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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4-12 14: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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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이유의 '이유 있는 소설' ... 도에는 새가 없다(2)



배이유 작가의 첫 번째 연재작 「조도에는 새가 없다」는 지난 2015년 출간한 그녀의 첫 소설집 『퍼즐 위의 새』에 실린 10편의 작품 중, 3번째 소개되는 작품이다. 총 7회분으로 매주 두 차례, 월요일과 금요일 연재한다. 오늘은 지난 8일에 이어 제2회분으로 "짐을 들고 승선하는 사람들을 따라 배에 올랐다"를 게재한다. 일자별 게재 순서는 다음과 같다. - 뉴스부산 강경호 기자 -




1회(4월 08일) 사람들 새가 되어 날아오르는 섬!

2회(4월 12일), "짐을 들고 승선하는 사람들을 따라 배에 올랐다."

3회(4월 15일), 바다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4회(4월 19일), 방안에는 푸짐한 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5회(4월 22일), 하늘에 별들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6회(4월 26일), 별채에 아직도 불이 켜져 있다.

7회(4월 29일), 맞은편에 펜션이라는 글자가 버젓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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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이유 단편소설




"조도에는 새가 없다(2)"




짐을 들고 승선하는 사람들을 따라 배에 올랐다. 기관실 위로 태극기가 부드럽게 나부꼈다. 낚싯대를 멘 남자들도 몇 명 보였다. 사랑방 같은 선실엔 섬주민들이 센 경상도 어투로 목소리를 높여 서로의 근황을 전했다. 여자는 선실 안에 들어가려다 일제히 자기를 보는 눈길에 놀라 갑판 쪽으로 나온다. 여자는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했다. 나는 바로 앞에 마주보이는 새섬을 눈으로 훑었다. 저절로 깊은 숨이 토해졌다. 그 옆 오른쪽으로 떨어져 있는 곳이 범섬. 마을 사람들끼리 배로 오갈 수밖에 없지만 다 조도라 불렸다. 나는 저곳, 새섬에 살았었다. 작은섬, 큰섬. 위에서 내려다보면 머리와 몸체로 나누어진 게 새가 날개를 펼치고 날으려 하는 형상이라고 했다. 지금은 떨어져 있던 머리와 몸체 부분이 제방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들었다. 저기 당산 장산곳에서 일출을 보기도 했었다. 섬은 여전했다. 아무리 높은 파도가 부딪쳐 생채기를 낸다 해도 검푸른 나무들을 품은 섬은 의연했다. 몇 사람 사이에 있는 여자도 철제 난간을 쥔 채 물끄러미 섬을 바라보았다. 도무지 여자의 표정을 알 수 없었다.


섬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내 안의 작은 새가 성마르게 파득파득거렸다.


간이 선착장에 배를 대자 아기 업은 새댁과 할머니가 내리고 내가 뒤따랐다. 예전엔 미조까지 작은 고깃배로 건너다녔다. 지금은 땅을 허물어 방파제를 만들고 시멘트를 발라 길을 내었다. 방파제 옆으로 테트라포트가 쌓여 있어 내가 알고 있던 조도의 경관을 사뭇 다르게 만들었다. 이제 연안 어딜 가나 비슷한 풍경일 것이다. 낚싯대를 멘 남자 뒤에서 여자는 망설이는 듯하더니 남자 뒤를 이어 시멘트 턱 위로 가볍게 뛰어내렸다. 내 감각에 눈이 달렸는지 여자한테 신경이 쓰였다. 구체적인 목적지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 때문에 여기에 내린 게 아닐까, 라고 상상하니 정말 그렇게 느껴졌다. 아마 호도에 내릴까 어쩔까 하다 결정을 했을 것이다. 여자가 보이지 않는 내 뒤의 가느다란 끈을 잡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짐과 사람을 다 부린 배는 하얀 물결을 일으키며 호도로 향했다.


나는 양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그리 높지 않은 고갯길을 올랐다. 고갯길도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었다. 여자는 가면을 벗듯 캡을 벗어 손에 쥐고는 내 뒤를 따랐다. 나는 앞서가다 고개 등성이에서 멈춰 바다 전체를 조망했다. 바다는, 뭐랄까, 내면이 어떠하든 겉은 아무렇지 않은 듯 잔잔하고 고요한 청람빛 거울로 누워 있었다. 여자는 내 옆을 지나 앞으로 걸어갔다. 잔 바람에 긴 머리를 한손으로 걷어 올리며 걸어가는 여자의 모습이, 몸에 밴 태도가 평범하지는 않았다. 고갯마루 밭에는 자색을 띤 상추가 시든 배추들 사이에서 싱싱하게 햇빛을 받아 반들거렸다. 나는 고갯마루 입구에 있는 한 집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외관이 변하긴 했지만 틀림없이 창우네 집이었다, 아니 창우가 살던 집이었다. 담이 낮아 마당 안이 다 보였다. 마루 아래 붉은 고무통과 검은 장화가 놓여 있었다. 인기척은 나지 않았다. 신기했다. 그동안 이름 한 번 불러본 적 없는데도 뚜렷하게 생김새까지 떠올랐다. 떠나올 땐 제대로 작별 인사도 하지 못했었다. 파도가 한 차례 밀려왔다.


