
  19. 19 ‘정상빈-홍윤상 선발’ 올림픽대표팀, 일본전 선발명단 발표
  20. 20 한-이 수교 140주년 기념 이벤트...'이탈리안 뷰티 데이즈’ 성료
최근 1주일 많이 본 기사더보기
김해공항 국제선 확장터미널 4월 26일 개장 속초 앞바다서 길이 3m 청상아리 혼획 ... 7만원에 위판 로또 1116회 = 1등 10명, 각 당첨금 2,695,000,238원 부산시특사경, 5월 가정의 달 맞아 '먹거리 안전 특별단속' 실시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
google-site-verification: googleedc899da2de9315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