창우집에서부터 좁아지는 길을 여자는 주저하지 않고 그러나 천천히 앞서 걸어갔다. 나는 고개 반대편 아래로 내려가기 전 탄식을 했다. 갈색 잡풀이 뒤덮여 있는 휑한 공터를 보며 깊은 허탈감을 느꼈다. 그건 분명 상실감이었다. 학교가 있었는데… 아무것도 없이 흔적만 남아 있었다. 나는 길섶에 짐을 놓고 낮은 담벼락 위에 양손을 올렸다. 잡풀 위 마당 한 가운데 철봉이 있고 당산 쪽 아래 파란 저수조가 눈에 띄었다. 교문은 없지만 교문을 지탱하던 지주, 교사가 있던 자리엔 콘크리트 터만 남아 있었다. 옆에 잎이 누렇게 뜬 종려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그때도 있었던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지금 보니 운동장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교정도 아주 작다. 내가 어른이 된 탓도 있겠지만 몹시 협소해보였다. 내가 다녔던‘미남분교’. 그때는 분교가 아니었다. 아마 오래 전에 학교가 헐린 것 같았다. 교문이 달렸던 지지대에는 무단침입을 금하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교정에서 바다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쇠락한 공간과 겹쳐졌다.


여자는 조도 뒤편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하며 서 있다. 유인(有人)섬을 커다란 그림자처럼 멀리에 두고 무인 섬들이 남빛 바다 위에 가까이 그림처럼 떠 있다. 앞쪽의 바다보다 더 바람이 없다. 수면 위에 하얀, 목이 긴 여러 마리의 물새가 머리를 물에 담근 채 하얀 말뚝처럼 고요히 정지해 있다. 여자는 학교 앞 갈림길에서 좁게 경사진 길 아래로 내려간다.


나는 담 바깥에서 안으로 선뜻 들어서지 못한다. 빨랫줄에 몇 마리의 물메기가 걸려 있고 마당 채반에는 채 썬 무와 우엉이 널려 있다. 담벼락에 붙어 있는 명패를 보았다. 어느새 여기도 도로명 주소가 부착되어 있다. ‘조도1길 39’. 주소가, 낯설었다. 변했다. 변하긴 했는데, 지붕이나 외형이 개량 되었을 뿐…, 변하지 않았다. “예전 그대로야.” 형이라 칭하던 전화기의 낯선 목소리가 말했었다. 마당 안으로 들어서면서 인기척을 내려는데 갑자기 방문이 열리고 호리호리한 남자가 튀어나왔다.


“형님, 접니다. 영훕니다.”


마루 위에 멈칫 서 있던 남자는 어? 하더니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 내려와 나를 반긴다.


“왔구나. 기별이라도 하고 오지. 어무이, 영후 왔심더! ”


노인네가 누워있다 내가 방안으로 들어서자 몸을 반쯤 일으켜 마디가 굵은 손으로 나를 와락 껴안았다. 니가 우짠 일고. 니 참말로 영후 맞나? 이 매정한 놈. 놀라워하던 큰어머니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큰어머니도 많이 늙었다. 부지런하고 팔팔하던 젊은 아낙이 어느새 주름 잡힌 늙은 여인이 되어 있다. 어릴 때 얼굴이 남아 있네, 니가 들어오는데 영판 느그 아버진 줄 알았다. 나이들수록 아버지를 쏘옥 빼닮았네. 큰어머니는 다시 한 번 내 얼굴을 살피더니 손등을 어루만졌다. 나는 일어서서 큰 절을 올렸다. <다음 3회 → 4월 15일 월요일 계속>






▶ 배이유 소설가가 보내온 자기 자기소개 ...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진해에서 유년기를 보낸 뒤 줄곧 부산에서 살았다. 시골 들판과 수리조합 물가, 낮은 산, 과수원. 그리고 유년의 동네 골목길에서 또래나 덜 자란 사촌들과 열심히 몸을 움직이며 뛰어놀았다. 지금은 징그럽게만 느껴질 양서류, 파충류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누군가의 등에 업혀 가던 논둑길에서, 밤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들이 내 눈높이로 낮게 내려와 심장에 박히던 기억.

2학년 때 초량동 구석진 허름한 만화방에서 경이로운 문자의 세계에 눈을 떴다. 몸과 언어가 일치하던 어린 시절 책의 세계에 깊이 매혹되었다. 이런 강렬한 기억들이 모여 저절로 문학을 편애하게 되었다. 결국 소설에의 탐닉이 지금의 나로 이끌었다. 크게 변동 사항이 없는 한 송정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패배로 거듭날 글쓰기를 계속할 것이다. eyou11@naver.com





관련기사 : 배이유의 '이유 있는 소설' ... (1) 조도에는 새가 없다

- http://newsbusan.com/news/view.php?idx=3052


관련기사 : [뉴스부산초대석] 배이유 소설가, '배이유의 이유 있는 소설'

- http://newsbusan.com/news/view.php?idx=3051





[덧붙이는 글]
☞ 소설가 배이유 ... 2011년 <한국소설> 등단.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문학창작기금상을 받아 2015년 첫 소설집 ⌜퍼즐 위의 새⌟를 출간했고, 이 소설집으로 2016년 부산작가상을 수상했다. 2018년 ‘검은 붓꽃’이 현진건문학상 추천작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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